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공원의 인격성
0. 공원의 사회적 거리
도시에 살면서 우리는 너무 자주, 가까이, 붙어있다시피 살아간다. 지하철 인파에 떠밀려가다 보면 앞사람들의 핸드폰 화면들이 미래도시처럼 내 눈앞에
파바-바-파박
켜진다. 또 어느 여성의 정수리가 내 턱에
테
트
리 스
처럼 삽입된다.
그래서 적절한 거리감은 우리에게 더욱 절실해 보인다. MBTI나 혈액형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 역시 적절한 거리감을 원하는 갈망의 조각 아닐까. 오랜 시간 뜸 들이며 알아가는 구체적인 취미나 취향을 공유하기보다는 적당한 분류 타입을 파악하고 적정한 거리감을 두면서 어느 정도 이해한다며 비로소 안도하는 정서적 갈망. TV나 유사 미디어도 어쩌면 그런 조각 중 하나 아닐까.
어쨌든 오목공원은 확실히 사회적 거리감을 존중한 공간이다. 1980년대의 정직한 도시계획 위에 2020년대의 섬세한 감정 설계가 더해진 이곳은, 거리감의 적정선을 물리적 공간으로 제안한다. 공원 중앙부에 놓인 정사각형 회랑 덮개, 4-5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2층 산책로의 폭원, 한 변의 길이가 40-50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네모난 잔디밭과 다섯 그루의 느티나무, 네이비색-레몬색의 농구장 공간과 분리된 일반 운동기구 공간—이 공원은 도시와 개인, 감정과 행동 사이의 이상적 거리감을 실험하는 공공 공간이다.
1. 1980년대 목동 신시가지, 2020년대 조경 리뉴얼
1980년대 목동 신시가지계획은 ‘정직한 도시계획’의 상징이었다. 학교, 주거지역, 상가, 공원이 각 블록 안에서 철저히 계산되고 조닝 된 대칭 구조의 데칼코마니. 오목공원은 그 교과서적인 도시계획의 결과물이다. 88올림픽이후 89년에 준공되었던 오목공원. 오목내라는 천에서 유래되었지만, 정말 오목을 두다보면 우연히 갇혀버린 바둑알 한알처럼 고립되어 있다. 그러다 2023년 12월 재개장되었다. 40년정도 이용한 오래된 공원의 리뉴얼 업데이트다. 공원은 도시계획시설이다. 도시생활자들의 특성과 이용패턴이 바뀌고 주변 계획이 변경되어왔으니, 당연히 시설도 변경되어야 한다.
조경 리뉴얼에서 가장 중요한 밑작업은 이용자 입장에 서서, 켜켜이 쌓인 시공간의 XYZ 축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정돈하는 일이다. 새로운 디자인은 이용자 연령 특성을 고려해서 기존 농구장과 운동기구공간을 멀찍이 떨어뜨려놓았다. 사진작가들이 포착하고 싶어 할 법한, 회랑덮개 위를 뚫고 나올 느티나무 실루엣의 유혹을 선택하기보다는, 사람과 느티나무의 지속적인 상생을 위해 잔디밭 안쪽으로 위치만 조정해서 무난한 모습을 선택했다.
기존 수목의 밀도를 낮추면서 하부에 다간형 수종들을 식재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정리정돈이다. 공간의 볼륨이 입체적으로 느껴지게 되고 저마다의 개화시기와 단풍이 다르므로 계절감과 공간감의 깊이가 풍성해진다. 회랑 덮개(그늘, 복층시선, 팝업공간)를 구축한 것도, 아담한 건축(실내전시, 미술, 커뮤니티)을 들인 것도 와우한 포인트를 선보이기보다는 그저 이용자에 대한 우아한 배려의 결과물로 보인다.
2. 공간의 화해성
공원 중심부에 자리한 사각형의 잔디밭과 회랑 덮개를 살펴보자. 사실 정방형의 정직함은 안정감을 줄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지루함과 경직됨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누군가에겐 공간이 좁아 보이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육중한 회색 콘크리트 구조물이 다소 무겁고 인공적으로 보일 수도, 명료한 건축적 접근이 날카롭고 차갑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행히 우려했던 바는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정사각형 회랑 안의 잔디밭에 심긴 다섯 그루의 느티나무 거목들 덕분이다. 회랑이 90도로 꺾이는 곳에 드러나는 날카로운 엣지(edge)를 느티나무들이 절묘하게 흐트러뜨린다. 소실점은 삐걱거리며 뒤틀린다. 네모난 형태가 유발하는 구조적 긴장감과 경직성을 나무와 녹색의 자연이 완충해 주는 것이다. 그러한 쿠션감이 이용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한다.
회랑의 2층 구조는 단순한 조형이 아니라 기능적 선택이었다. 비 오는 날에도 1층과 2층 회랑 모두에서 산책이 가능하고, 바둑 두는 어르신, 유모차를 끄는 엄마, 산책하는 반려견까지 모두를 품는다. 작은 공간을 2층으로 이용하니 공원의 용적률이 순간 높아진다. 날씨와 상관없는 접근성과 활동성이 보장되며 이용자의 다양한 취향을 고려한 선택의 공간이다.
3. 공간의 희극성
20미터의 거리에서는 보통 맞은편 상대방의 표정과 입모양이 읽힌다. 그러나 40미터는 다르다. 약 40~50미터 간격의 회랑, 그 거리감은 맞은편 누군가의 표정은 보이지 않고 몸짓만 읽히는 절묘한 거리다. ‘응시’와 ‘방관’ 사이, ‘관찰’과 ‘개입’ 사이의 거리. 회랑에서 마주치는 이 거리감은 익명의 도시생활자 서로에게 허락된 안전한 거리다. 상대방이 나를 향해 욕을 해도 욕으로 들리지 않는 거리.
몸짓과 손짓정도만 뿌옇게 읽히기 때문에 마주 보고 앉아도 민망하지 않고 혼자여도 그리 외롭지 않다. 가운데 네모난 잔디밭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도 아이나 보호자나 구경꾼 모두에게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적당한 거리에서 자신을 뽐내고 드러낼 수 있다는 안도감. 그런 상대방을 바라보는 여유감. 이 희극적인 무대에서 서로의 암묵적 동의를 느낄 수 있다.
4. 공간의 회화성
미술관, 화장실, 키즈카페의 다양한 갈색 톤의 벽돌마감, 숲속 라운지의 어두운 휴게가구 색감과 회갈색의 목재데크 등 각 공간마다 조금씩 다른 색감들이 차분한 톤으로 구성되어 주변 나무들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미술관 앞 복자기단풍의 아이보리색 줄기가 적벽돌 건축마감에 은은한 농도로 스며든다. 가을이 되면 새빨간 단풍이 건축 공간에 두터운 계절감을 데려올 것이다. 크림색, 갈색, 황토색, 흙색, 회갈색과 회색이 섞인 건축 마감재와 바닥 마감재들, 모든 공간은 다분히 입체적이고 회화적이다.
색채의 과잉 없는 회화적 접근은 단순히 예쁘고 보기 좋은 수준을 넘어, 우리의 시각적 피로도를 낮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가 공존하기 쉬운 환경을 조성한다.
메인 동선과 적절히 분리된 체육 공간은 풀코트와 반코트를 중심으로 둥글게 배열되어 있다. 코발트블루, 스카이 블루, 라이트 옐로 등 톤의 베리에이션이 돋보이는 파란 농구코트는 생동감을 증폭시키는 동시에 이용자 간 충돌을 최소화한다. 농구골대의 높이도 조금씩 달리해서 연령대 아동의 신체적 특성을 배려한다. 시각적 독특성과 기능적 효율성뿐 아니라, 세대 간 혼합과 기능적 분리를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5. 사람에 대한 배려의 세팅값
2021년, 오목공원 리뉴얼에 참여한 조경 관련 전문가들은 쇼핑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당선작의 디자인 마스터플랜을 완성시켰다. 100가지의 도시생활자 활동을 담아 신선한 영감을 선사했는데 그 활동들을 다시 네 가지의 군상으로 분류하면, 쇼핑하는(판매-구매-구경하는) 군상, 놀고먹고 쉬고 운동하는 군상, 배우고 일하고 뽐내는 군상, 기타 군상이었다. (기타 군상 : 44번 CBS 아나운서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 후 공원 벤치에 앉아 SBS를 바라보는 20대 여성, 57번 여자친구에게 이별통보를 받고 숲 속에 앉아 울고 있는 대학생, 98번 오후 12시 30분, 산책하는 여성에게 한눈에 반해 매일 같은 시간 공원을 찾는 30대 남성 직장인, 99번 오후 12시 30분, 공원을 걸을 때마다 자신을 바라보는 남성이 언제쯤 다가올까 기다리는 20대 여성 직장인) 사람과 자연에 대한 주목과 배려는 라운지 개념까지 확장되었고 쓰레기통의 폰트와 이스터 에그처럼 곳곳에 숨겨진 흰색 오목눈이 뱁새 조형물들까지 세심하게 디자인되었다.
이용자 중심, 배려와 감동, 찰나의 영감과 시적 감흥 같은 단어들은 진부한 나머지 설계설명자료나 의사결정보고자료 또는 연습장에 끄적이기에도 민망해질 때가 있다. 한때 핫했던 여러 종류의 어바니즘, 뉴웨이브, 바이오필릭, 리질리언스 같은 단어들에도 이제는 헛헛한 진부함과 피로감을 느낀다.
그런데 "이용자에 대한 공감과 배려"라는 이 진부함을 끝까지 물고 처절하게 궁리하는 조경에게 아이러니하게도 독보적인 아우라가 주어진다. 왜냐하면 조경이 도시적이고 생태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차원을 넘어 궁극적으로 사람에게 직접적인 감명과 영감을 선사했을 때, 비로소 공간은 콘셉트와 치장을 넘어 작품이 되는 순간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뻔하고 진부한 단어의 근본과 이면을 고민하고 본질에 집착하는 조경가에게, 혈흔 넘어 경이로운 면류관이 씌워진다.
6. 오목공원의 인격성
오목공원은 화해적이고 희극적이며 회화적이다. 마치 고요한 캔버스 위에 이용자들의 움직임이 점묘화처럼 찍히는 듯. 무수히 많은 행위들이 생성된다. 무대는 남녀노소의 일상과 마르쉐 농장과 같은 이벤트로 채워지기도, 비워지기도 한다. 관람자와 참여자, 운동하는 청소년층과 장년층. 피크닉을 즐기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수다를 떠는. 모두가 공존 가능한 도시 풍경들.
이용자를 배려한 요소가 켜켜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공간이 인격을 가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오목공원을 걸으며 느낀 것은 단지 아름다움의 수준을 넘어, 도시생활자의 삶의 리듬과 거리에 대한 배려심, 환대감이었다. 오목공원은 우리 일상의 균형감각을 되돌아보게 한다. 회랑의 그림자 아래서 바둑을 두던 어르신, 비를 피해 회랑을 향하는 아이 엄마, 농구 골대 아래 모여 있던 학생들. 모두가 자신만의 속도와 거리감으로 공간을 살아낸다. 그렇게 오목공원은 공원의 이름을 빌려, 도시의 인격을 닮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