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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령 Aug 24. 2019

요가하는 해파리 11

오늘도 잉차잉차 열심히

우리 요가 선생님은 참 예쁘다. 그러니까, 키를 보면 딱 봐도 보통이상으로 큰데다가 팔다리는 길쭉길쭉하니 쭉 뻗었다. 군살이 없어서 착 달라붙는 옷을 입고 요가 동작을 하면 그 모습이 그렇게 시원스러우면서도 우아해 보일 수가 없다. 화장기가 없는 얼굴, 뾰족한 턱, 귀밑과 목덜미 사이에 오는 단발.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하면 다른 일에 빠져있느라 표정 없이 있다가 씩 웃는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느낌이 뭐랄까... 그래, 이른 아침에 보는 기다란 풀잎이 생각난다. 단순하고, 연두색이고, 순순하니. 


우와. 처음 요가 선생님을 보고 정말 우아, 라는 소리 없는 소리가, 그리고 눈이 반짝반짝했다. 첫눈에 반해 동경의 대상이 돼버려서는 나도 요가를 열심히 해서 요가 선생님처럼 돼야지, 결심을 했다. 표정 하나 까딱하지 않고, 어떤 자세든 척척 해내며 느긋하니 요가 하는 나를 상상했다. 사람이 사람을 동경하면 다들 어떻게 행동하는지 모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되게 쑥스러워한다. 쑥스러워서 인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든지 선생님 앞을 지나가야하는 상황이 오면 나도 모르게 두근두근 긴장이 된다. 몇 번은 너무 두근두근해서 빙 돌아간 적도 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처음에는 그런 적이 있었더랬다. 나 원 참.


우리 요가 수업은 각자 자리가 딱 정해진 것이 아니다. 아니고 수업에 오는 순서대로 자기 자리를 잡는데, 대부분 매일 같은 자리를 차지한다. 그런 부분은 나도 마찬가지인데 내가 주로 차지하는 자리는 맨 끝 가장자리. 그렇다 구석이다. 늦게 와서 거기가 아니고 일찍 오는데도 불구하고 늘 구석 자리에 요가 매트를 깐다. 요가 선생님이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인 셈이다. 여기로 오세요, 몇 번 요가 선생님한테 불려 마지못해 선생님 옆자리에 간 적이 있지만, 그게 아니면 나는 고집스레 구석을 선호한다. 선생님 눈을 쏙쏙 피해서. 여기서 내가 이러는 데는 다 까닭이 있는데 요가 선생님 옆이 쑥스러워서가 아니다. 아니라.......  


우리 요가 선생님은 참 엄격하다. 싱글싱글 예쁘게 잘 웃는 얼굴과 달리 요가를 시작하면 사람이 돌변한다. 버티세요. 아직이에요. 마산 사람이라 말투에 경상도 사투리가 있어서 나긋나긋하게 얘기해도 어쩐지 세게 들린다. 꼭 혼나는 기분이라 왼쪽, 왼쪽 다리예요! 나한테 하는 소리가 아닌데도 내 다리를 확인하게 된다. 즉, 요가 선생님 옆에서 하면 꾀를 부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꾀. 꾀, 말이다. 


나 되게 못하네, 처음 요가를 몇 번하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 생각은 아직까지 한다. 요가를 시작한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불구하고 도무지 적응이라는 게 없다. 특히 다리에 근력이 턱없이 부족해 서서 버티는 자세에서는 픽픽 쓰러지기 일쑤고, 앉아서 양 옆으로 다리를 벌리는 자세에서는 두 다리 각도가 무슨 얘들 장난이다. 유연성이라는 것은 기르려고 하면 할수록 발전한다던데 나는 어째 거기서 거기다. 다른 사람들을 보니, 다들 일자는 아니더라도 나보다는 잘한다. 나는 다리를 찢으라고 하면 허벅지가 왜 이리 아픈지, 허벅지 살이 찢어질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요가 자세들 가운데 누워서 하는 동작을 가장 좋아한다. 누워서 팔이나 빙글빙글 돌리고 있으면 어깨 결림이 풀리는 기분이라 마냥 그것만 하고 싶은 것이다. 요가 선생님을 따라 예뻐지겠다는 초심 따위, 내가 그런 생각을 했었던 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렇게 초심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나는 꽤 성실한 학생인지라 꼬박꼬박 수업에 참여를 하는 편이다. 하나하나 앞에 있는 선생님을 보고 자세를 따라하는데 나름 꽤 표정만큼은 진지하다. 진지하게 하려고 노력한다마는, 버티기 힘든 자세에서는 나도 어쩔 수가 없다. 유연성이 꽝인 관계로 꾀를 부리게 되는 것이다.  


늘 하는 자세 중에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자세가 하나 있다. 그러니까, 두 다리를 양쪽으로 좍 벌리고 가슴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숙이는 자세. 선생님이, 내려가세요, 하는 동시에 나는 가슴이 바닥에 닿도록 내려가긴 한다마는 손바닥만 바닥에 닿지 가슴은 전혀 아니다. 잉차잉차 아무리 애를 써도 다리는 찢다 말았지 뻣뻣 그 자체이다. 잘 안 되는 걸 어떡해? 대애애-충 적당히 하자, 하루는 그러고 있는데, 저기 저기서 요가 선생님이 내게 다가오는 거라. 그 긴 다리로 성킁성큼 오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나는 요가 선생님이 다가오는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생존본능이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비유를 하자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던 사슴이 멀리서 슬금슬금 다가오는 사자의 움직임을 눈치 채는 경우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럴 때 사슴은 잽싸게 도망이라도 갈 수 있지 나는 그럴 수가 없다. 불행하게도 잉차잉차 고개를 푹 숙인 채 손끝을 부들부들 떨고나 있을 수밖에. 오지마라 오지마라 오지마라 제발 오지마라. 별 소용없는 주문이나 외면서. 역시 주문이 먹힐 턱이 없다. 선생님은 내 앞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앉더니,


 “더 할 수 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내 다리를 북- 찢으셨다. 잔인하게도.

  “악!”

악! 거기서 정말 진짜로 육성으로 터졌다. 산 정상에 올라도 야호! 한 번도 부끄러워서 못하는 나인데, 어디 가서 큰소리 내는 짓도 싫어하고, 흥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목소리 자체가 세지 않은 ‘나’이다. 그런 내가 수업 중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버티세요.”

나왔다. 그 놈의 버티세요. 내가 아픔을 호소한다고 해서 봐줄 우리 요가 선생님이 아니다. 내가 다리를 오므리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선생님의 단호한 두 발. 이때만큼은 선생님의 길고 쭉 뻗은 다리가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그저 원망스러워서 왜 그렇게 낳으셨어요? 선생님 엄마를 붙잡고 울고 싶었다. 엉엉엉. 


나는 이제 꾀를 부리지 않는다. 꾀를 부리면 반드시 언젠가는 호되게 당할 것이라고, 몸소 배운 까닭이다. 하기 싫다고 적당히 얼버무리는 짓은 나한테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기도 하거니와 정당하지 않다. 사람은 무엇을 하든, 남들이 뭐라 하든,  떳떳해야한다고, 비겁한 사람만큼은 되지 말자고 이번에 크게 결심한 바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우리 요가 선생님을 좋아한다. 저번에는 간단하지만 말도 걸어봤다. 평소보다 일찍 나오셨기에, 일찍 오셨네요? 라고. 선생님은 시간이 좀 남아서 일찍 나왔다고 대답해주셨다. 아, 나는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고 대화는 거기서 끝났지만 나로서는 큰 발전이었다. 요가를 시작한지 일 년이 다 되어가지만. 

내 요가 매트는 진한 파랑이고, 내 자리는 항상 구석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이따가 요가를 하러 간다. 잉차잉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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