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동양적인 그리고 지극히 서양적인
어린 시절 읽었던 호랑이와 곶감이라는 전래동화를 기억하는가?
호랑이가 잡으러 내려온다고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않던 어린아이가 달달한 곶감을 준다는 소리에 울음을 뚝 그치면서 호랑이가 곶감을 엄청 무서운 존재로 생각하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다. 그냥 어릴 때 엄마가 읽어주셨던 전래동화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곶감은 어느 순간 가끔씩 먹고 싶은 맛있는 간식이 되었다.
감을 수확하는 가을 껍질을 제거한 감을 매달아서 차가운 바람을 맞아가며 말려 낸 곶감은 계절과 바람이 만들어 낸 천연 젤리처럼 쫀득쫀득한 식감과 특유의 맛을 만들어 낸다. 감에 떫은맛이 남아있더라도 곶감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그 떫은맛은 사라지고 깊은 단맛이 된다. 어릴 때는 곰팡이인 줄 알았던 곶감 표면의 하얀 분은 감 자체게 있는 당분이 말라가면서 만들어 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곶감은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요리의 재료들로 활용해서 즐길 수 있는 방법들도 많다.
크림치즈 곶감말이
양식에서 보통 와인을 먹을 때 건조과일이나 건조과일을 곁들인 치즈들을 함께 곁들이는데 그래서 그런지 곶감 안에 크림치즈와 호두를 채워 넣은 크림치즈 곶감말이는 한동안 온라인을 달구었다. 손쉬운데, 예쁜 비쥬얼 덕분에 손님들에게 간단하게 디저트로 대접하기에도 좋은 메뉴였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서 자연스럽게 건조가 된 곶감에 발효의 대명사인 치즈, 그리고 고소한 호두의 조합은 신의 음료라 불리는 와인에 곁들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곶감단자
손이 조금 많이 가는 것도 좋다고 한다면 곶감단자에 한 번 도전해보길 바란다. 꼭지를 제거한 곶감 안에 씨를 제거한 대추, 밤, 잣, 유자청 등을 버무려서 채워 넣은 음식인데, 유자단자와 함께 손은 많이 가지만 예쁜 비쥬얼로 고급스러운 한정식집이나 궁중요리를 설명할 때 많이 소개되는 음식이다.
곶감쨈
KBS2 편스토랑 프로그램에서 윤은혜가 만들었던 곶감쨈도 곶감을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꼭지와 씨를 제거한 곶감에 설탕을 넣고 끓이다가 생크림으로 부드러움까지 더한 방법으로 끓여 낸 이 쨈은 곶감이라는 음식이 낯선 외국인들에게 부담스럽지 않게 곶감을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다.
| 동양의 달달함과 서양의 고소함을 함께 품은 곶감버터말이
어느 순간 퓨전이라는 단어가 우리의 식탁을 지배하고 있다. 외국의 식재료들이나 요리들도 쉽게 접할 수 있으면서 식탁 위의 국경이 없어진 듯하다. 그래서 김치찌개에 토마토를 넣어먹는다거나, 꼬꼬뱅을 만들 때 된장으로 닭의 누린내를 잡는다거나.. 거창하지 않아도 조금씩 스며드는 퓨전 음식들을 경험할 수 있다.
한 때 담백한 치아바타에 달달한 팥앙금과 고소한 버터를 채워넣은 '앙버터'라는 빵이 인기 있었던 적이 있었다. 담백함과 달달함, 고소함이 이루는 조화가 아주 완벽한 삼박자를 이루어냈는데, 곶감의 달달함에도 고소함이 더해지면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냉동실에 있던 곶감, 요리를 조금 즐기는 사람이라면 항상 냉장고에 있는 버터, 그리고 소금만 있으면 모든 재료 준비가 끝난다.
꼭지와 씨를 제거한 곶감을 넓게 편 후에 버터를 도톰하게 잘라서 단단하게 말았다.(동글동글 모양을 잡는 것이 어렵다면 김발을 이용하면 좋다.) 버터를 넣어 말은 곶감말이는 냉동실에서 15분 정도 굳혀두었다가 김밥처럼 한 입 크기로 자르고, 소금을 한 꼬집 뿌렸다. 곶감의 쫀득한 식감에 버터의 부드러운 식감이 어우러져서 주는 식감의 매력도 좋고 곶감의 달달한 맛에 버터의 고소한 맛, 그리고 소금의 짠맛이 주는 반전된 맛들의 조화도 참 매력적이다.
따뜻한 이불속에서 듣던 엄마의 전래동화가 그리워지는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날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