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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령 Jul 20. 2019

요가하는 해파리 4

반짝반짝한 누군가가

하나와 앨리스는 영화 제목인데, 둘은 사이가 좋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랑 앨리스가 어떤 성격이고, 둘의 사이가 어떻고, 그래서 영화가 참 감명 깊었네, 이게 아니다. 이게 아니고, 내가 영화를 쭉 보면서 딱 두 번 울컥하는 바람에 눈물이 그렁그렁했었는데, 하나는 앨리스랑 아빠(엄마랑 이혼을 해서 어쩌다 가끔 만나는 사이인 모양이었다)가 종일 데이트를 하고 헤어지는 장면이고, 또 하나는 앨리스가 패션잡지 오디션에서 발레를 하는 장면이었다. 


그러니까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먼저는, 앨리스는 지하철 안이었고 아빠는 지하철 밖이었는데 앨리스가 ‘워 아이 니’ 사랑한다고 중국어로 말하자 아빠가 대답했다. ‘짜이 찌 엔’ 헤어질 때는 ‘잘 가’라고 해야 한다고. 그리고 지하철 문은 닫혔다. 거기서 울컥. 앨리스는 다가가려 하는데 아빠가 거리를 두려고 하는 그 한마디에 나는 앨리스가 가여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 순간이 얼마나 외로울까 앨리스는. 할 수만 있다면 나라도 안아주고 싶으련만. 


그리고 나중에 하나는, 오디션만 봤다하면 떨어지던 앨리스가 어느 패션잡지 오디션을 보게 되었다. 거기서 발레를 할 줄 안다니까 사진작가가 그럼 춰보라고 했다. 앨리스는 망설이는 기색은 없었는데 어째 하는 모양새가 영 시원찮았고, 그건 이제껏 다른 오디션에서도 보여줬던 모습이었다. 보는데 나도, 역시나 의욕이 없네, 기운이 쭉 빠져서는 쯧쯧, 했다. 그런데 앨리스가 어쩐 일인지 사진작가가 그만 됐다하는데도 통 나가려들지 않았다. 종이컵과 테이프를 빌리더니, 그걸로 토슈즈를 만들어 신었다. 신더니, 제대로 추겠다며 발레를 하는데 어찌나 아름답던지 전율이 찌르르, 머리부터 타고 쭉 내려오더니 가슴께 와서야 겨우 진정이 됐다. 거기서 또 울컥. 


실제로 앨리스는 음악도 없이 발레를 췄겠지만 영화에서는 예쁜 음악이 흘렀다. 눈으로, 귀로, 앨리스의 발레를 넋이 나가 감상하면서 아름다운 것을 보면 눈물이 난다던데 진짜로 그랬다. 나도 아름다워지고 싶었다. 세상이 밝아진다고나 할까?


어제는 상담을 받았다. 두 번째 상담이었고 상담 해주시는 분도 좋은 분이셨다. 첫 번째 분위기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는데, 상담 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니까, 뭔가 뒷맛이 개운하지가 않았고 생각만 많아져서는 내가 너무 별로인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상담을 몇 번 더 해보자고 처음에 권유받았지만 그만하고 싶다, 말하기로 작정하고 그날 센터를 방문했다. 결국 도중에 마음이 바뀌어 계속 받기로 했지만. 아무튼 나는 마음이 상당히 얇아져있는 상태였다. 살얼음마냥 누가 살짝만 밟아도 저기, 저어어-만큼까지 순식간에 금이 가버릴 정도로. 


나도 나에게 힘을 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었다. 괜찮아, 밝게, 밝게, 그러면서 사람들을 만나 맛있는 요리도 먹고 웃고 실컷 수다도 떨었다. 속으로는 아무 까닭도 없이 이 사람 저 사람 죄다 미워하고 있던 주제에. 마음에도 없는 짓을 하고 있으니 나는 내가 세상 제일 나쁜 위선자 같았다. 그리고 또 마냥 누워있고만 싶었고. 

정말 볼품없다, 최악이네.......

그랬는데,

  ‘세상 참 살만 하구나.’

이렇게 참 아름답구나. 종이컵 토슈즈를 신고, 최선을 다해 발레를 추는 앨리스를 보고 있자니 굉장히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앨리스는 아빠한테도, 좋아하는 남자애한테도, 다가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랬지만 자신을 제대로 보여주려고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 하는 모습이, 무지무지 아름다워서 나는 눈물이 나고 말았다. 


누구나 다 외롭다. 좀 서럽지만 너도 나도 세상은 각자 살아가는 거니까. 

사랑을 돌려받지 못하면 어떡하지? 사랑을 돌려주지 못하면 어떡하지? 이런 고민에 머뭇머뭇 축 쳐져있을 게 아니었다. 돌려받지 못하면 아무렴 어떠나? 또 돌려주지 못하면 어떻고. 그래도 세상은 이렇게나 참 반짝반짝한데. 그러니까 나를 설명해야하는 순간순간 진심을 다 하다보면, 누구 하나쯤은 나를 예쁘게 봐주는, 반짝반짝 한 사람이 분명 있을 테다. 아자!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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