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있고, 물이 있고, 그리고 바람이 있고.
이제는, 로즈마리 계절. 로즈마리 계절이 왔다.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던 햇살이 점점 엷은 빛을 내는, 햇볕 쬐기 딱 좋은 봄. 이제 봄이구나, 그런 기분이 들면 나는 로즈마리가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왜 보고 싶냐 하면, 매년 봄이면 으레 나는 로즈마리를 산다. 사는데... 봄, 여름, 가을, 여기까지 함께 잘만 지내다가 꼭 겨울이 오면 헤어지고 만다. 끝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은 큰데 어쩐지 그렇게 되고 만다. 바삭바삭 말라버려 싱싱한 맛이라고는 하나 없는 갈색 로즈마리. 어쩔 수 없이 안녕. 그래서 다시 봄이 오면 보고 싶어지는 거다. 때가 되면 찾아오는 버릇이라고나 할까? 제대로 키우지도 못하는 주제에. 나도 참 버르장머리가 없다.
봄은 또 왔고, 햇살은 얇아졌다. 바람도 적당하니 가볍고. 나는 꽃집에 간다. 우리 집 앞에 있는 꽃집인데, 제법 크다. 커다란 비닐하우스 안에는 식물이 잔뜩 있는데 내가 아는 아이도 있고 모르는 아이도 있다. 딱 생김새만 봐도 어떤 성격인지 알 것 만 같은, 모두 꾸밈없고 순진한 아이들.. 그리고 비닐하우스에는 습기 찬 나른함이 한 가득.
로즈마리는 밖에 있었다. 허브는 햇볕이랑 물도 중요하지만 바람이 꼭 있어야 하는 아이기에. 옹기종기 로즈마리를 하나, 하나, 콕콕 집어서 보다가,
"분갈이도 해줘요?"
해주는 거 다 알지만 해달라는 의미로 물었다.
“그럼요.”
주인아주머니가 그렇게 말하면서 비닐하우스 뒤쪽을 가리켰다. 저기에 화분이 있다면서.
올해 로즈마리는 이제까지 골랐던 아이들보다 제일 큰 아이였다. 이파리도 훨씬 길쭉하고 넉넉하니. 가로세로 내 손바닥보다 큰, 네모나고 까만 화분에 옮겨 심었더니 꽤 크고 묵직했다. 어쩐지 마음이 차분해지는 모양새.
로즈마리 향이 참 좋다. 킁킁 맡으면 상쾌하면서도 쌉싸래한 냄새가 나는데 이파리에서 코를 떼기 싫을 정도로 사람을 붙잡는 힘이 있다. 그냥 냄새가 아니다. 여기에는 햇살이 있고, 물이 있고, 그리고 바람이 있다. 모두 한데 버무려져 맛깔 나는 향. 마치 맛있는 요리를 먹으면 기분이 한껏 좋아지는 것처럼. 이렇게 꼬셔대니 내가 봄만 되면 로즈마리한테 집착할 수밖에.
또 쑥쑥 자라고 나면 듬성듬성 잘라다가 하얗고 얇은 망사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니면 좋다. 하루하루 살면서 마음이 심란하다 싶으면 주머니를 꺼내 냄새를 맡는다. 그럼 진정이 되는데 참 그렇게 생산적일 수가 없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기. 자, 맡아 봐, 어디에도 없는 특효약이야. 힘들 때 작게나마 힘이 되어 줄 거라며, 생색은 내면 낼수록 내가 더 힘이 나는 기분이라 있는 대로 내준다.
나는 또 그랬듯이 새로운 아이니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기로 한다. 이번에는 다른 얘들보다 이파리가 다닥다닥하니까... 그래서 여러 마리. “여러 마리” 라고 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