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뭐, 그렇다는 얘기다.
와장창 키우던 로즈마리 화분이 깨져버렸다. 깬 사람은 아빤데 내가 자고 있던 이른 아침에 있었던 일이라 그 후에 알았다. 내가 알았을 땐, 로즈마리는 이미 아빠 회사에 가고 없고 깨진 화분은 처리 된 상황. 로즈마리는 아빠한테 입양 된 셈이다. 이제까지 로즈마리는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줬고, 많이 자랐네, 이만하면 됐다 싶었을 땐 가위로 잘라주었다. 적당한 길이로 볼품없는 모양새가 되지 않도록.
자른 로즈마리는 향주머니에 담아 회사 사무실에 가져다 두었다. 내가 쓰는 칸막이 책상 옆에 걸어두고는 일하다가 생각나면, 또는 살짝 스트레스를 받으면 킁킁 로즈마리 향을 맡았다. 맡으면, 온몸이 초록색으로 물드는 기분이었다. 이거, 꽤 중독이랄까?
그런 일이 일어나고 그 주에 쉬는 날 바로 꽃집에 갔다. 토요일, 오전 일찍, 물기가 꽉 차고 뜨끈한 장마철 공기.
우리 집 앞에는 꽃집이 한 집, 두 집, 두 집이 나란히 붙어 있다. 예전에는 몇 집 더 있었는데 도로를 낸다는 큰 공사를 시작하면서 없어지고 두 집이 남은 것이다. 두 집 중에 내가 가는 곳은 왼쪽 집인데 거기로 가는 까닭은 바로 ‘개’ 때문이다. 그 집에서 키우는 개로 종은 코카스파니엘. 갈색이고 딱 봐도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 늙은 개다. 몇 년째 보고 있지만 갈 적마다 개는 나를 쳐다봐주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 뒤를 졸졸 쫓아다닌다. 흠... 개들은 사람을 잘 따른다던데 내가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건지 아니면 개의 성격인 건지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개라고 다 살가운 건 아닐 테니까. 그렇다고 내가 쓰다듬는다고 해서 딱히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라서 나는 꾸준히 거기로 간다. 가면, 이 녀석 어디에 있나, 두리번두리번 꽃집 안을 휘이 둘러본다.
그런데 오늘은 갔더니 그 녀석이 없었다. 장마고, 꽃집은 후덥지근하고, 자기는 나이가 많고, 기분도 별로라 나다니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워리야, 워리야, 넉살 좋게 부를 처지는 아니라서 하는 수 없이 만나기는 포기하기로 한다. 큰 꽃집을 비워두고 주인 아저씨 아줌마도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아서 나 혼자 식물 구경을 했다. 여기 다 있네, 새로 데려 갈 로즈마리를 고르는데 하나, 하나, 영 마음에 차지 않았다. 다들 지나치게 자라서 화분에 옮겨 심으려면 큰 화분이 필요한 것이다. 로즈마리 지정석은 우리 집 베란다 창문틀 위인데 큰 화분은 거기에 맞지 않는데다가 다른 곳에 둘 곳은 없다. 엄마가 봐도 불안했어, 그렇지 않아도 엄마가 언젠가는 깨질까봐 불안했다고 핀잔을 줬다. 그러다가 진짜로 아빠가 깨버리는 사단이 나고.
옆집으로 가자, 주인 아저씨 아줌마가 없으니 인사도 못하고 오른쪽 꽃집으로 이동했다. 가니까, 거기에 있는 로즈마리들은 예전 로즈마리를 처음 살 때에 비하면 조금 크긴 하지만 이만하면 데려가기 적당했다. 아줌마한테 분갈이를 맡기고 여기저기 둘러본다. 보는데 고양이 한 마리하고 눈이 마주쳤다. 검은색이고 갈색 점이 있는 어른 고양이. 나는 개보다 고양이를 좋아하고 옛날에 키워본 적도 있어서 반색을 했다. 야옹아, 쪼르르 다가갔더니 휙 저리로 도망간다. 치. 비싸게 굴기는.
“화분 받침대도 필요해요?”
“네, 주세요.”
싫다는 고양이 귀찮게 구는 짓도 실례고, 그래야 고양이답지, 이해 못할 짓도 아니라서 그렇게 꽃집을 나왔다. 그래도 참 그렇다. 왼쪽 집 개든, 오른쪽 집 고양이든 설마 나한테만 이러는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언젠가 또 갔을 때 다른 손님한테는 살갑게 구는 꼴을 보면 그땐 정말 서운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주인 아저씨 아줌마 몰래 꼬집어 줄까 보다. 잔뜩 구름 낀 하늘. 관악산에서 흘러나오는 여름 산 냄새.
우리 동네에는 돌아다니는 고양이가 꽤 있다. 가끔 가는 커피집 창가 자리에 앉아 있으면 늘 보는 고양이가 있는데 몸집이 크다. 걔는 생김새를 자세히 보면 진짜 험악하게 생겼다. 사는데도 맥주랑 감자튀김을 파는 술집이고. 뚱뚱하고, 인상 나쁘고, 사는 데도 건전하지 않아서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사람 손을 타서 그런지 낯가림 없이 잘도 나다닌다. 가게 아저씨랑 잘도 놀고. 커피집에 오는 사람들도 그 고양이를 보면 아는 척을 한다. 그런데 나는 한 번도 눈을 맞춰 본 적이 없다. 어? 고양이다, 다가가려고 하기만 하면 저리로 휙, 가버리니까. 흥. 못생긴 고양이.
또 고양이 하나는, 피자집인데 피자집에서 사는 고양이는 아니고 거기에서 밥을 얻어먹는 고양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 나는 저녁에 밖에서 뜀박질을 했었다. 도림천이라고, 긴 산책로인데 산책이나 달리기를 할 수 있고 자전거도 탈 수 있다. 길옆에는 물이 흐르고 오리랑 무슨 종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얗고 목이랑 다리가 긴 커다란 새도 볼 수 있다. 거기에 가는 길이면 그 시간에 꼭 보는 고양이가 바로 그 고양이다. 몸통에 누런 줄무늬가 있는 배가 고픈 고양이. 거길 지나갈 때마다 보면, 고양이는 피자집 앞에 앉아서 피자집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먹이를 기다리는 입장에 딱 맞는, 더할 나위 없이 올바른 자세로. 고양이가 됐네, 됐어. 예의바른 고양이다 생각해서 마음에 쏙 들었다. 하는 짓이 예쁘기도 하거니와 정말이지 꼭 한번 쓰다듬고 싶었다. 하지만 빈손으로 가면 꽃집 개나 오른쪽 집 고양이, 술집 고양이처럼 무심하게 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역시나 피자집 고양이도 그랬다. 다가가면 피자집 뒷골목으로 휙 가버리고, 다음 날 또 도전해도 저리 휙 도망을 갔다. 성격 참 좋아보였는데 어떻게 안 될까? 어쩐지 포기할 수가 없어 고민, 고민, 방법을 연구했다. 연구한 끝에 집에서 마른멸치를 한주먹 챙기기로 했다. 먹이만큼 꼬시기 딱 좋은 것은 없지. 후후.
엄마 몰래 마른멸치를 몇 마리 훔쳐서 비닐봉지에 담았다. 성공해서 고양이를 만질 생각을 하니, 혼자 신이 나서는 룰루랄라 피자집으로 달려갔다. 안녕? 봉지를 열어 보여줬다. 보여줬더니 도망가지 않고 관심을 보여주기에 얼마나 고맙던지 나는 감동하고 말았다. 먹을래? 좋아하고 먹을 줄 알았는데 입에 대지 않기에 어리둥절했다. 잠시 생각하다가, 아! 내 손을 그릇삼아 손수 입에 대줬더니 그제야 냠냠 잘도 먹었다. 귀하게 자랐나보네, 딱히 그래 보이진 않는데 하는 짓이 이러니 역시 고양이는 귀하신 몸인가 보다 생각했다. 조금 아니꼬웠지만, 그래도 좋았다. 나랑 같이 있어줘서. 내 옆에 딱 붙어 있어줘서 진짜 행복했다. 내 손에 코를 박은 고양이 뒤통수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또 내가 쓰다듬어도 가만히 있어주고. 내일 또 와야지. 저녁만 되면 마른멸치를 엄마 몰래 훔쳐서 고양이한테 주었다. 나는 매일매일 챙겨서 나왔지만 고양이는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었다. 있을 때면 나는 기뻤고 없을 때면 그게 어찌나 실망스럽던지, 어디 있지? 피자집 캄캄한 뒷골목을 살펴 볼 정도였다. 그렇게 종종 고양이랑 짧은 시간을 보냈는데 어느 날 저녁, 다른 일로 지나가다가 고양이를 보았다. 어떤 남자랑 여자가 귀엽다고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었는데 그들 손에는 멸치도 뭐도 아무 먹이도 없었다.
아......!
그 순간 들었던 생각은, 뭐야, 고양이 주제에,였다. 고양이 주제에 사람을 따르다니, 고양이답지 않다고. 고양이가 얄미웠다. 이제 멸치고 뭐고 없어! 그 후로 내가 엄마 몰래 마른멸치를 훔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반년이나 지났지만 나는 아직까지 삐져있다. 그리고 반년이나 지났지만 나는 아직까지 삐져있다. 나도 안다. 귀하신 고양이님은 내가 삐지든 말든 하나도 신경 안 쓰신다는 거. 다들 들으면 고양이 하나 때문에 혼자 난리라고, 참 쓸데없다고 하겠지만,
그래도 뭐 그렇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