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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령 Aug 18. 2019

요가하는 해파리 10

다 큰 어른 

나는 왜 초능력이 없는 것인지, 심하게 좌절했던 시절이 있었다. 진심으로. 물론 TV 만화에 푹 빠져있던 아주 어릴 적 이야기지만 당시 나는 농담이 아니었다. 푸른빛이 나오는 분홍색 요술 봉을 소유하고, 뒤꿈치만 살짝 들면 하늘로 날아오르고, 딱! 엄지와 검지 한 번 튕기는 것만으로도 주변 사물들을 내 마음대로 조종하는 등등. 이런 특출한 능력을 가진 나를 상상했고,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어린애가 아니고, 남들과 별로 다를 바 없이 눈에 띄지 않는 보통사람으로서 당시를 생각하면, 나 원 참,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일이지만. 그땐 그랬다. 그런데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아침에 일어나 프랑스에 있는 빵집에 가서 갓 나온 바게트를 사서 휙 한국에 있는 우리 집에 오고, 친구들이랑 신도림에서 밤늦게까지 놀다가 휙 신림에 있는 우리 집에 오고, 교통비 하나 없이 시간과 공간을 휙휙 오고 가는 나를 상상하면서, 아직도 이랬으면 좋겠다고 종종 생각한다. 이렇게 꿈속에 사는 나는 어린애인가? 다 큰 어른이 쯧. 쯧. 쯧.


그렇다. 나는 서른이 넘었고, 서른이 넘었으면 어른 축에 든다고 세간에서는 말한다. 나이 값 좀 해, 라는 소리를 듣는 동시에 다 큰 어른이 쯧, 쯧, 쯧, 이런 소리도 징그러우리만치 듣는다. 얼마를 지불해야 나이 값이고, 얼마나 자라야 어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계산이 하나도 안 된다. 나는 지금도 친구랑 다투고, 먹기 싫은 반찬이 있고, 엄마 몰래 라면을 끓여 먹는다. 다 큰 어른이 쯧. 쯧. 쯧.


이 밖에도 따져보면 ‘다 큰 어른이 쯧. 쯧. 쯧’은 되게 많다. 자기 먹으려고 동생이 사둔 간식도 몰래 먹고,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할 일을 미루며 하늘이나 보고 있고, 엄마가 하는 말이 옳은 거 알면서 따박따박 말대꾸 하고. 정말 ‘다 큰 어른이 쯧. 쯧. 쯧.’이다. 밥은 꼬박꼬박 거르지 않고 잘 먹었더니 찌지 말라는 살은 잘도 찌면서 나이는 꼬박꼬박 거르지 않고 잘 먹었어도 도무지 효과를 보고 있지 않다. 쓸데없이 정직한 몸, 영양가 없는 나이. 


최근에 친구 두 명하고 문제가 있었다. 선생님이 친구하고 사이좋게 지내야한다고 가르쳐주셨는데 어릴 때도 그렇게 다투더니 다 커서도 싸움이나 하고만 것이다. 한동안 안 그러는가 싶더니 또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문제는, 어렸을 때만해도 싸우면 화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안해, 말로 하기가 부끄러워서 일부러 편지지를 사다가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난다. 그때야 핸드폰이 없었던 시절이었으니까. 아무튼 그랬는데 지금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걔가 나한테 상처를 줬어, 나한테 어쩜 그럴 수가 있어, 다시는 안 보겠다는 심정. 메시지 차단이면 끝인 줄 알고 차단해놓고서 혼자 부글부글하고 있다. 나름 성실한 학생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배움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니. 정말이지, 다 큰 어른이 쯧. 쯧. 쯧. 그렇다고 해서 머리로 반성은 하고는 있다마는 어쩐지 선뜻 친구한테 마음이 가지 않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어린애인가? 하.......


초능력. 여러 가지 초능력 가운데 사람 마음을 조종하는 초능력이 있다. 눈을 부릅뜨고 시선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친구든 연인이든 세상사람 마음 제 마음 같지 않다. 그래서 상처받고 꼭꼭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사람이라면 정말 탐나는 능력이겠다. 물론 그렇게 해서 얻은 마음이 진심인지 아닌지 의심이 되고 나중에는 허무해질 수도 있겠지만 그런 문제는 둘째 치고 당장에는 욕심이 나겠다.  


나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능력. 있어서 친구한테 쓰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게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초능력이 있다면, 나는 나한테 그 초능력을 쓰고 싶다. 그러니까, 땅에 박힌 바위마냥 꿈쩍 않는 내 마음을 내가 스스로 조종하고 싶단 말이다. 주먹으로 내 이마를 내가 콩 한번 치는 것만으로도 친구한테 먼저 다가가겠다는 의지가 마음에서 마구마구 솟아나는 것이다. 

 “.......”

참 나 원. 큰 맘 딱 먹고 먼저 연락하면 될 일을 초능력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나를 본다. 다 큰 어른이 쯧. 쯧. 쯧.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만다. 너무 많이 생각해서 머리가 아파 일단 생각 안하기로 한다. 인생 간단하게 살고 싶다, 하늘이나 본다. 구름 모양이 참 가지가지 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내가 지금도 초능력이 있으면 좋겠다. 아무 거라도 좋으니까 아무거나 딱 하나만. 초능력이 생기면 제일 먼저 두 친구한테 가겠다. 한 사람, 한 사람, 친구가 괜찮은 시간에 찾아가는 것이다. 여유가 있고, 날씨가 좋은 날에. 

  “이 거 봐라.”

어때, 신기하지? 무슨 초능력이 내게 생길지 모르겠지만 이거 봐라, 하면서 보여줘야지. 그리고서,

  “뭐든 말해 봐.”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소원을 얘기해주면 들어주겠다고 하겠다. 딱 하나만이야, 짐짓 허세도 부리면서 말이다. 하늘, 바람이 불어 바뀐 구름 모양. 느긋한 햇살. 


여기는 내가 자주 가는 카페이다. 창가 쪽 자리에 앉아 보니, 통유리창 너머로 하얗고 조그만 나비가 보인다. 옆에 동무 하나 없이 혼자서 잘도 날아다닌다. 참 열심히네, 날갯짓이 무지 성실해 보인다. 쟤는 어른이겠지? 애벌레에서 다 자란 나비니까. 나는 언제 얼마나 자라야 쟤처럼 어른 노릇 야무지게 하련지, 다 큰 어른이 쯧. 쯧.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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