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끈한 국물에 맛있는 건 다 들어가 있는 제대로 된 퓨전의 맛
"퓨전"이라는 단어는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일상에 아무렇지 않게 들어와서 순우리말처럼 쉽게 사용되고 있는 중이다. 이질적인 것들의 뒤섞임, 조합, 조화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퓨전은 특히 식생활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쉽게 생각해서 다른 두 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음식들이 하나의 음식을 재탄생하는 것을 퓨전음식이라고 칭하곤 한다. 그리고 우리 주변의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익숙한 듯 새로운 음식, 부대찌개가 있다.
사실 부대찌개는 우리나라의 역사 속 아픔을 스토리로 가지고 있는 메뉴이기도 하다. 이제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가슴 아픈 이야기의 시작이 된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우리나라에 원조의 손길을 보내 준 미군부대 근처에는 소시지와 햄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여기에 김치를 넣고 고추장을 풀어서 끓이면 느끼한 맛이 사라져 제법 먹을만한 찌개로 재탄생을 했다는 것이 부대찌개의 시작이다. 부대찌개는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대통령인 린든 B. 존슨의 성을 따서 존슨탕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고기로 만들었지만, 고기가 아닌 일명 '부대고기'는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에 햄과 소시지는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고, 반찬으로 먹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국물요리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생활 특성에 맞추어서 김치찌개에 추가를 하게 되는 형태로 조리되고 있다. 원래는 전골판에 버터와 소시지, 햄, 양배추, 양파 등을 넣고 볶아 낸 안주였는데 여기에 김치와 고추장, 육수를 부어 끓여 내면서 한국인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맛을 만들어 내면서 지금은 직장인들의 대표적인 점심식사 메뉴로 자리잡기도 했다.
원조 부대찌개의 발상지는 미군부대로 상징되는 의정부라고 할 수 있다. 부대찌개 집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지금의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가 만들어졌고, 1998년 '의정부 명물찌개 거리'라는 정식 명칭을 얻게 되었다. 현재는 외국에까지 알려져 외국인들의 의정부 관광 코스가 되기도 했고, 허영만이 맛을 그린 만화 식객에도 등장하면서 외국에서 들어온 식재료가 한국의 명물로 자리 잡는 신기한 현상을 만들어 냈다. 나도 맛집으로 이름 난 오뎅식당에 방문해 본 적이 있었다. 엄청나게 미치도록 맛있는 맛은 아니었지만, 부대찌개 거리만의 분위기와 사골 베이스의 깊은 국물 맛이 전달하는 감동은 금방 냄비를 비워내게 만들었다.
| 취향에 따라, 김치의 맛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는 매력의 맛 부대찌개
사실 집에서 식사를 만들어서 먹는 사람들에게 부대찌개는 만들기가 어려운 메뉴는 아니다. 하지만 맛을 내다보면 맛있는 부대찌개를 완성하기에는 까다로운 부분이 있다. 부대찌개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육수와 김치, 그리고 다양하게 추가되는 재료들까지 3가지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맛있게 끓인 김치찌개에 햄과 소시지를 듬뿍 넣어서 맛이 우러나오게 끓인 찌개라고 생각하면 부대찌개를 끓이는 것이 꽤 쉬워지는데,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이려면 김치가 아주 중요하다. 평소 묵은지라고 부르는 아주 잘 익어서 약간의 탄산감과 산미를 가지고 있는 김치면 좋고, 양념이 적게 묻어 있을수록 더 깔끔하고 시원한 맛의 국물을 즐길 수 있다. 만약 전라도 식으로 양념이 넉넉한 김치를 사용한다면 오히려 한 번 씻어 낸 후에 양념장에 조금 더 심혈을 기울이는 것을 추천해본다.
그다음은 육수다. 부대찌개의 육수는 크게 두 가지로 활용할 수 있는데 무와 멸치를 넣어서 진하게 우려낸 멸치육수와 사골을 베이스로 한 육수 두 가지 중에서 선택하면 된다. 멸치육수를 사용한다면 부재료로 어묵을 함께 넣어 보길 추천한다. 어묵을 가공하면서 우러나오는 맛이 조미료를 따로 넣지 않아도 맛있는 국물 맛을 만들어 낸다. 사골을 베이스로 한 육수를 사용한다면 요즘 시중에 사골 베이스의 육수들이 너무 잘 판매되고 있어서 부대고기(햄, 소시지)의 맛과 더욱 잘 어우러지는 깊고 녹진한 맛의 국물 맛을 만들어 낸다.
앞서 말한 것처럼 좋아하는 햄이나 소시지가 있다면 넣어주면 되는데 개인적으로 3가지 이상의 다른 브랜드 제품을 섞어서 끓이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게 하면 더욱 맛있는 맛이 우러나온다. 여기에 떡, 라면, 분모자 등 원하는 재료들이 있다면 그리고 함께 먹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재료들이 있다면 다 넣어줘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맛내기 어려워보이지만, 사실 아무 재료나 넣어도 맛이 나서 제약이 적은 그런 편안한 메뉴이다.
슬라이스 치즈를 녹인 고소한 국물에 베이크드 빈이 씹히는 국물 한 숟가락이 생각나는 어느 날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