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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령 Sep 09. 2020

요가하는 해파리 25

청학동 이야기, 여섯.

그래, 이것은 피노키오의 기분이다. 그러니까, 동화 피노키오에서 고래의 뱃속에 갇힌 피노키오의 기분이 아마 이렇지 않을까? 서당 툇마루에 앉아 피노키오 타령이나 하는 나는 아까 쉬고도 또 한숨을 푹푹 쉬어댔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음울하고, 물에 젖은 공기는 눅눅하고, 점심때인 데도 해가 나지 않아 사위가 온통 응달이다. 여름도 거의 끝자락. 엊그제부터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비가 오늘도 어김없이 내리고 있다. 무더위라도 삭 가서 시원한 맛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것도 아니고, 장마도 아닌데 또 비라니, 이것은 이상 기후다. 고래의 뱃속 같다. 쉼 없이 내리는 저 비는 마치 고래의 위액 같아서 나는 곧 있으면 흐물흐물 녹아내릴 것이다. 하아-     


종일 해가 났다, 안 났다, 자꾸 약을 올리니 믿을 수가 있어야지. 아이들의 야외 활동은 취소가 되고 나도 마음껏 나돌아다닐 수가 없게 됐다. 그 그림이 이 그림, 이 그림이 그 그림, 죄다 비슷비슷한 그림만 찍어대니 일할 맛이 안 났다. 벗어둔 고무신에 멍멍이가 그 조그만 머리통을 올려놓고 눈을 감고 있었다. 자기가 피곤한 일이 뭐가 있다고 축 처져있기는. 쯧쯧. 뻔히 안 자는 거 알기에, 이보게 일어나시지요? 아쉬운 대로 얘라도 찍어 볼까 해서 카메라에 눈을 대고 멍멍이를 불렀다. 불렀는데, 어라? 사람이 불렀으면 대답을 해야지 들은 척도 안 한다. 어쭈? 툇마루에서 내려와 대놓고 쭈그리고 앉았다. 너 이거 내 신발이잖아. 검지로 조그만 머리통을 콕콕 밀어대었는데, 그래도 아주 사람을 개무시하신다. 멍멍이는 사람을 흘겨보는 눈으로 눈을 잠깐 뜨다 말고는 머리통을 팩 돌려버렸다. 나는 멍멍이가 베고 있던 내 고무신을 확 잡아빼었다. 까불기는. 흥!     


  “너희들 인사 안 해!”     


그렇게 호령하는 소리가 들려 나는 흠칫 놀라고 만다. 돌아보니, ‘사 서당’ 아이들이었다. 한 줄로 쭈르륵 선 아이들은 담당 예사를 따라 점심밥을 먹으러 온 것이었는데, 담당 예사가 나를 발견하고 아이들에게 먼저 예의를 갖춰 인사를 하도록 지도하는 것이었다. “공수!” 맨 앞에 선 반장 아이가 그렇게 외치자 나머지 얘들이 공수 자세를 했고, 안녕하십니까? 모두 허리를 숙였다. 나도 그들과 똑같이 했는데, 하면서 공수를 한 손에 고무신 한 짝이 들려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의 아니게 모양 빠진 꼴을 보이게 되어 창피해진 나는, 얘 때문이야, 고개 숙인 채 눈으로 멍멍이를 찾았는데 고새 어디로 도망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사 서당의 아이들. 사 서당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좀 특별하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 특별하냐면, 여기 서당은 ‘일 서당’ ‘이 서당’ ‘삼 서당’으로 나누어지고, 아이들이 청학동에 오면 이들 중에 어디에서 묵을지 배정을 받는다. 보통 기본은 일주일이겠다. 일주일이라면 수련 활동 비슷한 것으로 청학동 체험이 목적인 정도. 그러다가 일주일에서 각자 사정에 따라 2주일, 3주일로 늘어나는데, 어느 아이가 청학동에 더 머물고 싶어 할까? 그럴 때는 부모와 아이 간의 사전 협의가 있어야만 가능했다. 이런 식으로 아이들이 머무는 기간이 정해진다.      


사 서당의 아이들은 여기에 온 지 한 달 정도인 아이들이다. 한 달째이거나 한 달이 넘어갔거나. 청학동에는 각기 각색 아이들이 모여든다. 모여드는데, 대부분이야 못된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 심신을 단련하기 위해서, 예의범절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 등등 우리가 짐작할 만한 이유로 오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나름의 가정사가 있는 얘들도 있단 말이다. 그것이 바로 사 서당의 아이들이다.       

나는 ‘사 서당’에는 가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사 서당의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처럼 체험 활동을 하지 않을뿐더러 그리고... 그리고 그곳의 아이들은 사진을 찍어서 게시판에 올릴 필요가 없는 까닭이다.      


게시판이란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님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사진을 찍지 않는다는 것은 사 서당의 아이들에게는 게시판이 필요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흠. 위에서는 그런 식으로 대충 지시가 내려왔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갈라놓는 거 아닌가? 어쩐지 성의 없고 부당한 처사 같아서 나는 간혹 사 서당에 갔다.      


일 서당 뒤편으로 외따로 떨어진 그곳에 가면, 담당 예사도 굉장히 무서운 분이시라 내 할 일을 하는 것인데도 이상하게 눈치를 살피게 된다. 내가 가면, 아이들의 시선이 죄다 나를 졸졸 따라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있는 것을 담당 예사가 꺼리는 눈치여서 찰칵찰칵 몇 번 하고 얼른 나와야 했다. 얘들은 평소 뭐 하고 놀려나? 되게 집에 가고 싶겠네. 찍은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나는 기분이 착 가라앉고 만다.      


  “또 시작이네.”     


밥상을 앞에 두고 꼬마가 하나 잉잉 우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듣고 나는 이젠 그러려니 했다. 이렇게 식사 시간이면 늘 있는 일이다. 얘들 입맛이 다 그렇지. 여기 청학동 음식이 자기 입맛에 딱이라는 아이는 단 한 번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나마 참고 식판을 삭삭 비워주면 다행인데 저렇게 먹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다가 안 훈도님한테 꼭 혼나는 얘들이 하나둘씩 있다.      


나는 쥐고 있던 고무신을 툭 내던지고 툇마루에 털썩 주저앉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전혀 그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사실 나는 빗소리를 매우 좋아한다. 특히 창문틀에 통통 튕기는 빗방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그런데 그런 낭만을 즐기기는커녕 징징대는 소리나 듣고 있자니 골이 다 지끈거렸다. 하긴, 나도 저만했을 때 콩밥 되게 싫어했는데. 나는 잉잉 우는 아이를 힐끔 쳐다보았다. 저거, 사진 찍어서 게시판에 확 올려 버려?    

    

그나저나 얘는 어디 간 거야? 두리번두리번 멍멍이의 행방을 살피는데, 예사님 밥 안 먹어요? 남자아이 하나가 오고, 남자아이가 내게 다가오자 주변에 있던 다른 몇몇 얘들도 우르르 몰려들었다. 이런, 성가시게 됐다. 아이들은 참 궁금한 것도 많다. 그렇게 나를 둘러싸더니 너도나도 내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거짓말을 해대기 시작했다.      


  “예사님 뭐 해요?”     


  “바빠. 일하는 중이야.”     


  “예사님 여기서 살아요?”     


  “응. 우리 집이지.”     


  “예사님은 몇 살이에요?”     


  “40살.”     


  “우와. 그렇게 안 보이는데. 예사님도 사자소학 다 알아요? 우리 반 내일 시험 봐요.”     


  “당연히 다 알지.”     


역시 피노키오의 기분이다. 갈 데가 없는 나는 아이들한테 포위되어 도무지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사실은 여기서 기다렸다가 얘들이 다 빠져나가고 나면 점심밥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하늘은 얼룩덜룩하고 회색이고 마당에는 고인 물이 여기저기 있었다. 빗방울, 물웅덩이, 얇은 수면에 동그라미 모양으로 물결이 인다.      


  “나는요 강감찬의 후예에요.”     


처음 나한테 다가왔던 남자아이가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삐쭉삐쭉 짧게 깎은 머리, 나는 밤톨을 떠올렸다. 밤톨이는 자기는 강 씨이니 조상은 강감찬이고 그러니까 자기는 강감찬의 피를 이어받아 싸움을 잘한다고 하더니, 무슨 맥락에서인지 자기는 학교에서 공부 1등에다가 영어를 매우 잘한다며 느닷없이 자기 자랑을 했다. 분위기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영어라니 좋겠다, 물웅덩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나는 말했다. 아이들이란 원래가 피노키오인 것이다.     


  “얘! 이리 와봐.”     


내가 부르자 나의 부름을 받고 남자애 하나가 다가왔다. 그 남자애는 한국인이지만 미국에서 살다 온 아이였다. 아주 어렸을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성격이 말이 없는 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아이가 한국말로 떠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 미국 아이는 정말이지 덩치가 크고 둥글둥글하니 햄버거를 아주 많이 먹을 것처럼 생긴 아이였다.      


  “너 영어 잘 하면, 얘랑 얘기해봐. 얘 미국에서 왔데.”     


이렇게 말했더니 밤톨이는 전혀 주눅 드는 기색도 없이 쏼라쏼라 입방정을 떨어대기 시작했다. 아는 영어란 영어는 죄다 끌어모아 까불어대는 것이었다. 하이? 하와유? 아이 엠 코리안. 와츄어 네임? 웨얼 아유 프롬? 그렇게 까불대는 밤톨이를 햄버거는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뚱한 얼굴로 쳐다보기만 했다. 그 꼴이 마치 내 눈에는 치와와가 불독 앞에서 덩치 자랑한답시고 왈왈 짖어대는 것처럼 보였다. 그 꼴을 뚱하니 보고 있던 햄버거가 퉁명스럽게 한마디 툭 내뱉었다.   

  

  “뭐어.”     


나는 옆으로 쓰러져 깔깔깔 웃었다. 뭐? 도 아니고, 뭐라고? 도 아니고, 뭐어, 라니. 그것도 상당히 귀찮아하는 얼굴로 말이다. 저것은 엄마가 나한테 잔소리를 하면 잔뜩 짜증이 난 내가 하는 소리와 비슷한 느낌이었달까. 거기서 웃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게 너무너무 웃겼다. 


  “너 공부랑 영어, 다 거짓말이지?”      


  “아니에요!”      


  “에이, 아니에요가 아닌데?”      


그렇게 나는 내가 마흔 살 어른이라는 신분을 잊고 밤톨이하고 티격태격했다. 티격태격하는데 밤톨이 시선이, 어? 누군가를 보고 나한테서 떨어졌다. 나도 밤톨이를 따라 그곳을 쳐다보니 거기에는 사 서당의 아이가 하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인 듯했다. 여자아이는 대략 13살 아니면 14살 정도에 긴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높이 묶었는데 반바지 아래로 막대기 같은 긴 다리가 쭉 뻗어 있었다. 다리 참 기네. 얼굴도 예쁘장하니. 나는 밤톨이가 저 애한테 관심이 있어서 그러나 싶었다. 왜 그러는데? 남녀가 유별한 청학동에서 정분이 나려나, 나는 밤톨이를 흘겨보며 아는 애냐고 물었다.      


  “예사님 저 누나요. 엄마아빠 없데요. 그래서 여기서 아주 사는 거라던데 정말이에요?”     


응? 순간 말문이 막혀서 나는 눈만 끔뻑끔뻑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 아이, 아까부터 입방정을 떨더니 저러다 언젠가 그놈의 입 때문에 된통 당하겠네. 나는 아이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이가 악의 없이 한 말이니 뭐라고 하기도 그래서 일단 생각나는 대로 말을 이어나갔다.   

   

  “여기서 어떻게 아주 사니? 아니야 그런 거. 그리고 그걸 너가 어떻게 알아?”     


  “진짠데? 송희라고, 걔가 말해 줬는데 지금은 집에 가고 없어요.”     


  “송희 걔가 너한테 거짓말 한 거야. 뻥이야.”     


아이들끼리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작은 공동체에서도 별 희한한 구설수가 많고 많은 모양이었다. 거짓말이라는 내 말에 밤톨이는 고개를 갸웃했고, 옆에 있는 여자애가 내게 바짝 다가와 붙더니 또 이런 말을 했다.      


  “송희 언니가 그랬는데요. 사 서당에 어떤 오빠는요. 여기 있을 때는 되게 착했는데 집에 갈 때는 얘들 돈 다 뺏어갔데요.”     


  “얘들이 무슨 돈이 있어. 예사님들이 다 압수하는데. 그것도 거짓말.”      


여기까지 듣고 나니, 나는 지금은 가고 없다는 송희라는 얘가 궁금했다. 피노키오가 하나 왔다가 갔나 보네. 라고 생각했으나 솔직히 소문이 진짜인지 거짓말인지는 나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좍좍 내리는 비의 냄새, 나는 이만 자리를 떨치고 일어날 셈으로 아이들더러 다들 방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했는데, 밤톨이가 가지 않고 이상한 고집을 부렸다.      


  “거짓말하는 거 아니에요. 진짜 저 누나 엄마아빠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맨날 옷도 똑같은 옷만 입는다고.......”     


밤톨이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 여자애가 달려들었다. 엄마아빠가 없다는 자기 얘기를 다 들은 모양이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여자애가 밤톨이를 와락 밀쳐내자 밤톨이도 이에 질세라 덤벼들었다. 발로 차고 주먹을 휘두르고, 나는 얼른 둘의 사이를 떼어놓았다. 여자애가 악다구니를 썼다.      


  “내가 왜 엄마아빠가 없어! 있어! 있다고!”     


삐쩍 마른 애가 파르르 떠는 모습에 내가 다 놀라고 말았다. 나는 두 아이 사이에 서서 여자애를 와락 품에 안았다. 고개 돌려 뒤를 보니 밤톨이는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식식대고 있었는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나 원 참.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두 아이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때마침 사 서당 담당 예사가 등장했다.      


  “너희들 싸우냐!”     


어쩐지 나도 혼나는 기분이었다. 곁에 있던 아이들이 후다닥 자리를 피했다. 밤톨이, 나, 사 서당의 여자애, 우리는 나란히 서서 고개를 떨구었다. 예사님 무슨 일이예요? 사 서당 예사님이 내게 이렇게 물었고, 아, 맞다 나도 예사지, 나는 여기서 열외라는 것을 깨달았다.      


  “얘들이 같이 놀다가 좀 다퉜어요.”     


자, 밥 먹자 밥. 여자애는 담당 예사가 데려갈 테니 나는 밤톨이 어깨를 끌어당겼다. 물론 밤톨이는 밥을 먹었겠지만, 밤톨이 손을 잡고 식당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여기 더 있다가는 사 서당 예사님이 밤톨이에게도 어떤 벌을 내리실지 몰랐다. 당연히 잘못했으면 혼나야 한다. 하지만, 사 서당 예사님은 너무너무 무섭다. 나는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사 서당 예사님의 따가운 시선을 등으로 느끼면서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힐끔 보니, 내 손에 끌려가는 밤톨이는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거짓말 아닌데... 진짠데.......”     


  “정말 진짜야?”     


  “네, 진짜란 말이에요.”     


  “진짜라도 그런 말 하면 안 돼.”     


  “왜요?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엄마아빠는 소중하지? 그치?”     


  “네.”     


  “그럴 땐 그냥 거짓말 해. 소중하니까 있다고 거짓말 해도 돼.”    

  

거짓말.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거짓말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꼭 나쁘지만은 않다고 말이다. 내 말을 이해했는지 못했는지 밤톨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조금 있다가, 그럼 거짓말해도 돼요? 라고 묻기에, 아니 안 돼. 엄마아빠만 돼. 라고 말하고는 속으로만 히히 웃었다.      


  “그런데 너, 파트라슈 못 봤니?”       


파트라슈는 멍멍이의 진짜 이름이다. 서당 개 주제에 파트라슈라니 참 웃기는 짬뽕이다.      


저녁 바람이 불었다. 비는 어느새 그쳤고, 나는 아까 그 툇마루 자리에 앉아 디지털카메라에 집중했다. 오늘 내내 찍은 사진들을 검토하는 건데, 게시판에 올릴 사진은 남기고 버릴 사진은 바로바로 삭제했다. 석양, 붉은 기가 도는 구름 뒤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예사님.”     


아까 그 사 서당의 여자아이였다. 뒷짐을 지고 선 자세, 뾰족한 턱, 저녁 햇빛이 아이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사진 보는데 왜? 말하고는 아이의 다음 말을 기다렸는데 아이는 말은 않고 쭈뼛쭈뼛 대기만 했다. 나는 오전에 악다구니를 쓰던 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도저히 같은 아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너도 볼래? 물으니까 아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게 할 말이 있는 표정이었다. 나는 씩 일부러 웃어 보였다.      


  “저도 사진 찍어주세요.”     


이거, 사진 찍으면 게시판에 올리는 거 맞죠? 아이의 느닷없는 요청에 처음에는 못 알아듣고 잠깐 멍하니 있다가, 응 그렇지, 그제야 의도를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나는 흔쾌히 찍어주겠다고 했다. 찍어서 게시판에 올려주겠노라고. 그렇게 말하니까 아이가 기뻐했고 카메라를 들고 일어서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아무렇게나 묶은 포니테일이 거슬렸다.     

 

너 여기 앉아봐. 아이를 앞에 앉혀놓고 머리를 다시 묶어주기로 했다. 똑같이 포니테일로 하려고 했는데, 아이가, 예사님 처럼 해 주세요, 자기도 나처럼 머리를 땋아 달라고 했다. 나는 아이의 머리를 땋고 내가 하던 댕기까지 풀어서 아이에게 해줬다.      


  “예사님. 이거 찍어서 게시판에 올리면 부모님이 다 보지요?”     


사진을 다 찍고 아이는 내게 재차 확인을 했다. 그럼 다 보지, 오늘 너 꺼도 올릴 거야. 나는 제일 예쁜 사진으로 올리겠다고 아이와 약속을 했다.      


  “댕기는 너 가져.”     


  “그래도 돼요? 예사님은요?”      


  “그래도 돼. 난 이제 필요 없거든.”     


  “진짜요? 괜찮아요?”     


  “응.”     


아이는 내가 준 댕기가 꽤 마음에 든 눈치였다. 빨갛고 매끈한 천 조각이 왜 좋은지 모르겠지만 청학동 기념품이라 생각하고 하나 가져가라지, 생각하며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는 고맙다고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질퍽질퍽한 마당을 가로질러 뛰어갔다. 자그마한 등, 자그마한 어깨, 땋은 머리끝에 달린 댕기가 통통 튀었다.      


  “이제 일하러 가 볼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 나는 뒤로 벌렁 누웠다. 아- 좋다. 등하고 손바닥에 닿는, 나무의 기운은 써늘해서 기분이 좋아진다. 물 냄새, 풀 냄새, 흙냄새, 바람이 온갖 소리를 데리고 귓가를 스쳤다. 풀벌레 우는 소리, 파트라슈가 짖는 소리,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고 나뭇잎은 따뜻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청학동에 가을이 오고 있었다. 푸근한 가을이. 그리고 나는 내일이면 이곳을 떠난다. 안녕, 청학동아. 참 좋은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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