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가 쫑, 쫑, 쫑,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 있었던 일인데, 길을 걸어가다가 병아리 한 마리랑 마주쳤다면 다들 믿어줄지 모르겠다. 조그맣고, 레몬색의 눈이 까만.
당시 내가 몇 살이었는지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장면은 생생하게 떠오르니 대충은 안다. 주인아줌마가 꼭대기에 사는, 다세대 주택 우리 집. 위에 골목에는 피아노 학원이 있고, 피아노 학원 맞은편에는 작은 가게가 하나 있는 동네였다. 가게에는 먹을거리, 놀 거리 등등 어린이였던 내 눈에는 뭐가 잔뜩 많았는데 손님 세 명이 들어가면 공간이 꽉 찰만큼 좁았다. 가게에서 밑으로 쭉 내려와 오른쪽 골목으로 돌아가면 길이 하나 나오는데 거기에는 ‘뿌꾸’라는 개가 한 마리 살았다. 갈색이고 암컷이었으며 나중에 새끼를 여덟 마리나 낳았다. 바로 그 길을 지나가다가 생긴 일이었으니 대강 짐작하자면 여덟아홉 살이었겠다. 햇볕이 노랗고 따끈한 오후, 길쭉하고 텅 빈 골목길. 공상 허언증이 절대 아니다. 정말로 병아리를 길에서 만났다. 그러니까 어떻게 된 일이냐면,
나는 동생이 둘이나 있는데, 있는데도 불구하고 주로 혼자 노는 아이였다. 그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 살 어린 여자 동생은 무지 털털한 성격이라 나랑 영 맞지 않았고 남동생은 나랑 여섯 살 차이나 난다. 같이 노는 짓은 내 성미랑 맞지 않아 별로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 셋은 각자 알아서 잘 논다.
나는 학교에서도 창밖의 하늘이나 봤다. 구름은 언제 봐도 질리지가 않았고 모양은 가지가지였다. 가끔 초록칠판을 들여다봤지만 들여다보기만 했지 얼굴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때문에 20 나누기 3을 몰라서 우리 엄마가 어마어마한 충격을 드셨다. 백점이 만점인데 9점짜리 수학 시험지를 두고 나는 엉엉 울었다. 엄마는, 나를 앞에 앉혀 놓고 다시 계산하도록 했지만 나는 동그라미 하나 그리지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그저 나를 야단치는 엄마의 얼굴이, 목소리가, 너무너무 무서웠으며 시험이 백점 만점인 줄도 모를 만큼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또 학교에 가고 오는 길에 보는 하얗고 푸근한 목련나무가 더 좋았고, 종종 마실 나오는 하얀 개한테 우유를 갖다 주는 일이 더 즐거웠다. 멀쩡한 길을 두고 탐험한답시고 남이 사는 집 담장 위를 걸어 다니는 일은 재밌었고.
당시 살던 동네는, 작은 주택이랑 공터가 딸린 작은 빌라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동네였다. 담장도 그리 높지 않았다. 여기 집 담장을 타고 휙 넘어 갔다가 좁은 틈을 지나서 또다시 담장을 휙 타고 넘으면 저기 집 마당이었다. 나는 마치 그 집에 사는 아이마냥 대문을 따고 밖으로 나왔다. 겉은 아주 자연스러운 몸짓이었지만 속에서는 심장이 팔딱팔딱 뛰었다.
짜잔! 그러다가 주인아줌마가 창문을 열고, 얘! 너 왜 여기로 다니니? 버럭 하는 바람에 심장이 덜컥 몇 번한 적 있었는데, 하는 짓이 무지 느린데다가 야무지지 못해 늘 한소리 듣던 내가 그때만큼은 도망가는 솜씨가 잽싸도 그렇게 잽쌀 수 없었다. 나는 그런 아이였다.
그 날도 혼자 아까 말한 길을 지나가던 참이었다. ‘뿌꾸’하고는 별로 안 친하니까 놀러가기에는 좀 그렇고, 같은 길목에 살며 종종 마주치면 우유를 주는 하얀 개가 하나 있긴 한데 어쩐지 안 보였다. 나는 하얀 개가 어느 집에 사는지 몰라 놀러갈 수도 없다. 동네 친구는 없고, 다니는 학원은 없고, 집에 있는 동생들하고는 수준이 안 맞고. 심심하다, 햇볕이나 쬐면서 그냥 쭉 걸어가고 있는데,
“어?”
병아리가 한 마리 쫑쫑쫑 내 옆을 지나간다. 어? 어라? 진짠가? 병아리는, 어디를 가는지 정말 열심히 걸어가고 있었다. 가느다란 다리, 서투른 걸음.
탈출이다!
병아리는 자기 주인한테서 탈출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여러 번 봤는데 가끔 우리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파는 할머니를 본 적이 있다. 얼마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몇 백 원 했다. 갈색 종이 상자, 크기가 거기서 거기인 병아리들. “삐약삐약”인지 “삑삑삑”인지 하는 소리에 주변으로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나도 슬쩍 눈길은 갔지만 거기에 껴서 구경하는 일은 없었다. 병아리가 싫어서가 아니라 아이들 틈에 끼는 행위가 싫었던 까닭이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병아리보다는 병아리를 파는 할머니 얼굴에 더 눈길이 갔다. 행여 눈이라도 마주칠까봐 조심스러웠는데 꼭 동화에 나오는 노파를 만난 기분이었다. 마녀라고 얘기하면 할머니한테 실례니까... 그렇게 표현하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읽은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노파는 참 무서운 존재였다. 9점짜리 수학 시험지를 보고 버럭버럭하는 우리 엄마보다도 더.
분명 병아리는 누구 집에 팔려갔다가 용케 탈출했다. 자유를 찾아서!
“멋져!”
박수가 절로 나왔다. 저렇게 연약한 몸뚱이를 가지고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는 모르겠다만 진짜로 대단하다고 감동했다. 나 말고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는 길, 여기는 돌아다니는 개가 적지 않다. (요즘에는 길고양이가 있지만 나 어릴 땐 ‘똥개’라고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는 개가 꽤 있었다. 가끔 성격 나쁜 똥개를 만나면 무서워서 지나가지 못하고 쩔쩔매던 기억이 난다.)
너 갈 곳은 있니?
병아리 자기도 계획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두면 위험한 상황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앞에 있는 집 대문에는 ‘개조심’이라고 쓴 팻말이 붙어 있고, ‘뿌꾸’는 종잡을 수 없는 말괄량이라서 나도 예전에 한 번 손등을 깨물린 적이 있다. 여기는 차도 많이 왔다 갔다 한다. 얘! 너 왜 여기로 다니니? 라고 나한테 호통 친 아줌마도 한 성깔 해 보여서, 어머! 이런 게 왜 돌아다니고 난리야! 걸리면 끝장이다. 곳곳에 험난한 것투성이. 먼 길을 떠나는 나그네마냥 지나가는 병아리를 두고 가자니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한적하고 자유로운 길. 오늘 햇볕 쬐기는 여기서 끝내자고 결심했다. 끝내고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고.
“엄마!”
이거 좀 봐. 집에 오자마자 엄마한테 병아리를 보여줬다. 엄마가 병아리를 보고 뭐라고 그랬는지 기억은 하나도 안 난다. 안 나지만 우리가 병아리를 키우기로 했으니 반대하는 소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식구는 라면 박스로 집을 만들어주고 병아리가 먹을 물 그릇, 밥 그릇, 그런대로 구색을 맞춰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집터는 현관 근처였는데, 며칠 못가서 병아리가 밤새 시끄럽게 울어대는 바람에 집안에서 집밖으로 추방당하는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마침 빈 새장이 있어서 병아리는 거기에서 살게 되었다. (새장은 전에 있던 앵무새가 살던 곳이었는데 걔도 정도를 모르고 시끄럽기가 꽥꽥 장난이 아니라 멀리 귀양을 보냈더랬다.)
병아리한테 미안했다. 데려와 놓고 철장에 갇히는 신세나 지게하다니. 하지만 우리 집에서 나는 아무런 힘이 없어서 병아리 대신 엄마하고 싸워줄 수가 없었다. 그러려면 나는 적어도 20 나누기 3은 무엇인지부터 해결해야만 했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여전히 하늘이나 보는 아이였다. 널 위해서였어, 라고 말해봤자 병아리한테는 먹히지 않을 말일 테지. 삐약삐약 우는 병아리, 좁은 새장, 나는 오늘도 병아리랑 만났던 장소에서 또 혼자 놀다가 이제 막 집에 왔다. 가면, 뿌꾸랑 하얀 개가 살고 여기 집으로 들어갔다가 저기 집으로 빠져나오는 신기한 길. 거기에서 나는 행복했다. 그대로 뒀다면 너는 나랑 달랐을 거야, 라고 말한다고 해서 병아리가 나를 용서해 줄지는 모르겠다.
“고양이가 잡아먹었어.”
내가 없는 사이에 병아리는 고양이가 잡아먹었다고, 엄마가 말해줬다. 고양이 짓이 아니라 목숨이 다 해 죽었지만 엄마는 그렇게 묘한 포장을 했다. 응, 텅 빈 새장을 보며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니까.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는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차피 이름도 없었어.”
지금도 모르겠다. 병아리를 우리 집에 데려온 것이 잘한 짓인지 말이다. 어쩌면 병아리는 끝이 나더라도 거기서 실컷 돌아다니다 끝이 나고 싶었을지도 모르는데. 쫑쫑쫑, 그 날의 병아리는 정말 열심히 걸어가고 있었다. 성실하며 의지가 강한, 가는 두 다리.
20년 넘게 지난 일이지만 나는 병아리를 잊지 못하고 있다. 병아리는 조그맣고, 레몬 색이었으며 눈이 까만 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