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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 Lee Apr 08. 2020

#20. 쿠알라룸푸르 1: 말레이시아의 역사

쿠알라룸푸르 첫 방문지 메르데카 광장

쿠알라룸푸르 공항 klia2

말레이시아 항공과 대한항공KLIA( Kuala Lumpur International Airport)를 이용하지만 저가항공들은 klia2를 이용한다고 한다. 새로 생긴 이 터미널은 소문자로 표기한다. 1시간 전에 떠나 온 창이공항과 KLIA 공항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우선 인종 차이가 크게 체감된다. 점차 더운 지역으로 이동한다는 것을 피부색이 말해 준다. 싱가포르에서 보긴 했지만 여기는 타밀인들을 비롯, 남아시아인 들이 훨씬 많다.


공항 밖에 정차해 있던 잘란 푸두행 버스는 쉽게 찾아졌다.

KLIA 공항의 버스 정차장

말레이시아는 동일 노선이라도 여러 버스회사와 여러 유형의 버스들이 있어서, 요금도 다르다. 예약사이트에 버스별 차이를 나타내주므로, 선택시 고려할수  있다.

차창을 통해 보쿠알라룸푸르 가는 길은,

언제나처럼 선물 포장 뜯기 전의 기대으로 다가온다.


예약해둔 숙소는 차이나타운 근처라서 버스로 한번에 갈수 있다. 40분 소요라더니 1시간쯤 걸렸다.

푸두라야 버스터미널 지하층의 거대 터미널 내려 사람들 뒤를 따라서 건물 밖으로 나왔다.

큰 도로 건너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집을 기준하여 찾으니, 

10분 안에 도착이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숙소 건물

6층짜리 크림슨 드( crimson red), 강렬한 색깔의 호텔에 들어서니 체크인 중인 동남아 젊은이들이 다.

실내 장식으중국인 소유임을 금새 알수 있다.

리셉션 여성은 흔쾌한 인사말과는 달리, 담배냄새가 잔뜩 절은 방 배정했다.

‘담배연기에 질식하고 싶으면 이 호텔을 이용하라’ 던 일본의 어느 호텔 review 방에도  들어맞는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가방을 끌고 다시 내려가니, 그새 남자 직원으로 바뀌어있다.

이번에는 전망 좋은,  창이 있는 맨 마지막 코너 방을 주었다. 혼자 쓰기에 헛헛하리만큼 넓다.

좁은 싱가포르의 도미터리에서 4박을 한 담이니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호텔에서 내려다 보이는 이 건물도 오랜 전통을 가진 건물이다.
나무가 심어진 부분이 역사적 삼각형( Historical Triangle ) 지역

호텔 벽에 걸린 사진들을 보니 오래전부터 이 거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고, 호텔 역시 역사가 깊은 곳이었다.

여러 장의 흑백사진에 담겨있는 거리와 숙소의 모습은 영국의 식민지 시절부터 있어온 것으로 역사가  100년에 가까움직도하다.  역사적인 삼각형( Historical Triangle )이라고 하는 호텔 앞 삼각형 광장은 도시를 관통하는 초기 도로들인 Jalan Petaling , Leboh Pudu, Jalan Tun HS Lee 의 3길에 에워싸여 만들어진 광장이다.

처음에 이 도시가 자리 잡게 된 것은 이 근처에서 발견된 주석광산을 채굴하러 중국인 인부들을 데려오면서 부터라고 한다. 이후 중국인들이 이 지역을 통째로 사서 경제적 우위를 확보하면서 도시로 발전해 나갔다고 한다. 그러므로 쿠알라룸푸르 초기,  차이나 타운 도시 상권을 주름잡던 중국인 중심으로 도시 형성 초기에 발달한 곳이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중요한 건물들이 들어서고 새 도로들이 개통되면서 삼각형 광장도 그 때 형성되었을 것이다.

이 호텔 역시 그 유서 깊은 거리 한 자락에 일찌감치 터 잡아, 현재도 중국풍을 견지하는 것 같다.


거리의 의미로운 위치만큼이나 이 숙소가 가진 내력을 부각시킬 좋은 조건임에도, 짙게 배어든 호텔 내의 담배냄새만큼 떨쳐내기 어려운 무엇이 있는지 호텔 관리 상태는 부족다.

아깝다! 

인간관계 건물이던 혹은 거리던 시간이 쌓여있는 것들은 쉽게 허물수 없는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GOKL로 시내 드라이브를 먼저

짐을 정리하고 거리로 나선다.

쿠알라룸푸르가 시민과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무료로 운영하고 있는 버스 GO KL City Bus는 이 도시의 큰 특장점이다. GOKL이 의미하는 바, Go Kuala Lumpur의 약자이다.

관광객들이 따로 교통요금을 지불하지 않고도 다양한 노선의 무료버스를 타고 도시를 두루 둘러볼 수 있는 서비스를 나는 다른 도시에서 경험한 적 없다.

무료 Wi-Fi 제공, 에어컨이 설치된  보라색의 1층 버스는 도시 중심부의 주요 관광 명소를 포함하는 4 개의 순환 노선을 운행한다.

레드(Relax), 블루(Work), 퍼플(Sightsee), 그린(Shopping) 노선 외에 2019 년에 다섯 번째 오렌지 경로가 추가되었다고 한다.

각 정류장의 위치는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한 방향으로 도는 셔틀을 색깔별 각기 다른 순코스를 참고하여 갈아타면서 시내를 둘러볼 수 있다. 그러나 바쁜 여행자라면 노선 환승에 소모될 시간 고려 필요하다.

GOKL 5가지 노선도

노선 안내지도는 숙소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월-금 엔 6시~23시, 주말과 휴일엔 7시~23시 운행한다.

GOKL 버스 앞면 맨 상단에 (GREEN)  LINE 이 표시되어 있다. 그 아래에 노선별 정차역이 표시된다.

숙소 가까운 PUDU에서 탈 수 있는 퍼플 라인을 타고, 파빌리온-> 부킷 빈탕-> 차이나타운-> KL타워를 순회하는 코스를 먼저 가보기로 한다. 버스에는 각 나라에서 온 다양한 인종의 여행객들이 차창으로 거리 풍경을 내다보고 있다. 대부분 여행자들이었지만 장바구니를 든 현지인들과 퇴근하는 직장인 등 많은 현지인들도 함께 다. 다시 레드라인으로 갈아탔다. KL 센트럴 역-> 국립 모스크-> 메르데카 광장을 지나는  버스로 어 적 들었던 이름 '메르데카'광장에서 내렸다. 광장 한편에는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Sultan Abdul Samad Building
National Textile Museum

말레이시아에 관하여:

주요 민족인 말레이인을 의미하는 'Malay'에 그리스어 접미사로 땅을 의미하는 '-sia'가 붙은 것으로, 싱가포르 주와 보르네오 섬 북부 사라왁, 사바의 연방 가입이 이루어진 1963년 국호를 말레이시아로 고쳤다.     


인구 구성과 다문화 

말레이인이 전체 인구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말레이'라는 말은 이슬람교와 말레이 전통을 따르고, 말레이어로 말하며, 말레이인을 조상으로 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은 약 25%로 두 번째이다. 대부분 19세기에 이민 온 중국인들의 후손으로 모든 일에 근면하며 날카로운 비즈니스 감각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인도계 말레이시아인은 약 10%로 세 주요 민족 중 가장 적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영국 식민지 시절 당시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이주한 남인도 이민자들이 지금의 인도계 말레이시아인들의 선조이다.

오랑 아슬리(Orang Asli)는 말레이 반도에서 거주하는 모든 원주민 민족 집단을 일컫는 일반적인 용어다. 이들은 북부의 네그리토(Negrito), 중부의 세노이(Senoi), 남부의 원시 말레이(Proto-Malay) 등 세 부족으로 나뉘며 자신만의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어부, 농부, 반유목민 등의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처럼 말레이시아는 다민족, 다문화, 다언어 사회이다. 원주민들로부터의 전통문화와 인도네시아로부터 온 말레이인에게서 온 문화, 중국 및 인도 문화의 영향력 등이 합해졌다. 또한 해외 무역이 시작되던 시기의 페르시아, 아랍, 영국 문화의 영향도 더해진다. 정부의 사회계약을 통해 보호받는 소수민족 문화들도 함께 한다.

               

말레이시아의 수립:

수리위자야에서 말레카 왕국, 그리고 말라야에서 말레이시아로  

말레이군도에는 초기 문명화된 여러 왕국이 있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왕국은 말레이계 불교 국가 스리위자야 왕국(Sriwijaya, Srivijaya, 7C–12C 말 혹은 13C 중반)이다. 최전성기에는 말레이 반도에서 수마트라섬과 자바섬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함으로써 동남아에서 거의 유일한 해양대국이었다. 팔렘방을 근거로 10세기 최전성기를 이루다가 점차 쇠퇴해졌다.

마자파힛의 원정으로 1398년에 멸망하였으나, 수리위자야 한 왕족의 후손인 싱아푸라의 마지막 왕 파라메스와라(Parameswara, 1344–1414)는 잔당을 이끌고 말레이 반도 안쪽으로 북상, 라카 술탄국(1400–1511)을 건국했다.

이것이 말레이 최초의 왕국이다. 이 시기부터 말레이시아 지역에 정착된 이슬람 문화는 말레이인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역사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말라카 왕국을 말레이시아 최초의 왕국으로 보기도 한다.


유럽 열강의 식민지를 거치다.

말라카는 중세(15세기) 세계 무역의 중심 항구로서 유럽, 중동, 아시아를 아우르는 무역의 교차점 역할을 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그러자 이를 노린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포르투갈,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의 순으로 피지배국이 되는 아픈 역사를 갖게 된다.

이후 중국과 인도 노동자들이 말레이 반도와 보르네오 지역의 식민지 경제의 필요를 충당하기 위해 이주해 오면서 영국령 말레이시아의 문화적 다양성 증진에 배경이 되었다.

2차 대전을 계기로 일본의 침략을 받기도 했던 이곳은 다시 영국의 탈환으로 되돌아갔지만 1948년 신설된 말라야 연방에 영국은 1957년 독립을 허용한다.     

독립한 말라야 연방은 당시 말레이인이 50%를 '아슬아슬하게 넘기는 수준'이라, 말레이인을 비롯한 원주민의 수를 늘리려고 영토 확장을 꾀한다.

1963년 8월 31일 북부 보르네오의 나머지 영국 식민지와 싱가포르는 독립하였고, 같은 해 9월 16일 이들을 포함하여 연방제의 말레이시아가 정식으로 출범하였다. 그러나 중국계가 압도적인 싱가포르가 큰 문젯거리가 되었다. 이때 싱가포르 총리 리콴유는 "말레이시아인의 말레이시아"를 주장했지만 "말레이인의 말레이시아"를 원하는 말레이시아와는 입장이 달랐다. 결국 2년 뒤 정부는 싱가포르를 쫓아낸다. 이때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는 중국계들이 꽤 많이 싱가포르로 넘어갔기 때문에 말레이시아 정부는 뜻하던 바를 이뤘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와의 관계

인근 국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문화적, 민족적으로도 공통점이 많은 나라다. 말레이의 뿌리로 보기도 하는 수리위자야 왕국은 인도네시아 팔렘방에 근거를 두고 번성했고, 최초의 왕국 말레카를 세운 이도 그 수리위자야 왕족이었다. 그러므로 두 나라 다 말레이인, 또는 말레이 계열의 민족들이 대부분이며 언어도 말레이어를 사용하지만, 서구 열강들의 분단으로 인해 서로 다른 생각과 특징들을 갖게 되었다.

말라야가 1957년 독립한 이후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는 '위대한 인도네시아'를 주장하며 말라야와 함께 대(大)말레이 국가의 건설을 희망한다. 그러나 말라야가 싱가포르, 사라왁, 사바를 합병한 뒤에 '말레이시아'를 건국하려 하자 관계가 틀어져, 위대한 인도네시아 건설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후에 인도네시아는 사바를 무력으로 합병하였고, 이에 말레이시아가 군을 보내 사바를 되찾았다. 현재도 양국 간의 분쟁은 이어지고 있다. 언어도 말레이어 방언이 달리 표준화된 형태로서 1928년 청년단체가 말레이어를 약간 개정하여 만든 것을 인도네시아어로 제정한 것이다.


메르데카 광장

 '메르데카' 광장은 말레이어로 '독립'을 뜻하며,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기념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1957년 8월 31일 자정 말레이시아의 독립이 선포되고 광장의 국기 게양대에 걸려있던 유니언 잭(영국의 국기)을 끌어내리고 잘루르 그밀랑(말레이시아의 국기)을 게양한 광장이다.

 메르데카 광장

영국 식민지 시절 건축물에 둘러싸여 있는 푸른 잔디밭은 8ha가 넘는다. 광장 남쪽의 국기 게양대는 높이가 100m에 달하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기게양대에 걸려 있는 국기가 메르데카 광장의 상징이다.

말레이시아의 독립과 함께 깃발이 게양된 후 독립 기념행사 등 국가의 크고 작은 행사가 이 곳에서 열렸다. 그러나 2003년부터는 이 퍼레이드 역시 새로운 행정 중심지인 푸트라자야로 옮겨 행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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