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령 Sep 22. 2019

요가하는 해파리 13

여름 날, 빵이랑 나랑 아줌마랑

스콘을 참 맛있게 잘하는 빵집을 하나 알고 있다. 우리 동네 골목에 있는 빵집인데 안쪽에 빵 만드는 공간이 훤히 다 보이는 작은 가게다. 초록색 어닝, 빵 진열대가 가게 밖으로 나와 있을 정도로 좁은 공간이다. 아저씨가 빵을 만들고, 아줌마가 빵을 팔고. 한 번도 물어본 적은 없지만 나는 두 사람 사이가 부부라고 믿고 있다. 


동네 장사답게 빵 가격은 죄다 저렴한 편이고 그 가운데 스콘은 천 원이다. 스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빵인데 다른 스콘이 맛있다는 유명한 빵집이나 카페에 가도 나한테는 역시 여기 빵집 스콘이 제일 입맛에 맞다. 생김새도 나무랄 데가 없는 게, 크기는 손에 그러쥐기 딱 좋은 세모 모양이고, 콕콕 박힌 초코 칩은 비율이 공평해서 서운할 것이 없다. 노랗고, 베어 물면 잔 부스러기 따위가 전혀 없으며, 투명 비닐이랑 투명 스카치테이프로 하나하나 포장해서 판다. 쪼르륵 한 줄로 선 스콘들. 


여기요, 미리 준비해두었던 천 원짜리 한 장을 건네고, 하나를 덥석 집어 나온다. 여기 오는 목적이 스콘 하나만 보고 오기에 다른 빵들은 관심이 없다. 없어서 어떤 빵을 사먹어야 할까 고민할 필요가 없는 거다. 이 단순하고 군더더기 없는 행위가 나는 꽤 마음에 들어서, 스콘 맛도 스콘 맛이지만 요 행위에 맛이 들어서 즐겨 가게 되었다. 


나 같은 사람은 다른 빵집에 가면 어떤 빵을 먹을까 몹시 고민을 한다. 그러다보면 빵 몇 개 사는데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마는 것이다. 빵을 워낙 좋아하니까 시간을 보내는 동안은 시간 가는 줄 모르지만 빵집을 나오고 나면 보낸 시간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얼마나 대단한 빵을 먹겠다고....... 

그런데 여기 빵집에 오면 나한테는 스콘 하나뿐이니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까 이 빵 저 빵, 아까 봤던 빵 또다시 보고 금방 봤던 빵 또 보고 하는 머리 아픈 짓은 안 해도 된다는 말이다. 


안녕하세요? 여기요, 스콘 하나 덥석, 안녕히 계세요. 

안녕하세요? 여기요, 스콘 하나 덥석, 안녕히 계세요. 


어쩌다보니 놀이처럼 재미있게, 행위며 상품이며 낭비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여기가 참 마음에 든다. 그러다보니 먹고 또 먹고, 그렇게 종종 가다보니 먹는 거라고는 스콘 하나지만 단골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가면 늘 맞이해주는 아줌마가, 이게 제일 크네, 말하고 손수 스콘을 집어 주는 사이가 된 것이다. 아줌마는 날씬하고 말투며 몸짓이 얌전한 사람이었다. 그러면 나는 어김없이 여기요, 천원을 내밀고 안녕히 계시라며 인사를 하고 뒤돌아 나왔다. 거기서 더 이상은 없었다. 나야 원체 내성적인 성격인데다가 살가운 사람이 아니다보니 그랬겠지만 아줌마도 비슷한 성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성실하게 왔다 갔다 했으면 가끔은 실없는 농도 주고받을 법도 한데 말이다.  


  “안녕 하세요?”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나는 늘 메고 다니는 가방을 등 뒤로 메고 있었다. 가방은 하얀색이고, 가운데에 인디핑크 장미꽃이 크게 하나 자수되어 있었다. 장미꽃 이파리는 민트색이고.


  “여기요.”


아줌마도 늘 입는 앞치마를 하고 있었다. 초록색이고 가슴팍에 가게 이름이 하얀색 글씨로 쓰여 있는 푸근한 느낌의. 항상 했던 대로 나는 천 원을 드렸고, 내 손에는 이미 스콘이 쥐어져 있었다. 


그날은 너무 더운 날이었다. 머리 위로 초록색 어닝이 그늘을 주고 있었으나 바깥이라 뜨끈뜨끈한 공기가 확확 끼쳤다. 집에서부터 빵집까지 대략 15분이 되는 거리를 걸어온 나는 녹아버리기 일보직전이었다. 살짝 맛이 간 상태라고나 할까? 사람이 머리가 어떻게 돼버리면 평소 안 하던 짓을 한다는 게 진짜인가 보다. 여기요, 천원을 드리고 정상대로라면 나는 거기서 뒤돌아 나왔을 텐데 그날은 그러지 않았다.


  “너무 더워요.”


말하고 자리에 서서 넋이 나간 사람마냥 서서는 멍한 얼굴을 했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른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튀어 나온 말이었고 정말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손에는 스콘 하나가 제일 큰 놈으로. 내가 안 가고 그러고 징징대고 있으니까, 아줌마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살짝 미소를 짓는다. 뒤돌아 가게 안쪽으로 몇 발자국 갔는데 거기에는 냉장고가 하나 있었다. 은색이고 커다랗고 양쪽으로 여는 문은 반질반질했다. 아줌마가 냉장고 문을 열고 무언가 하나를 꺼냈다.


  “시원할 때 먹어요.”


야채 크로켓이었다. 순간, 나는 감동하고 만다. 여름. 내리쬐는 햇볕이 주변 공기를 쉼 없이 데워 푹푹 찌는 계절. 하얀 가방이 등에 붙어 등에서는 적은 양이지만 땀이 배어났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말한다. 웃음이 절로 활짝, 크로켓을 두 손으로 받아들고 머리 숙인다. 잘 먹겠습니다. 말하고 아줌마 얼굴을 본다. 아줌마가 생긋 웃어 보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거기서 더는 없다. 나는 뒤돌아 빵집을 나왔다. 가면서 바로 크로켓을 까먹었다. 나는 원래 걸어가면서 뭘 잘 먹는다. 그런 행위에 거리낌이 없다. 없긴 한데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더운 날에도 불구하고 내가 크로켓을 먹으며 걷는 까닭은 다름 아닌 아줌마 말씀 때문이었다. 시원할 때 먹어요. 아줌마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크로켓을 맛있게 먹었다. 안에 들은 야채는 짭조름하고 차가웠다. 그리고 푸근한 맛이 났다. 여기 야채 크로켓은 이런 맛이구나. 그날 거기서 먹은 제일 맛있는 빵은 스콘이 아니었다. 스콘이 아니라 야채 크로켓이었다. 아줌마가 냉장고에서 나 먹으라고 꺼내주신, 시원하고 도톰한 빵.


  “여기 계시던 아줌마는요?”


여름이 지나고, 아주 오랜만에 갔더니 못 보던 여자가 가게를 보고 있었다. 여자는 가게 주인이 아예 바뀌었다고, 싱긋 웃었다. 가게 외형이 확 바뀌었기에 아줌마 아저씨가 돈 많이 벌어서 리모델링한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란다.  


  “아.”


반쯤 입을 벌리고 아, 이런 반응을 했는데 순간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서운해 하는 표정을 지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이해했다는 표정이었을 수도 있고. 

내가 찾는 스콘이 없어서 식빵 한 봉지를 계산하고 가게를 나왔다. 식빵은 내가 스콘 다음으로 좋아하는 빵이다. 


  “스콘은 딸기 쨈인데.”


손에 식빵을 들고서 이런 소릴 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 빵집에서 스콘을 그렇게 사 먹었으면서도 거기 스콘이랑 딸기 쨈이랑 같이 먹어 본 적이 없다. “스콘하면 꼭 딸기 쨈이어야 해.” 친구한테 그렇게 먹어야 제대로 된 사람이라도 되는 것 마냥 있는 척까지 했던 주제에 말이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먹은 스콘은 죄다 날 것 그대로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뭔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아쉬운 기분이 든다. 스콘, 이제 못 먹는 건가? 아줌마 얼굴을 떠올려보려고 했는데 얼굴이 생각 안 난다. 기분이 조금, 착 가라앉는다. 벌써 가을이 왔다. 날은 시원해지고, 바람은 자주 분다. 그리고 가을 하늘은 높다. 높고, 참 파랗다. 

이전 12화 요가하는 해파리 1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