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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령 Jul 20. 2019

요가하는 해파리 6

잘 자라도 곤란한

어쩐지 조금, 곤란하게 돼버렸다. 그러니까 어떻게 된 일이냐면, 키우는 식물 가운데 마블선인장 하나가 있는데 키가 자라도 너무 자라버렸다는 것이다. 이름은 토마토. 토마토 발음이 귀여워서 기분 내키는 대로 그렇게 지어줬다. 토마토는 내 생일 날 친한 친구한테 선물로 받았는데 그게 벌써 5년 전 일이다. 선물 받고 무탈하게 지내다가 두 번째 겨울을 나고 많이 아팠다. 시퍼렇게 사색이 되었달 까 초록색 온몸에 군데군데 멍이 생겨서는 딱 봐도 이건 병이 났다 싶었다. 죽은 사람 얼굴빛마냥 창백한 모습에 덜컥 겁이 났다.


살릴 수 있을까요? 집 앞 꽃집에 데리고 가서 물었더니, 꽃집 아저씨가 추워서 그래요, 그 자리에서 가위로 멍든 부분을 싹둑싹둑 잘라주셨다. 겨울 내내 얼어서 이렇다면서. 미안했다. 잘 한다고 했는데 일이 이렇게 돼버려서 말이다. 그 뒤로 지나치지 않으면서도 소홀하지 않게 돌봐줬다. 쭉 돌봐주니 토마토도 볼품없던 모양이 어느새 새롭게 다듬어지고 색깔도 완벽한 초록색이 되었다. 게다가 여기저기 새싹도 돋았다. 나는 그게 꽃 피려는 건 줄 알고 신나했는데 나중에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무척 실망했다는.......


아무튼 그렇게 잘 지내다가 올봄에 넓고 깊은 화분에 이사를 시켜줬다. 시켜줬더니 새집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놀라우리만치 쑥쑥 자라줬다. 감격스러웠다. 평범한 자람 일수도 있겠지만 크게 한번 아팠던 아이인지라 나한테는 보통 일이 아니었기에.  그런데 오늘, 보니까 키가 어마어마하다. 아침마다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면서 참 잘 자라네, 씩씩하다고 좋아만했지 이게 좋아하기만 할 일이 아니라는 건 생각도 못했다. 지나치게 자라서 몸통이 휘어지면 얇은 철 막대를 구해다가 옆에 딱 꽂아주고는 바로 세워주었다. 끈으로 묶어서 고정까지 해서 말이다. 이거 정말 괜찮을까? 오늘 30cm 자로 키를 재보니 약 54cm가 나왔다. 오십 사 센티라....... 잘 자라줘서 기쁘긴 한데 어쩐지 조금 곤란하게 돼버렸다. 잘라줘야 하나? 그때 그 꽃집 아저씨처럼.


그런데 막상 가위를 들으려니까 아깝기도 하거니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니까, 마치 밥 맛있게 먹고 무럭무럭 자란 덩치 있는 아이한테 쓸데없이 크다고 나무라는 기분이었다. 그런 마음, 내가 생각해도 진짜 별로라 차마 손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단 보류하고 토마토의 전체 모습 사진을 찍었다. 찍어서 주변 의견을 물어보기로 했다. 다들 식물을 키운다거나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몇 명한테 사진을 보내주었다. 카톡으로 보내주고 동화  <잭과 콩나무> 같다는 농담이랑 같이 사정을 얘기했다. 그랬더니 딱 한 명을 제외하고 죄다 자르는 편이 좋겠단다. 딱 한 명 제외인 친구는 신기하다는 반응이었고 농담으로 그대로 둬서 나중에 제보하자고 했는데 나는 거기서 빵 터지고 말았다.


자를까? 말까? 자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지만 나는 그래도 고민이 된다. 결국 나는 단호하게 결정하지 못하고 초록색 검색창을 열었다. 마블선인장을 키우는 다른 사람들 블로그를 몇 개 봤는데 역시 잘라주는 편이 좋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 편이 마블선인장한테 이로우니까 다들 그렇게 하는 것일 테고, 나는 마블선인장에 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므로 그들을 따라야 했기에.


자르자, 가위를 들었다. 들었다가... 다시 놓고 말았다. 까닭은, 토마토는 자르고 싶어 하는지 아닌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토마토는 이대로가 좋을지도 모르잖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순전히 내 생각이긴 하지만 나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거 참 답답했다. 토마토는 식물이고 나는 식물의 언어에 대하여 아는 게 하나도 없으니 말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결정하고 내가 책임을 지는 수밖에 없었다. 순간, 참 연약하구나,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우리 토마토는 누가 돌봐주지 않으면 건강하게 살 수가 없겠구나,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욱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 어렵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어려운지 진짜 무진장 곤란해져버렸다. 그리고, 자르고 나면 잘라버린 부분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것도 고민이었다. 쓰레기통에? 어쩐지 비인간적이다. 그래도 같이 지낸 시간이 얼마나 값진데 우리 사이에 의리가 있고 정이 있지 상상하니 벌써 마음이 불편하다. 다른 화분에 심어주어야 하나? 화분 하나가 더 늘어난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곤란한 상황이다. 안 그래도 나 말고도 화분을 좋아하는 엄마가 있어 베란다에는 갖가지 식물들이 넘쳐나기에.


인생 정말 간단하게 살고 싶었는데 또 생각이 많아지고 말았다. 대차게 자르면 그만인 일인데 마음먹고 자르기까지 큰 의지도 필요해지고 뒤처리도 깔끔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도 생겨버리다니. 나란 사람 내가 생각해도 참 피곤하네. 스스로 고민을 만드는 성격이다.


지금 그래서 막 친구 하나한테 카톡을 보냈다. 나와 우리 토마토 사정을 설명하고 혹시 토마토의 분신을 키울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물었는데 아직 답이 없어서 기다리고 있다. 나는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데 토요일 쉬는 날 시간은 째깍째깍 얄밉게도 참 잘도 간다.


빨리 답장이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일 아침 기쁜 마음으로 토마토를 데리고 꽃집에 가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진짜 진짜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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