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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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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밍키친 Apr 09. 2022

왔다, 일상의 맛! _ 스팸

거부할 수 없는 기름지고 짭조름한 대기업의 맛

어릴 때부터 요리가 공부하고 싶었던 나는 17살, 본가인 부산을 떠나 기숙사가 있는 경기도의 학교에서 요리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집을 떠나와 시작했던 객지 생활은 대학교는 대전에서, 군생활은 전라도에서, 그리고 직장은 서울에서 구하게 되면서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자취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엄마가 농담으로 "강원도 출신 아가씨 만나서 제주도에서 살면 팔도 점령이네~?"라고 말씀하실 정도이니..ㅎㅎ


내 나이 서른넷, 올해를 기점으로 본가에서 부모님과 함께 산 날과 밖에 나와서 혼자 살지 시작한 날들이 같아지기 시작했다. 요리를 좋아하고 할 줄 아는 나에게도 냉장고 속에 재료들이 가득 차 있어도 가끔 간단한 음식들로 끼니를 해결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꼭 생각나는 재료가 바로 스팸과 라면, 김치다. 요즘 김치도 종류별로 아주 잘 나오고 있고, 집 앞에 있는 재래시장에서도 원하는 만큼 쉽게 구입할 수 있다. 거기에 스팸과 라면은 국민 모두를 반하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철저한 대기업의 맛이다.


6.25 전쟁 이후 휴대성과 보존성이 높은 스팸이 한국에 들어왔다. 스팸 회사 호멜이 군인들에게 얼마나 지겨울 만큼 스팸을 많이 보냈는지, 나중에는 군인들이 질리다 못해 묘한 반감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받고 싶지 안하도 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스팸 메일>이라는 단어도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미국 LA타임즈에서는 "한국에는 신선한 육류가 넘쳐나는데, 스팸이 인기 있는 이유를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신선한 고기를 쉽게 구할 수 있는 풍요로운 시대에 왜 '캔 햄'을 먹느냐는 의문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스팸을 구울 때 나는 향과 기름지고 짭조름한 맛은 한국인들의 밥반찬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한국인은 스팸을 좋아한다는 말보다, 흰쌀밥에 스팸만큼 잘 어울리는 반찬이 있을까라고 반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된다.




|  스팸의 맛에 겉바속촉의 매력을 더한 전자레인지 스팸통구이

스팸에 뜨거운 물을 부어 5분 정도 담가 두었다. 스팸의 짠기가 약간 빠지고 조금은 과하다고 생각되는 기름기는 제거되어서 살짝의 담백한 맛을 더할 수 있다. 뜨거운 물에 헹궈 낸 스팸은 키친타올을 이용해서 물기를 제거한다. 물기가 남아 있으면 구이가 아니라 찜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반드시 이 과정을 거치는 것이 좋다. 이렇게 전처리를 한 스팸은 종이호일을 깔고 전자레인지에서 5-6분 정도 조리하면 된다. 전자레인지만으로 바삭바삭하게 조리가 된 스팸을 먹기 좋게 잘라 흰 밥 위에 얹어주면 이게 천국인가? 싶다.


스팸은 참 맛있지만 자취생들에게 구매하기는 조금 어려운 재료다. 가격이 비싼 편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기름 한 방울 두르지 않고 스팸을 굽는다고 하더라도 가스레인지나 인덕션 대청소를 해야 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렇게 전자레인지를 이용하면 쉽게 조리를 할 수 있다.

뜨거운 물에 한 번 헹궈서 담백한 맛이 있으면서 거부할 수 없는 이 짭조름한 대기업의 맛에 겉바속촉의 매력을 더했으니, 이건 다 먹을 때까지 밥을 리필하고 또 리필해야 하는 마성의 반찬이다. 여기에 반숙으로 부쳐 낸 달걀 후라이나 볶은 김치가 있다면 탄수화물 과다 섭취를 주의해야 할 것이다.


| 거부할 수 없는 마성의 뜨끈한 국물 스팸두부찌개

자취를 하면서 가장 만만한 음식이 국, 탕, 찌개다. 한 번 끓일 때 왕창 끓여놓고 플라스틱 용기에 넣어 냉동실에 두면,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전자레인지에 데워 내면 방금 끓인 것처럼 뜨끈뜨끈한 든든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다. 자취인들에게 가장 만만한 국물이 미역국, 소고기 뭇국, 된장찌개, 김치찌개 정도일 것 같다. 김치찌개에 스팸을 넣어 끓이면 맛있는 부대찌개가 완성되지만, 희한하게 나는 김치찌개나 김칫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안 먹는다는 것이 아니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거다.) 그럴 때 가끔 두부와 스팸을 넣어 찌개를 끓이곤 한다.


냄비에 도톰하게 자른 감자와 양파를 넣고 스팸과 두부를 돌려 담았다. 따로 밑국물을 내는 대신 연두와 물을 넣었다. 국간장과 고추장, 고춧가루를 베이스로 하고 취향에 따라 맛술이나 다진 마늘 등을 곁들이면 좋다. 강한 불에서 끓이다가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불을 낮추어 약한 불에서 자글자글 끓여낸다. 찌개가 끓이면서 내는 소리가 참 기분 좋다. 이렇게 자글자글 끓는 모습이 기분 좋아서 짜글이라는 이름도 생겨났나.


씹을수록 짭조름한 맛과 기름진 육향이 같이 느껴지는 스팸에 담백한 두부, 포슬포슬하게 잘 익은 감자, 양파의 단맛이 잘 어우러진다. 한국 사람의 밥상에서 국물요리는 있으면 당연하고, 없으면 아쉬운 요리가 되는데 한국인이라면 싫어할 수 없는 스팸에다 간장과 고추장으로 맛을 냈으니 이건 뭐 싫어할 수가 없다. 자취를 하고 있는 나는 라면이나 당면을 사리로 넣어 먹기도 하고, 밥을 비벼 먹기도 하고.. 그저 감사한 요리가 된다.




"따끈한 밥에, 스팸 한 조각!"이라는 광고 카피 문구가 절로 생각나는 밥하기 귀찮은 어느 날은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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