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학동 이야기, 다섯.
늘 빈둥빈둥 놀아 보여도, 내가 이래 봬도 할 일이 꽤 많은 예사란 말이올시다. 다른 예사들은 각자 맡은 아이들이 있으니까,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부터 밤에 아이들이 잠들기까지 하루 전체를 아이들 곁에 붙어 있어야 한다. 그러니 다들 바쁘고 또 바쁘시겠다. 하지만 나야 그렇지 않으니 하루가 그리 팍팍하지 않을 뿐이지 나름 여기저기 이것도 해야 하지, 저것도 해야 하지, 사부작사부작한단 말이다. 암. 그렇고말고.
오전. 느지막이 일어나면 몸단장을 끝내고 슬금슬금 기어 나온다. 툇마루에 앉아 텅 빈 마당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멍멍이가 또 나를 보고 짖어대고 나는 그런 멍멍이를 못 본 체한다. 오늘따라 매미가 자지러지게 운다. 누구네 반 아이들이 사자소학을 외는 소리, 흰 구름 낀 하늘을 보니 오늘도 맑음이겠다. 후후.
후후 웃고 있는데, 왜 맨날 이러고 있어요? 도령 머리를 한 꼬마 하나가 옆에서 참견을 했다. 서당 아들이었다. 여기 서당 전체를 관리하는 사무장 아들인지, 부사무장 아들인지,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나는 그 아이를 그냥 그렇게 불렀다. 이름을 분명 말해줬는데 까먹었고, 나이가 열두 살? 열세 살? 하여간 그랬다. 멍멍이가 내 치마를 물고, 고 자그마한 머리통을 마구 흔들고 있기에, 어쭈? 안아서 무릎에 앉히고는 치마를 억지로 잡아 뺐다. 침이 묻은 그 부분만 치마 색깔이 동그랗게 짙었다.
“예사님은 왜 맨날 혼자 이러고 있어요?”
“아닌데? 이따가 할 일 많은데?”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늘 내 할 일들을 일일이 보고했다. 이따가 저쪽 반에서는 화채 만들기가 있고, 요쪽에서는 서예 수업이 있고, 오후에는 이 서당, 삼 서당에 있는 얘들한테도 가볼 예정이라고. 침을 튀겨가며 열심히 얘기하는데, 그래요? 도령 머리 서당 아들은 별로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내게서 등을 돌렸다. 치. 나는 꼬마 등에 대고 소리쳤다.
“너는 어디 가는데?”
“물가요. 물놀이 갈 건데, 갈래요?”
“내가 얘니? 나 바빠.”
“알았어요.”
늘 그렇다. 늘 저 꼬맹이는 딱 한 번만 권한다. 사실 나는 여기 있는 내내 다른 예사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그랬기에 어쩌다 보니 서당 아들이랑 노는 일이 잦았는데, 놀면서도 나는 다 큰 어른이 어린이랑 놀다니 이것은 수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래서 체면상 이렇게 튕기면 꼭 저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홱 등을 돌린다. 흥! 무릎에 있던 멍멍이가 냅다 뛰어내려 꼬맹이를 쫓아갔다. 햇볕이 쫙 깔린 마당, 댕기를 한 서당 아들의 뒤통수를 나는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얘! 같이 가!”
이렇게 난 또 꼬맹이 뒤를 쪼르르 따라가는 신세가 되고 만다. 물놀이를 재미있게 하고, 밥을 맛있게 먹고, 아이들 사진을 열심히 찍고, 또 규정에 어긋나는 양말을 신었다고 안 훈도님한테 잔소리를 듣고, 귀찮게 따라오는 아이들을 피해 피신을 하고, 훈장님은 뭐하나 좀 들여다보기도 하고, 햇볕을 쬐다 말고 멍멍이 하는 짓에 참견도 좀 했다가, 사고를 치고 담당 예사한테 혼나는 얘들 구경도 한다. 날은 덥지만 시원한 청학동의 산바람, 회색 기와지붕, 지붕 위로 흘러가는 구름은 언제봐도 실실 웃음이 나오게 한다.
나는 주로 일 서당에 있다가 이 서당이나 삼 서당으로 이동을 했다. 이 서당은 걸어서 갈만했지만, 삼 서당은 꽤 거리가 먼 탓에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이 훈도님을 기다렸다. 기다렸다가 이 훈도님이 차를 끌고 오시면 반갑게 뛰어가 냉큼 차에 올라타고 본다. 훈도님 나 좀 데려다줘요. 말하고는 절대 내리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긴 눈을 하고 쳐다보면, 훈도님은 어쩔 때는 살짝 곤란한 얼굴을 하기도 했지만 단 한 번도 안 데려다주신 적은 없었다.
대부분 이런 식으로 저녁나절까지 보내고 나면, 다음은 본격적으로 업무에 집중을 해야 하는 시간이 어김없이 돌아온다. 즉, 사무실에 틀어박혀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마는데 나는 이 시간을 가장 싫어했다. 사진을 찍었으니 찍은 사진을 게시판에 올리고, 글을 작성하고, 이것저것 등등을 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하다 보면 새벽에야 끝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다음 날 느지막이 일어났던 까닭이었다.
“아이, 씨! 진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나는 지금 무척 화가 나 있다. 왜 화가 났냐 하면, 바로 나와 같이 작업을 하기로 했던 언니 때문이었다. 나처럼 담당하는 아이들이 없고, 사진을 찍고, 나처럼 이 시간이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그 언니 말이다. 대체 어디 간 거야? 할 일이 많아 오늘도 새벽이나 돼야 자게 될 판인데 아까부터 언니가 보이지 않았다. 참다 참다 도무지 오지를 않으니 어디에서 무엇을 하나 찾았더니, 글쎄, 강당에 아이들을 죄다 모아놓고 군기를 잡고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아이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라도, 그런 일은 훈도님이 있고 담당 예사들이 있는데 그걸 왜 자기가 하고 있는지, 나 원 참. 하려면 자기 할 일이나 제대로 하고 할 일이지 저게 뭐 하는 짓인지 싶었다. 조용한 강당, 회초리를 쥔 손을 뒷짐 지고 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언니,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저 언니가 권위에 환장을 했나.
나도 참 나지. 그날 나는 결국 언니한테 듣기 싫은 소릴 하고 말았다. 싸움을 걸 생각은 없었는데 한마디 한다는 것이 기분이 좋지 않았으니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당연히 언니도 기분이 상했을 테고 내게 똑같이 따다다 쏴대었다. 하아- 그만 다투고 말았다. 어쩌고저쩌고 언니한테 대들다가 중간에 울컥해서는 눈물이 차올랐다. 우는 꼴은 보이기 싫어서 팩 돌아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시비는 내가 먼저 걸은 주제에 이게 무슨 꼴이람. 찔끔 나온 눈물을 팔뚝으로 슥 문질러 닦아냈다.
나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물을 마시려고 부엌으로 갔다. 갔더니 거기에는 여자 예사 둘이서 늦은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하나는 쌍둥이 예사의 언니 쪽이었고, 또 하나는 말 몇 마디 나눠본 적 있는 예사였는데, 그 예사는 목소리가 우렁차고 성격이 괄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아이들을 다 재우고, 미처 먹지 못한 저녁인지 아니면 허기져서 먹는 야식인지 모르겠지만 둘이 그러고 있기에 눈인사를 했다. 아는 체를 하면서, 이제 식사하세요? 그렇게 물었다. 물었는데, 어째 대답은 안 해주고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슥 그냥 고개를 돌려버렸다. 사람 참 머쓱하게. 하던 식사나 계속하라 하고 나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꿀꺽꿀꺽 마셨다.
“별, 별, 별, 우와 되게 많다.”
서당에서 빠져나와 그길로 그냥 쭉 걸었다. 찻길을 따라 쭉 걷다가, 가로등 하나 없이 달빛별빛만이 다인, 으스스한 길 저편을 보자니 계속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판판하고 큰 돌을 골라 거기에 털썩 주저앉았다. 서늘한 돌의 기운, 기다란 풀이 길을 따라 쭉 이어져 있고, 찌르르 찌르르 여름벌레 소리는 듣기 참 맑고 고왔다. 나는 무릎을 모아 그 위에 턱을 괴었다. 까만 하늘에 별이 총총했다. 청학동 하늘에 뜬 별은 굉장했다. 나는 눈을 떼지 못했고, 아까 있었던 일 때문에 기분이 착 가라앉았던지라 더욱더 별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있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나오려는 것은 왜일까?
다울이는 잘 있으려나? 나는 진작에 청학동을 떠난 다울 예사를 생각했다. 남자친구가 올 거라던 다울 예사는 갑자기 일이 생겼다며 예사들 가운데 제일 먼저 하산을 했다. 청학동에 있으면서, 저도 혼자 왔고 나도 혼자 왔고 해서 같이 어울렸었는데 그렇게 떠나보내고 나니 여기서 난 정말 외톨이가 돼버린 기분이었다. 아~ 서럽다, 서러워. 무지무지 서럽다.
“거기서 뭐 해요? 그러다 뱀 나와요.”
불쑥 사람 목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랐다. 돌아보니 낯익은 차가 있었고 운전석에는 이 훈도님이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달빛, 이 훈도님의 부드러운 얼굴색,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공수를 하고 안녕하세요? 인사를 드렸다. 늘 쓰고 있는 두건 같은 모자, 그 밑으로 보이는 이 훈도님의 이마는 반듯하고 속눈썹은 가지런했다.
“왜 여기에 있어요?”
“그냥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고 이 훈도님이 그런 나를 또 빤히 보았다. 빤히 보더니, 타세요, 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별구경을 좀 더 하고 싶었다.
“그냥 여기 있을래요.”
“위험해요.”
“잠이 안 와요. 그리고.”
그리고. 말하면서 나는 검지로 하늘 쪽을 콕콕 찌르는 시늉을 했다. 위를 보는 내 시선을 따라 이 훈도님 시선도 따라 올라갔다. 씩 하고 이 훈도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냥 넘어가 주려나 보다 하고 마음을 푹 놓으려는데, 그래도 타요, 여기는 안 돼요, 이 훈도님은 바로 웃음기를 삭 거두셨다. 그런 이 훈도님의 고집스러운 표정을 보고 나는 아랫입술을 삐죽였다. 어쩔 수 없이 차에 올라탔다. 에효- 정말 가기 싫은데.
“이게 진짜 다 별이라는 것이구나.”
이 훈도님은 나를 일 서당이 아니라 이 서당으로 데려갔다. 이 서당은 이 훈도님의 거처가 되는 장소였다. 이 서당의 위치는 동산이 있는 높은 지대였는데, 서당 마당에는 정자가 하나 있었다. 나와 이 훈도님은 정자 끄트머리에 앉아 함께 별을 바라보았다. 신기했다. 똑같은 하늘인데 찻길에서 봤던 별이랑 왠지 달라 보여도 너무 달라 보였다. 거기서 봤던 별도 굉장했지만, 여기에서 보는 별은 더 굉장했다.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질 것만 같은 무수한 별들이, 의외로 하늘에 딱 달라붙어서는 야무지게 빛을 뿜고 있었다. 정말이지 이루말 할 수 없이 너무너무 사랑스러웠다.
“예쁘죠?”
“네, 예뻐요.”
“그럼 여기 계속 있어요.”
“싫어요.”
“왜요?”
“난 빨리 하산하고 싶어요. 여긴 너무 답답해요.”
그리고 쓸쓸해요. 라고 덧붙여 말하고 싶은 걸 나는 도로 꿀꺽 삼켰다. 그리고 헤 벌어진 입을 하고는 하늘에 흠뻑 빠져 헤어나올 줄을 몰랐다. 밤, 별, 달, 구름, 하늘은 정말 온갖 것을 품고 있었다. 이거 말고도 또 무엇을 품고 있을까, 나는 왠지 하늘은 이거 말고도 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을 것만 같았다. 다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을 뿐. 예를 들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 훈도님이 또 불쑥 말했다.
“풍종호요, 운종룡이라.”
무슨 뜻인지 알아요? 나는 생각하다 말고, 네? 퍼뜩 현실로 돌아왔다. 풍종호운종룡? 내가 알 턱이 있을 리가 없었다. 모르겠는데요.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설명을 기다렸다.
“바람은 호랑이를 따라 불고, 구름은 용을 인다.”
그런 뜻이에요. 라고 말하는 이 훈도님은 조금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의 청학동 생활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그것은 곧 나의 하산이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했다. 이 훈도님이 또 내게 말했다. 그렇게 빨리 가지 말라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나는 입을 꾹 다물고는 눈만 끔뻑끔뻑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분명 얼굴이 빨개졌을 거라 여겨, 팩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러고는 하늘만 빤히 바라보았다. 심장이 쿵쾅쿵쾅했지만, 티 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얼굴에서 표정을 삭 지웠다. 내가 대답을 안 하고 있으니까, 마지못해 고개를 돌리고 하늘을 쳐다보는 이 훈도님의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어쩐지 지금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천천히 입을 떼었다. 여전히 시선은 하늘에 둔 채로 말이다.
“훈도님. 있잖아요. 그거 아세요?”
“몰라요.”
“훈도님 어제 없어졌다는 그거요. 퉁소인지 단소인지 그 피리요. 그거 내가 잊어버렸어요. 어제 서당 아들이랑 가지고 놀다가 살구 따러 가자기에 산에 들고 갔는데 어디 뒀는지 모르겠어요.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
나는 속으로 씩 웃었다. 조용한 밤, 달은 하얬고, 길고 불투명한 구름이 달을 가로질러 갔다. 한여름의, 청량하고 순진한 바람에서 풀냄새가 났다. 찌르르 찌르르 여름벌레가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