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동 근린공원

《No. 1187-M / Mullae》

by 도시일기

철냄새. 금속의 냄새다. 이 도시의 하루는 금속을 자르고 붙이는 소리로 시작된다. 이른 아침, 문래동이라는 이름의 동네는 커다란 철의 생명체처럼 깨어나 각성의 공명을 울린다. 나는 그 진동에 이끌려, 천천히, 마치 신호를 받은 탐사자처럼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내 고향이 떠오른다.


철의 향기가 잦아드는 이 구역의 가장자리. ‘문래동 근린공원’이라는 이름의 작은 녹지대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도시 생명체들이 충돌 없이 공존하기 위해 설계된 중립지대 같다. 나무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나열되어 있으며, 인간들은 그늘 아래 조용히 앉아 서로를 관찰한다. 이 공원에서는 분명 서로 다른 존재들이, 놀랍도록 평화롭게, 말을 아낀 채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었다.


공원의 중앙에는 매우 흥미로운 구조물이 있다. 철로 이루어진 이 높다란 장치는 ‘농구대’라 불리며, 그 위에는 명확한 명령문이 붙어 있다:

“밤 10시부터 아침 8시까지 이용 금지.”

이 문장은 도시의 인간들이 시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규율에 따라 움직인다는 강력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들은 마치 시간이라는 투명한 신호등 아래에서, 정지와 운동을 정밀하게 분배하고 있었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만약 이 농구대가 다른 구획에 위치했더라면, 이들의 시간 통제 방식도 달라졌을까? 도시의 공간은 시간의 질서를 배열하는 수단일지도 모른다.


공원의 또 다른 구역, 나무 사이 어딘가에 기묘한 장치가 매달려 있었다. 한쪽은 오전 10시를 가리키고, 반대쪽은 9시 43분이었다. 양면에서 시간을 보여주는 이 장치는 오류인가, 아니면 복수의 시간이 공존한다는 선언인가. 인간들은 단일한 시간을 공유하는 것 같았지만, 그 내면엔 분절되고 흩어진 시간들이 흐르고 있었다. 어쩌면 이곳의 시간은 항상 약간 어긋나 있어야만 공존이 가능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무 아래, 인간들은 묘한 움직임을 보였다. 일부는 작은 나무 탁자 위에서 돌을 옮기며 깊은 고민에 잠겨 있었고, 더 작은 인간들—그들은 ‘어린이, 유아, 아동’이라 불리운다—은 물이 흐르는 얕은 구조물에 손과 발을 담그며 특별한 감흥을 느끼고 있었다. 생산도, 거래도 없었다. 이들은 느리고 비효율적인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고, 그것이 오히려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생산해내고 있는 듯했다. 이 느린 움직임은, 도시의 압력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제한적 해방의 형식이었다.


그리고 나는 벤치를 발견했다. 이 공원엔 유난히 많은 벤치가 있었고, 인간들은 그 위에 앉아 아무런 목적 없이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앉음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어떤 의식처럼 보였다. 각 벤치는 인간의 시선을 일정한 각도로 유도하며, 관찰자로서의 위치를 정해주었다. 앉는다는 행위는 공간을 사용하는 권리의 표현이자, 다른 존재와 나란히 시간을 보내는 상징적 행위였다.


더 흥미로운 장면은 나무와의 대화였다. 몇몇 인간들은 특정 나무 앞에 멈춰 서서 말을 건네고 있었다. 처음엔 그것이 혼잣말인 줄 알았지만, 곧 나무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무는 응답하지 않았지만, 인간은 그 침묵을 감지하고 스스로 조율하는 듯했다. 이 도시에서는 나무와 인간이 매우 느린 속도로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것은 어떤 기술보다 오래된 공존의 방식이었다.


공원을 떠나기 전, 나는 이 기묘한 장소의 지도를 그려보았다. 나무, 길, 수경시설, 벤치, 철제 농구대… 각각의 요소는 공간을 구성하는 구성물인 동시에 인간의 감정을 배치하는 단서였다. 이 도면 위에서, 도시 공간은 더 이상 단순한 기능의 총합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들이 감정을 연습하고, 규칙을 시험하고, 공존의 예행연습을 하는 정서적 실험장이었다.


문래동 근린공원은 그렇게, 오늘도 조용히 도시를 떠받치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단지 관찰자가 아니라, 도시라는 생물체 안에서 감정과 시간을 공유하는 하나의 미세한 단위였다.


사진 : YOUTUBE 공원읽기 "문래동 산책 : 문래동 사람들이 행복한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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