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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령 Jul 20. 2019

요가하는 해파리 5

햇볕이 민트하게

아침 늦게 오전에 일어나니, 벼르고 벼르던 봄다운 햇볕이 한창이었다. 정말 벼르고 벼르던 햇볕이었기에 바람이 조금 있었지만 충분히 감격스러웠다. 공원에 가자, 요 며칠 사이 뭐가 모자랐는지 이것도 하기 싫고, 저것도 하기 싫고, 이 사람, 저 사람, 다 서운하기만 한 거라. 내가 문제야, 마음 정리하느라 혼자 끙끙 앓던 참. 커피를 끓여 보온병에 담고, 식빵 한 장,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계란을 묻혀 토스트를 했다. 토스트는 점심이고, 간식으로는 민트 마카롱을 준비했는데, 지난주 토요일에 막걸리 한잔하고 산 걸 이런 날을 계획하고 있었기에 일부러 먹지 않고 두었다. 읽을 책이랑 돗자리까지 뒤로 메는 가방에 챙겨서는 집을 나왔다. 이렇게 주섬주섬하다보니 오늘 10시 30분에 상담이 있었는데 살짝 늦고 말았다. 시간약속 안 지키는 사람, 되게 별로인데... 나는 평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이런 일이 어쩌다, 정말 어쩌다 생기면 내가 정말 형편없는 사람 같아 가는 길 내내 속이 상한다. 선생님, 죄송해요. 제가 늦게 출발했어요. 45분까진 갈게요. 버스 안에서 문자를 보냈더니 선생님은 조심해서 오라고 했다. 


상담이 끝나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공원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또, 내가 그간 햇볕을 기다리면서, 꼭 먹어야지, 먹어야지, 했던 하나가 있는데, 


  “민트 초코 파인트로 하나 주세요.”


민트 마카롱, 민트 초코 칩 아이스크림, 민트로 잔치를 해야지. 파인트는 꽤 양이 되는데 그만큼까진 필요 없었지만 포장이 가능한 제일 작은 사이즈가 그거라 어쩔 수가 없었다. 세 가지 맛을 고를 수가 있었지만 나는 민트 맛 하나만 있으면 되었기에 파인트 한 통을 민트 맛으로 꽉꽉 채웠다.


공원은 현재 무슨 공사를 하고 있어서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작년에도 이랬는데 아직도 이러네, 약간 실망스러웠지만 햇볕 쬐는데 큰 지장은 없으니 최악은 아니었다. 공원길을 따라 걸으며 앉을 자리를 샅샅이 살폈다. 공사 현장은 보이지 않아야하고, 주변에 사람은 적어야 하고, 햇볕 쬐기가 목적이지만 너무 뜨거우면 곤란하니까 그늘도 있었으면 좋겠고, 그렇다고 너무 외진 장소는 무서우니까 싫고... 이러다보니 고새 기운이 빠져서는 등에 살짝 땀까지 났다. 안 그래도 저질체력이기도하거니와 나는 꼭 상담이 끝나고 나면 피곤했는데 에너지가 쫙쫙 빠져나가는 기분이랄까?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선생님은 오늘도 상담을 몇 번 더 권유했지만 난 다음을 마지막으로 마다했다. 


여기도 별로, 저기도 별로, 이대로는 시간이 아까운 짓이라 아까 갔던 장소로 되돌아갔다. 그나마 여기가 낫네, 돗자리를 깔았는데 바로 앞에 발바닥 지압을 할 수 있는 돌길이 있었다. 아야야, 아야야, 뽈록뽈록 자갈을 밟으며 앓는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거슬렸지만. 


한 시간 포장을 부탁했기에 돗자리에 앉자마자 아이스크림 뚜껑부터 열었다. 가장자리가 살짝 녹아있었는데 나한테는 이 정도가 먹기 딱 좋은 식감이라 불만보다는 오히려 반가웠다. 좋아하는 맛이지만 평소 찾아먹을 정도는 아니라 오랜만에 먹는 민트초코였다. 한 입 가득 입에 넣고 채 삼키지도 않았으면서 또 푸고, 또 푸고... 앉은자리에서 다 먹어치웠다. 파인트는 혼자 먹기에 많다고 했던 주제에. 

다 먹고 나니, 눈이 감기네, 자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어쩐지 눈꺼풀이 무거웠다. 그래도 햇볕은 감상해야하니까, 눈을 딱 절반만 감고 멍하니 있었다. 음악은 애초에 들을 생각은 없었다. 예전에는 길거리를 걸으면서도 꼭 듣는 편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아예 이어폰은 들고 다니지 않는다. 텔레마케터로 일하면서 고막을 보호하자는 까닭도 있고, 음악을 들으면 지나치게 심취해버려 자기만의 구멍 안으로 들어가고 마는데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니까.

대신에, 바깥 소리를 듣는다. 뭐라고 하나? 참새들끼리 하는 수다도 몰래 엿듣고, 뭐가 그리 재밌을까? 저쪽에 아줌마 둘이서 웃는 소리에 참견도 하고, 나도 여행가고 싶네, 띄엄띄엄 한 번씩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 소리에 여기에 없는 나를 상상한다. 아야야, 아야야, 앞에서 자꾸 아프다고 난리다. 아프면 그만 두지 거 참. 

그래도 좋긴 좋다. 햇볕은 온도는 물론 냄새며 밝기며 죄다 완벽했고, 하늘을 보니 눈도 부시지 않아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하늘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우와! 

우와, 진짜 우와였다. 


초록색을 보면 눈에 좋다고 해서 나무를 본다. 공원에는 예쁜 꽃이 달린 나무가 몇 그루 있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했지만 나는 초록 잎만 무더기로 이고 있는 나무에 정이 더 갔다. 눈에 확 띄지 않아 인기는 없을지 몰라도 나와 같고 너와 같은 보통나무. 멍-하니 이파리들을 하나, 하나, 자세히 본다. 아주 진한 초록색도 있었고, 조금 덜한 초록, 색이 옅어서 연두에 가까운 초록. 색이 진할수록 무거우려나? 저마다 다른 빛깔을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무겁고, 가볍고, 뚱뚱하고, 날씬하고, 모양새는 다 다른 이파리들이더라도 나무 전체로 크게 보니까 하나로 보였다. 그러니까, 저마다 품고 있는 생기만큼은 모두 다 어마어마했다. 누구 하나 뒤처지는 이파리 없었고, 누구 하나 보잘 것 없지도 않았다. 봄볕을 차곡차곡 쌓아 여름이 되면 활활 타오를, 참 뜨거운 초록색들. 


  ‘서로 저렇게 다른데 또 보니까 똑같네.’


우리도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너와 나는 분명히 다르지만, 어쩌면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별반 다르지 않게 특별하고, 별반 다르지 않게 소중하고. 그래서, 너가 슬픈 무언가가 있다면 나도 분명 슬플 테고. 너가 기쁜 무언가가 있다면 나도 분명 기쁠 테다. 그러니 겁내지 말고 내게도 말해줬으면 좋겠다. 나도 너와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


나무랑 나랑 나란히 햇볕을 쬈다. 바람도 살랑살랑. 씩씩하네, 나무한테 그렇게 말해줬더니, 너도, 라고 말해줘서 코끝이 찡 했다. 나무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나무를 안고 있는 내가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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