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도 있지
오른쪽 왼쪽이 헷갈린다. 그리고 앞이랑 뒤도.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쭉 헷갈리는 게 아니라 순간적으로 말이다. 순간적으로 딱, 하고 구분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런 게 나는 턱 없이 모자라다.
그래서 신발, 특히 슬리퍼 종류는 오른쪽 왼쪽이 바뀐 지도 모르고 신고 나간 적도 몇 번 있고, 안쪽에 텍이 없는, 앞뒤 디자인이 분명하지 않은 옷은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 참 곤란한기 짝이 없는 옷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맘에 들어서 산 옷이지만 조금은 원망스럽다.
한번은 동생이, 너, 웃기려고 이러는 거지? 이런 적이 있는데 나는 그저 눈만 흘긴 채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아무튼 이렇게 확실하게 하지 않고 내 멋대로 판단 하에 입고 나갔다가 옷 거꾸로 입었다는 소릴 몇 번이나 들었는지 셀 수 없을 정도다. 친구가 얘기 해주면 까르르 웃고 넘어가겠지만 잘 모르는 사람이 하면 무진장 창피하다. 그렇지만 여기서 진짜 당황해버리면 꼴이 우스워지니까 안 그런 척 애쓴다. 마치 내가 평소 너무 바쁜 사람이라 정신이 없어서 실수로 이랬다는, 내가 어쩌다가 이랬지? 스스로도 이해 안 간다는 표정을 일부러 지어 보인다. 그런 연기가 잘 통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또, 지도는 전혀 볼 줄 몰라 같은 자리만 뱅뱅 돌거나 말도 안 되는 방향으로 가기 일쑤고, 짝꿍이 있는 춤 같은 건 생각 만해도 주눅이 든다. 안 그래도 붙임성 하나 없는데 짝꿍한테 엄청 민폐라고 생각한다.
오른쪽 왼쪽 앞 뒤. 살면서 어릴 때야 크게 불편한 일도 없었고 누가 지적을 해도 네네, 하고 별 신경 안 썼는데 이제는 마음이 쓰인다. 이거, 실실거리며 웃을 일이 아니다.
정말 웃을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새로운 장소를 찾아가야 할 일이 생기면, 분명 나는 길을 헤맬 테니 며칠 전부터 걱정하고 긴장한다. 하, 스트레스다. 옷도 그렇다. 옷을 입으려고 보면 평소 잘만 입던 옷인데 그날따라 왜 헷갈려버리는지. 여기가 앞인가? 아니면 여기? 이리보고 저리보고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입지 못한다. 짐작으로 입고 나갔다가 망신당할 수는 없으니까. 앞뒤 사진을 찍어 친구들이 있는 단체 채팅방에 올려 확인을 받는다. 나중에 답변이 와서 확실해진 다음에야 입고 나갈 수 있으니 잠시 보류한다. 하, 피곤하다.
어떻게 하면 빨리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까? 나도 노력은 하고 있다마는 당최 발전이 없으니 기운 빠진다. 여전히 반대로 하고 있는 나를 볼 적마다 어째 그리 바보 같은 지. 내가 생각해도 너무한다싶다. 암만 봐도 모르겠고 아는 방법도 모르겠으니 묻고 또 묻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그저 시키는 대로 하고 졸졸 따라가는 수밖에. 귀찮은 사람은 되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고 만다.
어? 나, 귀찮은 사람인가......?
생각하니, 좀 그렇다. 괜히 살짝 우울해진다. 그렇다고 우울해하고만 있는 못난이는 되고 싶지 않으니 뭐라도 해야지 결심한다. 우울한 날에는 달달한 무언가를 먹으면 나은데, 바나나는 딱히 찾아먹는 과일은 아니지만 우울한 날 먹는 바나나 머핀은 최고라고 생각한다. 내가 오른쪽 왼쪽 아는 방법은 몰라도 바나나 머핀 만드는 방법은 또 안다.
준비물은, 밀가루, 버터, 계란 2개, 설탕 2/3, 생크림, 우유 반 컵, 베이킹파우더 약간.
만드는 방법은 이렇다.
첫째, 버터를 작은 냄비에 녹인다.
둘째, 흰자와 설탕 2/3, 생크림 한 컵, 우유 반 컵, 베이킹파우더 약간을 한데 잘 섞는다.
셋째, 노른자와 밀가루 한 컵, 그리고 녹인 버터를 같이 담고, ‘둘째’도 함께 섞어 준다. 그런 다음 기다란 나무수저로 살살 젓는다. 그런데 오래 저으면 안 된다.
넷째, 노란 바나나 두 개를 껍질을 벗겨 건포도랑 같이 팍팍 으깬다.
다섯째, 반죽이랑 섞는다.
여섯째, 예열해 둔 오븐에 220도로 20분 동안 요리한다.
이렇게 다 하고나면 끝이다. 꽤 달기 때문에 홍차나 아메리카노가 좋다.
그리고,
살면서 좀 헷갈리면 어때, 좀 피곤 하면 어때, 귀찮으면 좀 어때,
“그럴 수도 있지.”한다.
먹고, 기운 낸다. 기운 내서 내일도 그럴 수도 있지 뭐. 하고 헤-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