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 봄날 맛볼 수 있는 쫄깃한 제주의 맛
고사리 장마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요즘의 계절, 밤새 비가 내린 뒤 축축한 뒷산을 거닐다 보면 꼬불꼬불 올라오는 고사리를 만나볼 수 있다. 육개장 속에 들어있거나, 명절 때 제사상이나 차례상 위에 올라가는 고사리나물을 생각하면 바짝 말린 후에 불린 건고사리를 가장 먼저 떠올리겠지만, 지금의 계절에는 건조하지 않은 야들야들한 생고사리를 만나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품질 좋은 고사리가 많이 자란다고 알려져 있는 제주에는 3월 말부터 5월까지 길가에 차를 대고 쭈그려 앉아있는 사람들은 보면 열에 아홉은 고사리를 채취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고사리 밭은 며느리한테도 안 가르쳐 준다는 말이 있을 만큼 제주도에서는 고사리가 그만큼 귀한 작물이다. 마켓컬리나 네이버에서 산지 직송 구매를 할 수 있는 사이트들을 방문하면 싱싱한 생고사리를 구입할 수 있다. 구입은 쉽지만, 이 생고사리는 꽤 까다로운 전처리 과정을 거쳐야 맛있는 맛을 즐길 수 있다.
꼬불꼬불 말려있는 끝부분이 매력적인 생고사리에는 솜털이 있는데, 산에서 채취한 고사리의 솜털에는 먼지나 불순물이 묻어있을 수 있기 때문에 흐르는 물에 충분히 세척해주는 것이 좋다. 건고사리의 경우에도 불린 후에 삶고, 물에 담가놓는 작업을 해야 하지만 생고사리도 그 맛을 즐기기 위해서는 또 여러 전처리 과정을 거쳐야 한다.
흐르는 물에 씻은 고사리는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10분 정도 삶는다. 사실 나물을 조리할 때는 삶는다는 표현보다 데친다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데, 고사리의 경우에는 10분 정도 삶아서 조직을 부드럽게 만들어 줘야 한다.(보통 끓는 물에서 5분 이상 조리하면 데친다는 단어 대신 삶는다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렇게 삶아 낸 생고사리는 물에 담가서 12시간 이상 물에 담가 쓴맛을 빼줘야 한다. 4시간 정도 간격으로 물을 갈아주면 더 좋다.
| 쫄깃한 고사리로 즐기는 든든한 핫 그릇 삼겹살고사리솥밥
제주 여행을 할 때 항상 즐기는 맛집들이 몇 군데 있는데, 그 중 한 군데가 바로 성읍에 위치한 칠십리식당이다. 돌판에 두툼한 삼겹살과 함께 고사리를 구워 먹는 것이 특징인 곳인데 여기서 한 번 먹어보고 나서 삼겹살 기름에 구워낸 고사리의 맛이 얼마나 기가 막힌지, 두 재료의 궁합이 얼마나 좋은지를 알 수 있었다.
쌀은 30분 이상 충분히 불린 후에 체에 밭쳐 물기를 제거했다. 전 처리한 생고사리는 4cm 정도 길이로 먹기 좋게 자르고, 삼겹살은 한 입 크기로 작게 썰어 준비했다. 솥밥용 냄비에 삼겹살을 먼저 넣고 노릇노릇하게 구워낸 후 살짝 옆으로 빼두었다. 삼겹살 기름에 불려둔 쌀과 다진 양파를 넣고 볶다가 소금이나 연두를 살짝 넣어 밑간을 했다. 자작하게 물을 붓고 삼겹살을 넣어 한 소끔 끓으면 뚜껑을 덮고 약한 불로 줄여 30분간 조리했다. 불을 끄고 손질해 둔 생고사리를 넣어 뚜껑을 덮고 10분 정도 뜸을 들이면 생고사리가 부드러운듯 쫄깃하게 씹히면서 쫄깃한 삼겹살과의 식감이 너무 잘 어울리는 솥밥이 완성된다.
고슬고슬한 밥에 삼겹살의 기름진 풍미, 그리고 양파의 은은한 단맛과 생고사리의 쫄깃한 식감이 정말 잘 어우러진다. 뜸까지 충분하게 들인 고사리솥밥은 그냥 밥만 먹어도 그저 맛있지만 양념간장을 만들어서 슥슥 비벼먹어도 맛있고, 잘 익은 김치와 함께 먹어도 맛있다. 시원한 맛의 갓김치를 한 젓가락 얹어서 숟가락 가득 입 안에 넣으면 쫄깃한 제주의 맛이 한 입 가득 채워진다.
| 찰떡궁합의 식재료들이 만들어 내는 봄날의 밥도둑 고사리조기조림
고사리를 요리할 때 육개장을 끓이거나 조기와 함께 조리하는 경우가 많다. 따뜻한 성질의 조기와 차가운 성질의 고사리가 만났을 때 음양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고, 조기에 부족한 비타민 C와 섬유질을 고사리가 보충해주기 때문에 맛도 영양도 업그레이드 한 찰떡궁합의 요리를 만들 수 있다.
전 처리한 고사리에 된장과 고춧가루, 간장을 넣어 조물조물 무쳐두었다. 이렇게 밑간을 해놓으면 고사리의 섬유질 사이사이에 양념이 배면서 더욱 맛있어진다. 이렇게 양념한 고사리를 냄비에 깔고 두껍게 자른 양파를 넣고 조기를 얹어서 물을 자작하게 부어 조려내면 완성된다. 조기는 담백하면서도 끓으면서 뼈에서 깊은 맛이 우러나오기 때문에 약한 불에서 뭉근히 끓이면서 조기의 맛있는 맛이 고사리에 밸 수 있게 조리해준다.
사실 조기는 생선 중에서도 비린내가 적은 어종이라 자취를 하면서도 비교적 자주 접하게 되는데, 여기에 고기처럼 씹는 맛이 좋은 고사리를 함께 조리니 이만한 밥도둑이 없다. 사람들 사이에도 궁합이 있듯이 식재료 사이에도 궁합이 있다. 식재료의 음양을 맞추어서 조리하면 건강에는 두 배로 좋아지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비 온 다음날의 촉촉한 제주의 냄새가 그리워지는 어느 날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