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한 깊은 맛을 고스란히 담은 겨울 바다의 맛
겨울은 감히 해산물을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계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굳이 다른 것을 하지 않아도 맛볼 수 있는 신선한 해산물들은 싱그러운 바다의 맛으로 입 안을 가득 채울 수 있는 행복함을 선사한다. 사실 가리지 않고 모든 음식을 사랑하지만, 이 계절의 굴은 참을 수가 없다. 주변에 굴의 향과 식감 때문에 못 먹는 사람도 많고, 고등학교 때부터 아주 친한 친구는 어릴 때 굴을 먹고 체해서 지금은 이 맛을 즐기지 못한다고 하는데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맛있는 걸 못 먹는다고..? 미안하지만 난 맛있게 먹어볼게!
웬만해서는 해산물을 익혀서 먹는 서양에서도 굴만큼은 생으로 먹는다. 굴의 맛과 향, 그리고 영양소는 신선할 때 그냥 섭취하는 것이 가장 완벽한 맛이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역사 속의 정열가 나폴레옹도, 절세미인 클레오파트라도, 바람둥의 No.1 카사노바도 이 굴을 미용과 스테미너의 비결로 꼽았다.
신선한 굴에 레몬즙과 타바스코, 딜 오일을 살짝 뿌려서 먹어도 맛있고, 라임즙을 더해 세비체로 만들어 먹어도 맛있고, 통째로 찜기에 쪄서 먹어도 맛있고, 껍질째 직화로 구워 먹어도 맛있다. 사실,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굴은 이 계절에 먹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많이 먹어두는 것이 제일 좋은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 제철 과일의 싱그러움을 더한 사과굴초무침
제철을 맞은 달달하고 싱그러운 사과는 아침에 먹으면 금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제철 사과의 싱그러움을 싱싱한 굴에 더하면 아주 근사한 전채요리가 될 수 있다. 사실 과일 사라다를 제외하고 식사 시간에 과일을 식탁 위에 올린다는 것은 가히 상상하기 힘든 일인데, 이렇게 새콤달콤한 맛의 초무침이라면 새콤달콤한 향미에 아삭아삭한 식감까지 더한 과일이 아주 좋은 식재료가 된다.
사과는 식초 물에 살짝 담가 깨끗이 씻은 후에 껍질째 얇게 썰었다. 양파는 얇게 슬라이스 해서 소금물에 담가 매운맛을 빼고, 오이는 소금에 살짝 절여 꼬독꼬독한 식감으로 준비했다. 건미역은 소금물에 불린 후에 물기를 꽉 짜고 먹기 좋게 듬성듬성 잘랐다.(** 배에서 이미 한 번 찌면서 맛이 빠진 미역은 소금물에 불리면 본연의 맛을 최대한 유지한 채 맛볼 수 있다.)
남해에서 올라왔다고 하는 굴은 알갱이가 손상되지 않게 소금물에 흔들어 씻은 후 물기를 빼고 초무침 양념에 담갔다. 초무침 양념은 간단하다. 물에 레몬즙, 화이트와인비네거, 간장, 설탕이면 된다. 여기에 깔끔한 매콤함을 더하고 싶다면 얇게 슬라이스 한 청양고추 몇 조각을 넣어줘도 좋다. 초무침 양념에 재워 둔 굴은 냉장고에서 20분 이상 두면 양념이 잘 배어서 훨씬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필자는 손님 초대상의 전채요리로 준비했는데, 하루 전 날 초무침 양념에 담가놨더니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접시에 사과, 양파, 오이, 미역을 둘러 담고 초무침에 재워 두었던 굴과 양념을 끼얹어 내면 완성이다. 싱싱한 굴을 시간이 지나서 먹어서 아깝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초무침 양념을 통해 맛이 배면서 소독도 되어 안심하고 맛있는 굴의 향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재우는 시간 동안 굴의 풍미가 양념에 배어 나와 함께 먹는 부재료들과도 아주 잘 어우러진다. 달달하면서 상큼한 사과는 단연, 이 요리의 킥이라고 할 수 있다.
| 온몸이 따뜻해지는 뽀얀 국물이 시원한 굴국
한국인의 음식을 젓가락 문화, 김치 문화라고도 설명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 누군가 그런 질문을 한다면 국물 문화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발효한 장들을 이용한 찌개부터 온갖 재료들을 모두 활용할 수 있는 국, 그리고 국물김치까지!! 한 여름에도 뜨끈한 국물로 더위를 이겨내고, 또 추운 겨울에는 차가운 국물로 추위를 버텨내고.. 배달의 민족이 아니라 국물의 민족이라고 설명해도 될 것 같다.
바다의 우유라고 불리는 굴은 국을 끓이게 되면 마치 사골 뼈를 고아 낸 것 마냥 뽀얀 외관을 자랑하는데, 시원하고 깊은 맛이 나면서도 바다의 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굴국은 반주 마니아들에게 너무나도 반가운 음식이다. 게다가 굴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서 그리 많은 재료가 필요한 것도 아니니 집에서 한 냄비 끓여놓고 나면 안주도 되고, 해장도 되는 일석이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차가운 물에 나박 썰기한 무와 불린 미역을 넣고 무가 부드러워질 때까지 끓였다. 무가 반 정도 투명해지고 나면 굴과 다진 마늘을 넣어 굴이 익을 때까지 끓였다. 굴을 오래 끓일수록 국물이 진해지기는 하겠지만, 또 굴이 질겨질 수도 있어서 굴이 익을 때까지만 익히는 것이 딱 좋다. 굴이 익으면 달걀을 풀고 취향에 따라 두부, 부추, 청양고추 등을 추가하면 금세 완성된다.
바다의 맛과 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굴국에 밥 한 그릇을 뚝딱 말아서 잘 익은 깍두기, 갓 담근 김장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뜨끈하고 든든하게 한 끼가 해결된다. 아, 사실 최고의 궁합을 자랑하는 것은 어리굴젓이다!!(하지만, 이 자취인에게 어리굴젓이 어디 있으랴ㅋㅋ) 엄마가 담가주신 김장김치 한 조각 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순간이다. 겨울.. 바야흐로 굴의 계절이 돌아왔다.
굴의 힘을 빌려 든든한 겨울을 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 12월 첫 날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