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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령 Jul 20. 2019

요가하는 해파리 7

초록색이 방울방울.

우리 동네의 좋은 점 가운데 가장 좋은 점은,  초록색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초록이 꽉 찬 우리 동네. 우선은 우리 집 바로 옆에 관악산이 있는데 거기에 있는 초록색부터가 어마어마하다. 산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마다 색깔이 변하고 그게 매력이라지만, 내 생각에는 사계절 내내 이파리가 색이 변하지 않고 꾸준히 돋아 있는 식물 종류도 양이 꽤 되기 때문에 기본은 초록색이다. 또, 우리 동네에는 싸고 괜찮은 커피집이 많은데 커피집이 늘어선 길을 따라 쭉 걷다보면 군데군데 초록색이 많기도 하다. 진짜 많네, 와서 보면 이런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많은데 많기만 한 게 아니라 실로 색깔 종류도 다양하다. 


한 그루 나무 아래서 턱을 치켜들고 자세히 본다. 보면, 색이 무거운 초록색이 있고, 보다 가벼운 초록색, 되게 가벼워 보이는 초록색이 있다. 바람이 살랑살랑.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신호를 기다린다. 멀리 보고 하늘 전체를 보면 하늘 아래로 초록색이 쭉 이어진다. 옅고 짙은 초록색이 한데 어우러져 있고 바람에 섞여 불어오는 이파리 냄새가 기분 좋다. 하늘에는 하얀색 구름. 구름은 하늘보다 분량이 많고 두툼하다. 


초록색이 가장 잘 어울리고 예쁜 우리 동네. 


이건 내 생각인데 초록색이 많은 동네라서 그런지 우리 동네 사람들은 참 상냥하다. 상냥하고 온화하다. 맛있는 건 나눠 먹어야지, 라며 레몬 맛 마들렌을 공짜로 주시는 커피집 사장 아주머니도 좋고, 사장님한테는 비밀이라며 레귤러 사이즈 가격에 라지 사이즈 카페라테를 준 적이 있는 직원 오빠는 말투가 차근차근하다. 오랜 만이에요, 어쩌다 볼 때면 진짜 반갑다는 얼굴로 인사 해 주는 얼굴이 하얀, 여자애 직원도 좋고. 나는 여기 커피집에 자주 간다. 여기 말고도 자주 가는 편의점이 있는데 거기 사장 아저씨도 친절하다. 지금은 없지만 거기에는 원두를 갈아서 내려주는 편의점 커피가 있는데 가격이 비싸지 않은데다가 맛도 의외로 좋아서 심심하면 사먹곤 했다. 그랬는데, 한번은 내가 이제 막 다 내린 커피를 꺼내려다가 그만 바닥에 쏟고 말았다. 아... 아까운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사장 아저씨한테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바닥에는 갈색 커피물이. 아저씨, 쏟았어요. 거의 우는 소리로 창고에 있는 아저씨를 불렀더니, 어이구, 하시며 얼른 달려와 대걸레로 바닥을 닦으셨다. 그리고는 손수 다시 커피를 새로 내려서 내 손에 가져다주기까지 하셨다. 또 돈은 받지 않으셨다. 감사합니다. 째깍 허리를 90도로 꺾어 감사히 커피를 받았다. 편의점 사장 아저씨는 언제 봐도 항상 기운이 넘친다.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목소리가 크다. 편의점은 관악산에서 아주 가깝고 바로 옆에는 작은 공원이 있다. 초록색에 둘러싸인 셈이다. 그 밖에 햇볕이 무시무시한 여름 날, 덥다고 징징댔더니 먹으라며 냉장고에서 야채 크로켓을 꺼내 서비스로 준 빵집 아주머니도 좋고, 집 앞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는 청년은 생김새가 참 반듯하니 좋다. 대출반납하려고 갈 적마다 느끼는 건데 누구네 집 아들인지 무지 잘 컸다. 훈훈하니 목소리도 차분하고. 참 좋네. 이게 죄다 초록의 기운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이래서 사람은 초록을 가까이 해야 해. 되도록 하루에 적어도 한 번은 초록색 식물을 보고, 초록색 채소가 들어간 음식을 먹어야 하며, 가능하면 초록색 식물을 만지고 초록색 냄새도 맡을 수 있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아침에는 삶은 계란 두 개. 점심에는 볶음밥. 출근을 하는 매일이면 꼭 정해진 나의 식단인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양배추 즙을 먹고, 다음은 마실 물을 끓인다. 아침 식사로는 삶은 계란 두 개, 곁다리로 채소나 해조류를 먹는다. 여기서 채소나 해조류는 꼭 초록색을 먹는데 요즘에는 상추와 다시마쌈을 번갈아 먹고 있다. 다 먹고 나면 다음에는 미역줄기를 먹을 생각이다. 나는 식물을 키우는 사람이라 아침이면 매일매일 아이들 건강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특히 로즈마리는 쉬이 약해지는 아이라 더 마음이 가는데 밤사이 이파리가 갈색으로 변하지는 않았나, 여기저기 손으로 살살 들춰본다. 손가락 끝에 밴 로즈마리 향. 


점심 식사는 회사에서 도시락을 먹는다. 메뉴는 항상 똑같다. 볶음밥. 출근을 하지 않는 날, 이 주일 분의 볶음밥을 해서 전자레인지용 그릇에 소분하여 냉동실에 보관해 둔다. 그리고는 하루에 하나씩 하나씩 꺼내 해동시켜 보온 도시락통에 가져간다. 이렇게 하면 간단하고 밥값도 아끼고 점심 식사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이 주일 점심시간이 단순하고 편리하다. 여기서 볶음밥에도 꼭 초록색이 들어가야 한다. 볶음밥을 만들기 전 날 마트에 갈 때면 나는 반드시 초록색 채소를 산다. 초록색 피망은 기본으로 사고, 전에는 시금치를 추가했는데 요즘에는 애호박을 더한다. 다음에는 깻잎을 가위로 잘게 잘라 넣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향긋하니. 


저녁에는 요가를 다녀온다. 하루 복잡했던 숨을 정리하고 오는데, 오는 길에 커피집이 있는 길을 따라 쭉 걸어 올 때면 솔솔 저녁 바람에서 초록색 냄새가 난다. 해가 져 주변에 빛이 없으니 확실한 초록색은 볼 수 없지만, 바람 냄새에 초록색이 스며있다. 만약에 바람에도 색깔이 있다면 우리 동네 바람은 분명 초록색일 테다. 이렇게 나의 하루는 초록색으로 시작해서 초록색으로 끝이 난다.      


그런데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은 초록색이 아니다. 초록색한테는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분홍색을 제일 좋아한다. 좋아하는 색이 분홍색이라 옷가지며, 텀블러며, 갖가지 물건을 살 때면 꼭 분홍색에 손이 간다. 나중에 입은 옷이라든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놓고 보면 내가 생각해도 징글징글할 정도로. 그냥 끌린다고나 할까? 하하하. 


그래도 초록색이 없으면 안 된다. 세상 건강에 좋은 것들은 어째 죄다 초록색이고, 나는 건강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니까. 건강하고 선량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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