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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 Lee Apr 09. 2020

#21. 쿠알라룸푸르 2:쿠알라룸푸르의 형성과 중국인

주석 탄광을 시작으로 형성된 쿠알라룸푸르와 중국인의 이주

쿠알라 룸푸르 이틀째

창문을 여니 그새 달궈진 더운 열기가 훅 끼쳐온다. 코너에 위치한 방의 창문이 넓어서 양쪽 거리가 두루 내려다보인다. 서쪽 방향의 길 끝에는 센트럴 마켓이 자리하고 있어서 부지런한 관광객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서있다.

하늘색으로 칠해진 산뜻한 외벽의 센트럴 마켓은 오랜 전통이 깃든 장소라기보다 새로 지어진 쇼핑몰 같다. 그런가 하면 반대쪽 거리는 터미널과 대형 쇼핑센터로 연결된 길인 데다 길가 한편 줄지어 자리한 노천 음식점들이 있어서 그쪽도 볼만하다. 무리 지어 이동하는 관광객들 내려다보는 재미가 있다.


그새 옆방 청소를 하러 온 메이트는 상냥한 눈웃음을 보내온다.

인건비 아끼기 위해 대부분의 숙소들은 이른 아침부터 퇴실한 방청소로 소음을 방출하곤 한다. 적은 인력으로 유지하려니 늦잠 투숙객 사정은 고려할 수 없다. 청소기 소음으로 쫓겨나듯 방을 나선 날들이 더러 많았다. 거기다가 지쳐 보이는 그들의 표정을 마주하면 괜히 미안해서, 서둘러 시선을 거두기 일쑤였다.

그런데 새까만 피부로 보아 남인쪽 혈통 인성 싶은 이 여성은 캐리어 가득 무겁게 담긴 세탁물, 침구류, 어메너티 일습을 싣고 돌면서도 표정만은 싱그럽다. 무더운 거리로 나서는 내게 잘 익은 살구 한 알 건네주는 듯한 상큼함이 그녀에게서 옮겨온다.     


센트럴 마켓

센트럴 마켓은 쿠알라룸푸르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 파사르 세니라고도 불린다.

독특한 외관과 말레이시아의 전형적인 체취가 흠뻑 풍기는 상점가는 식민지 통치를 하던 영국인들이 처음 지었다. 1888년 개장 당시에는 시민들과 주석 광산 광부들이 이용하던 재래시장으로 고기, 채소, 과일 등을 파는 시장이었다. 이후 확장되어 1933년 도매시장으로 현재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1985년 활기 있고 화려한 모습으로 재보수하였으며 1986년에는 파사르 부다야(Pasar Budaya)라는 공식 명칭을 얻게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1층은 말레이, 인디아, 콜로니얼 거리 등 테마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2층에는 레스토랑과 갤러리 그리고 현대 미디어를 이용한 다양한 매장이 위치해 있다.

센트럴 마켓 1층 매점들

말레이시아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특산품이나 소수민족의 수공예품, 특산물, 의복 등을 주로 판매하고 있는 이 Central Market은 쿠알라룸푸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전통 시장이라고 한다. 그래선지 작은 골목에 들어앉은 여러 가게의 진열품들이 매우 강렬하고 매력적이다.

요즘은 관광지 쇼핑몰들이 자국의 특색보다는 글로벌화한 트렌드에 영합하여 거의 비슷한 아이템들로 채워지는 것과는 차별화가 크게 느껴진다.

개성 넘치는 전시물은 2층으로도 이어졌다. 갤러리에 전시된 그림들은 특유의 색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2층의 갤러리에서 내려다 본 건물 지붕

다시 1층으로 내려오니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화가들이 많았는데 아주 사실적인 묘사로 그려진 유명인들의 초상화 완성도가 매우 높다.

이처럼 더운 기후에 좁은 공방에서 작업하는 그들을 보니 경외감이 든다. 여러 화풍의 그림들이 많고 색감이 이곳 날씨를 배경으로 한 때문인지 밝고 화사하고 화려하기 그지없다. 덩달아 나도 다시 그려보고 싶은 생각이 뭉클 솟는다. 하나쯤 소장하고픈 마음에 2층 갤러리와 아래층 화방을 몇 번이나 빙빙 돌다가, 좁아터진 가방 생각에 결국 포기한다.     

         

센트럴 마켓 1층의 화가와 그림들

마지드 자맥(Masjid Jamek)

시원한 물소리를 따라 가보니 클랑 강과 곰박 강 두 물줄기가 합쳐진 강의 양안에서, 분수처럼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다. Y자로 모아지는 강의 합류 지점은 원래 묘지 자리였다고 한다. 그곳에 세워진 사원이 마지드 자맥 사원으로 쿠알라룸푸르에서는 가장 오래된 사원이라고 한다.      

마지드 자멕은 영국 식민지 시절 말레이 지역사회가 자금을 지원해서 건축했다니, 그 당시 상인들의 협조가 컸을 것이다. 건축설계는 아서 베니 슨 허버트 (Arthur Benison Hubback)에 의해 쿠알라룸푸르 기차역과 쿠알라 캉 사르 (Kuala Kangsar)의 우붓 디 모스크 (Ubudiah Mosque)와 같은 유사한 스타일로 디자인되어 1909년에 건축되었다.

모스크 건축 스타일은 무어 , 인도 사라센 또는 무굴 건축으로 묘사된다. 사원에는 다른 작은 사원들과 마찬가지로 2개의 주요 대저택이 있다. 벽돌과 회반죽으로 형성된 첨탑의 분홍색과 흰색 밴딩의 패턴을 보인다. 이 모스크에는 3개의 돔이 있으며 그중 가장 큰 돔은 21.3 미터 (70 피트) 높이에 이른다. 기도 홀은 돔 아래에 있다. Masjid Jamek는 Masjid Negara(국립 모스크)가 1965년에 건축될 때까지 쿠알라룸푸르의 주요 회교 교당으로 쓰였다. Masjid Jamek은 1984년에 새롭게 단장되었다. 원래의 노천 앞뜰이 지붕을 덮어 확대되었다. 사원의 돔 한 개는 호우 때문에 1993년에 쓰러졌다가 고쳐졌다.      

왼쪽 곰박 강과 오른쪽 클랑 강이 분수의 삼각꼭지점에서 합류한다.
곰박 강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 뒤의 곰박 강
흰 지붕이 마지드 자멕
마지드 자맥

유연한 곡선미와 돔의 형태는 물론이고 건축물의 색깔 면에서 회교문화의 특징을 발산하면서도 고아한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 사원에 심어진 커다란 야자수의 진초록은 물론 사원을 기점으로 양안에서 내려오는 푸른 물줄기와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분수, 더하여 새파란 하늘까지 배경이 되니 이 사원은 그야말로 이 도시를 장식하는 섬세한 보석 브로우치처럼 관광객들의 시선을 단단히 잡아끈다.

클랑 강과 곰박 강이 Y자로 만나 합류한 지점의 건물들

어디서도 다 포토 존이 되는 마지드 자멕 사방 여기저기서 관광객들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정해진 시간에 입구에서 복장을 갖추면 누구나 입장 가능하고 다양한 모양의 코란과 기도할 때 사용되는 제단까지 이슬람교를 간접 체험할 수 있다는 정보를 믿고 사원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입구에서 막는다. 불행히도 예배가 있는 시간이어서 신자가 아니면 입장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다리를 건너니 어제 왔던 메르데카 광장이 눈앞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가장 중요한 건물들이 독립광장을 빙 둘러싸고 있다. 근세 말레이시아의 역사적 장소이고 쿠알라룸푸르의 중요한 곳이다.

River of Life - Bridge( 마지드에서 메르데카 광장으로 가는 다리)


쿠알라룸푸르의 시작, 주석탄광과 중국인

지금은 말레이시아의 최대 도시이지만 말라카, 페낭, 조호르 등 말레이시아의 다른 고도들에 비하면 그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857년 곰박 강과 클랑 강이 합류하는 지역에 중국인들이 주석 광산을 채굴하기 시작하면서 도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따라서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는 “흙탕물의 합류”를 뜻한다.      

정착지의 시초는 슬랑오르의 왕족인 라자 압둘라가 주석 채굴꾼들에게 클랑 밸리(Klang Valley)를 개방하면서부터이다. 87명의 중국인들이 클랑 강을 거슬러 올라가 암팡 지역에서 주석 채굴을 시작했다. 이를 알게 된 중국인들은 그 지역을 통째로 사서 광산의 채굴꾼들을 상대로 주석과 생필품들을 거래하며 곰박 강과 클랑 강이 합류하는 지역에 상점을 세우면서 도시가 시작된 것이다.

마을이 커지자, 말라야 지역을 통치하던 영국인들은 법과 질서 유지를 위해 카피탄 치나(captain china:중국인들의 지도자)를 임명했다. 세 번째 카피탄 치나였던 얍 아 로이(Yap Ah Loy) 때에 와서, 조용한 광산 마을이었던 쿠알라룸푸르는 슬랑오르 주에서 가장 앞선 선진 도시가 되었다. 그는 다른 지역의 중국인 채굴꾼들을 불러들였고 식량 공급을 위해 말레이인 농민들을 쿠알라룸푸르 근교에 정착하도록 했다.      

이에 1880년에 쿠알라룸푸르는 슬랑오르 주의 주도가 되었다.

1896년, 말레이 연방주가 만들어지면서, 쿠알라룸푸르는 수도가 되었다.

1926년 쿠알라룸푸르

195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쿠알라룸푸르는 말라야 연방의 수도였고, 1963년 국명이 말레이시아로 바뀐 후에도 그 지위를 유지했다.

대부분의 중앙행정기관은 쿠알라룸푸르 바로 옆에 있는 푸트라자야로 옮겼지만, 왕궁과 국회의사당, 사법부 일부와 대사관은 아직 쿠알라룸푸르에 남아 있어 두 도시가 수도 기능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 푸트라자야는 메르데카 광장으로 부터 약 40km 남쪽으로 떨어져 있으며 KLIA 공항과의 사이에 있다.    


근래에도 말레이시아 주석은 세계 총생산량의 70%를 생산하며, 97%의 순도를 자랑하는 품질 좋은 주석을 생산한다. 1885년 설립된 주석 공장&박물관은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에서 가장 큰 주석 잔이 있는 곳이다.

주석으로 만든 쿠알라룸푸르 트윈타워와 관우상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정부의 부미푸트라 정책

현재 이 도시는 말레이인 국가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중국계 말레이인 즉 말레이 차이니즈들이 인구 60% 정도의 다수를 차지했다. 페낭이나 조호르바루 등과 함께 중국계 말레이인 비중이 이처럼 높은 것은 쿠알라룸푸르가 중국인 이민자들에 의해 개척된 배경에 연유한 것이리라.

그러나 말레이시아 정부는 1970년 부미푸트라 정책을 내놓았다. 이는 말레이시아 토착(말레이인, 사바와 사라왁의 원주민)에게 기회를 창출해준다는 정책이다.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를 연방 탈퇴시켰다시피 경제 점유력과 수준 높은 교육으로 상위계층을 형성하는 중국인 및 인도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말레이 토착민 지원함으로서 경제불균형을 해소한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는 상대적으로 비토착의 99%를 차지하는 중국인이나 인도인을 차별하는 정책으로 받아들여졌다.

1991년 정부는 다시 2020년까지 이어질 부미푸트라 우대정책을 발표했다.


다음은 메르데카 광장에 서있는 옛 건물들의 모습이다

Ministry Of Primary Industries
Ministry of Tourism and Culture Malaysia :  (옛날에는 고등법원건물)
구리 지붕의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과 건물 맨 오른쪽 부분 옛 우체국 건물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 뒷편에서 본 모습

마지드 술탄 주변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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