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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냐짱 4: 아무 데나, 그래서 바호폭포

갈 곳 없는 소나기 속, 버스 옆자리 시드니 자매들 따라 간 바호 폭포

by yo Lee

냐짱의 버스 드라이브


오늘 일정은 섬 투어와 수상 액티비티의 '보트 투어'다.

작년 깟바 섬에서 너무 깊은 바다라 포기했던 스노클링을, 이번엔 성공해 보리란 비장함으로, 좁은 가방 안 비집 수영복을 챙겨 왔다.

근데 새벽 바람소리가 심상치 않아 내다보니, 나뭇가지가 크게 흔들리고 비도 흩뿌린다.

인기척에 눈을 뜬 한국인 여학생이, 어젯밤 예약하러 간 여행사에서, 아침 7시까지 집합하라더라고 알려주는데, 자신은 정작 실신상태다.

간밤 그녀는 너무 늦게 귀소 했었다.

어쩔까? 잠에 빠진 그녀를 일으켜서 투어 앞 장세우는 게 망설여진다.

젊은이의 아침잠이 어떤 건지 모를 바 아니기에.

'스노클링 재도전 접자!'

누군가와 더불어 하기로 했다가, 혼자되면 이처럼 빨리 포기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아예 혼자 출발하는 것이 낫다.

자유여행이건 동네 산책이건...

‘바람 불고 비 오니 투어 포기하자’며 그녀를 편안한 수면으로 돌려보낸다.


아침바다 산책을 마치고 숙소 식당에서 식사까지 마치고 올라왔는데도, 여전히 그녀는 한밤중이다.

퇴실하려니, 이 집 조식 시간 끝나가는 게 맘에 걸린다.

그녀도 오늘 오후에 다른 도시로 이동한다던데, 늦은 아침이라도 먹고 나서면, 일정이 덜 조각 날거란 오지랖 때문이다.


아까 먹고 갔는데 또 샌드위치를 챙겨달란다고, 식당 아줌마가 주인을 소환했다.

'내 옆자리 아가씨 몫'이란 말을 통역해 듣고서야 만들어준 샌드위치를 들고, 방으로 다시 올라갔다.

2층 침대 그녀의 머리맡에 쟁반을 올려주고, 서로 남은 일정 안위를 빌며 이별한다.


버스 드라이브

갑작스러운 일정 공백이다. 내겐 드문 일이다.

무이네행 저녁 8시 야간 버스 탑승까지는 하루가 온전히 남아있다.

여러 코스를 생각해 보다가 가까운 아트센터와 해변 인근의 장소들을 둘러보기로 한다. 아트센터는 화려한 외양 달리 ‘전시물 없다’는 관리인의 심드렁한 답변이고, 길 건너 전시장을 둘러봐도 볼 게 없다.

나짱의 아트센터

‘버스 드라이브나 하자!’

역마살 ‘갑’인 나는 승용차 없던 시절에는 시외버스 타고 돌아다녔다.

벼 익어가는 겨자 색 논, 단풍에 불타는 산사, 벚꽃, 복사꽃으로 호사하는 시골마을, 네온사인보다 더 휘황한 가을 은행나무 가로수 등, 4계절 변화무쌍한 우리네 시골은 정말 아름다.

아직도 초보인 그림은 시작은 일렀던지라 그 시절, 스케치 핑계로 잘도 돌아다녔다.


그리고 국외로 이어진 요즘의 버스, 트램 등 현지 대중교통 드라이브는 자유여행 특권이자 선택의 큰 이유다.

현지인들 사이에 끼어 앉아 주택지를 돌고 그들만의 명소를 찾아보는 것은 유명 관광지 방문보다 기억 유효기간이 길다.


해안을 끼고 가는 시내버스에 올라탄다. 북쪽 해안을 향해 달리는 길은 바다를 배경으로 해안공원, 유독 유럽인이 많은 해수욕장, 잘 조성된 리조트 등을 파노라마로 연출한다.

그러나 너무 짧은 드라이브였다. 해변에서 꺾어 마을로 들어서자 곧 종점이었다.

시내로 돌아가려면 이 버스가 회차할 때 타란다.


내려선 마을 저 끝에 나지막한 능선의 언덕이 있다. 바다와 해안을 전망할 좋은 전망대 임직 한데 버스의 배차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니 가볼 수 없어 아쉽다.

한가롭고 조용한 마을은 햇살마저 청량하다.

大路에 어미 소와 송아지가 제 마음대로 걸어 다니다 외부인을 알아본 듯 고개 돌려 나와 시선을 맞춘다.

마을 대로를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나짱의 소들

길거리에서 반미 샌드위치를 사는데 싼 값치곤 속재료가 다양하기도 하다.

다시 버스에 올라타서 반대 방향의 풍경을 감상한다.

오래된 주택가, 그 사이로 난 골목들, 마을 앞 사당, 새로 개업한 듯한 주택가 카페 등이 시내의 냐짱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시내로 들어오니 소나기가 내린다. 냐짱의 일기는 변화무쌍하다.

"도대체 행선지가 어디예요?" 차장, 갸우뚱

비도 피할 겸, 이번에는 긴 노선의 드라이브를 하려고 마침 도착한 1번 버스로 갈아탔다.

남자 차장이 차비를 받으러 와서 행선지를 묻는다.

“last stop of this bus"

"? ? " 모르겠단 그의 표정.

“I'd like to go the last stop of this bus", "...end stop", "....bus terminal"

아무 단어도 전달이 안 된다.

서로 소통을 포기하고, 그는 얼마의 돈을 받아간다. 그러면서 자꾸만 머리를 갸우뚱한다.

아까처럼 버스 종점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려는데 뭐가 문제인지 궁금한 건 나도 마찬가지.


어제의 뽀나가르탑 정류장을 경유한다. 외국 여성 두 명이 소리쳐 차장에게 행선지를 확인하더니, 올라탄다.

한 명이 내 옆 자리에 앉는다. 눈인사와 함께 마침 꺼내려던 껌 하나를 건네며 말을 붙인다.

그녀들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에서 여행 온 사촌 자매란다. 유럽을 비롯, 동남아를 여행 중이라고.

차장이 그녀들에게 차비를 받으러 와서는, 옆에 앉은 내게 또 묻는다.

이번에는 아예 자신의 폰에다 지도를 띄우고 보여주면서 “여기 가는 거냐?”라고 묻는데 아뿔싸 끼고 있던 도수 없는 선글라스로는 화면을 읽을 수가 없다.

시력 교정 안경을 꺼내는 중에 옆에 있던 시드니 아가씨가 대신 말한다.

“아마 여기 맞을 거예요, 그렇죠? ”

“그렇다” 고 맞장구를 쳤다. 물론 어딘지 모른다.

이젠 그녀들을 뒤쫓아 가면 될 것이었다.

추가 요금을 내란다. 목적지 거리가 늘어난 모양이다.


첨 만난 '시드니 친구 따라 바호 폭포'

바다도 보고 산모퉁이도 돌면서 얼마를 갔을까?

승객의 목적지를 기억하고 있다가 정확히 안내해 주는 베트남 버스 차장들, 내리란다.

정류장도 아닌 자동차 전용도로(Asian Highway 1번) 가장자리에 내려서, 길 건너 바호라고 쓰인 표지를 읽는다. 마을로 들어가려면 횡단을 해야 하는데 건널목이나 지하통로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차량 통행 빈번한 4차선 도로를, 세 여자가 목숨 걸고 뛰어 무단 횡단을 감행하는데,

저 멀리서 다가오던 대형 화물트럭 운전사가 내내 울려대던 경적만으로는 성이 안 차서,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 격하게 소리치며 (아마도 강력한 욕으로 추정) 멀어져 간다.

우리 셋은 동시에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린다.

욕먹고 웃는 여자들은 잠시 전, 함께 겪은 높은 수준 긴장감에 동료애가 싹텄던 듯.


밭 사이로 난 바호 가는 길은 인적도 없고, 마을도 아직 안 보인다.

두 여성은 나를 가운데 세우고 에스코트 대형으로 걷는다.

1992년 짧은 일정으로 여행 갔었던 그녀들의 고향 시드니, 그리고 대학 3학년이라는 동생의 심리학 전공은 내가 대학원 때 맛본 분야라며 공집합을 확장해 간다.

뭐, 그럴 것도 없었다.

다녀온 여행지 얘기가 시작되니, 각자의 기억들이 쏟아져 나와 할말이 넘친다.

영어가 부족한 나를 위해 되풀이하고, 또 천천히 말을 해주니 대화는 끊이지 않는다.

짙은 먹구름은 사라진 지 오래, 햇살 아래 반짝이는 나뭇잎이 청정 시골임을 알린다.

한참 걸어가니 마을이 나타나는데, 여기서 얼마나 더 가야 할지 지 속으로 서서히 걱정이 시작된다.

때맞춰 뒤에서 빈 택시가 온다.

냉큼 올라탔다. 요금 타협이고 뭐고 지금은 일단 내리쬐는 볕을 피해야만 한다.

택시 타니 금세 도착이다.

우리 돈 2천 원 요금은 내가 인심 쓰고, 폭포 매표소 주차장에서 내렸다. 택시 안 에어컨 냉기에 미련이 남는다.

폭포 입구는 작은 호숫가 옆의 조경과 설치물로

지금까지 온 길과는 다르게, 관광지 mode로 급변한다.

(알고 보니 바호폭포는 냐짱에서는 24km 떨어져 있어 주로 택시나 오토바이로 이동.

버스에서 내린 지점부터 매표소까지 약 3.8km.

매표소에서 20여분 걸으면 계곡으로 접어들면서 나타나는 다리. 거기부터는 바위 위를 걸어 폭포에 이르며, 폭포 다이빙으로 유명하다고.)

바호 폭포 매표소 근처

매표소부터 약 2,30분 동안 나무 사이를 걸어 서서히 계곡으로 들어선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서부터는 길이 없고 주로 바위 사이나 위로 걷게 된다.

붉은색으로 표시된 화살표를 따라 바위 위를 오르기 다시 20여분, 그녀들은 내 주위를 벗어나지 않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속도를 맞춰준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올랐으면 이미 도착했을지 모르는데, 내 보조에 맞추느라 진즉부터 '가다 서다'를 반복 중이다.

귀를 기울여 봐도 흐르는 물소리뿐, 떨어지는 폭포 소리는 여전히 들리지 않는다. 앞서 올라가서 폭포가 보이는지 보라고 시킨 것도 벌써 두어 번째다.


나는 이제 숨이 턱까지 차오르며 거친 호흡 소리를 더 이상 감출 수 없다.

그녀들을 보내주자고 마음먹는다.

물론 아까 입구에서부터 먼저 가라고 내내 말했었지만 그녀들은 천천히 걸어 끝까지 같이 가자며 여태껏 동행해 온 것이다.

민폐 부담이 더해져 마음과 몸, 두배로 힘들다.

‘무릎이 너무 아파서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라고 하니 그제야 아쉬워하면서 돌아선다.

그녀들도 높이가 점점 더 높아져 기어오르기 힘들어 보이는 바위들이 나타나자, 권하는 게 무리라고 생각한 거 같다.

인적도 드물고 오르는 길 양 옆 울창한 숲이, 젊은 그녀들에게 위험해 보여서

“무슨 일 생기면 큰소리로 나한테 소리쳐라. 내가 여기서 기다리겠다” 며 그녀들을 올려 보낸다. 무슨 도움이 될까마는 마음만은 이미 그녀들의 보호자가 되어있다.

안타까워하며 돌아 선 그녀들은 그제야 다람쥐처럼 점핑하며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다.


바호 폭포 계곡의 닥터 피시와 함께

그녀들과 헤어지고 계곡 입구, 다리가 있는 평평한 바위로 돌아와 앉았다.

계곡은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백담계곡에 와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양말을 벗고 발을 담그니 작은 물고기들이 몰려온다.

어라! 얘들이 닥터 피시들이다. 콕 콕 찍는 연한 입질이 피곤을 풀어준다.

이름 모를 베트남 시골길을 되돌아가는 부담만 없다면 그렇게 오래 앉아 있고 싶을 만큼 계곡을 가로질러 오는 바람은 마냥 싱그럽고 상쾌하다.

이 순간을 남기고 싶어 나로선 드문 일, 셀카도 찍어둔다.


목적지 없이 버스에 탔다가, 우연히 만난 이 여성들과의 동행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베트남의 깊숙한 이 마을까지 2시간 반여의 동행 길을 빠르지 못한 내 보조에 맞춰 걸어주던 그녀들!

어지간하면 마을 입구 혹은 매표소 입구쯤에서 헤어져서 자기네끼리 갔을법한데 폭포 끝까지 나를 가게 하려고 “잘 걷는다”. “대단하다”를 연발하며 이끌어 주었다.

변변치 못한 내 영어를 알아들으려고 집중하고, 산길에 오르는 길 내내 격려하던 태도가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느낌과는 너무 다르다.

버스에 오르기 전 언니가 정류장에서 피우던 담배꽁초를 길가에 버리는 것을 내다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직장인이란 그녀는 언니답게 내내 진중하고 사려 깊었다.

해맑은 대학생도 똑같이 세세하게 신경을 써준다.

그녀들은 처음부터 방금 헤어질 때까지 내 양편에 나눠 서서 걷는 대형을 바꾸지 않았다.

처음 만난, 동양의 나이 지긋한 나를, 자신들 역시 초행길인 이곳에서 목적지까지 이끌려는 마음들은 한국뿐 아니라 어디서도 이제는 흔치 않을 일이 되었는데.


혼자 돌아오는 길의 동네 개떼

꽤 오랜 시간이 지나니, 더 기다려야 할지 말지 결정장애가 생긴다.

폭포로부터 오를 때와 다른 방향의 하산 길이 있다면, 그녀들이 그 길로 내려갔을 수 있을 터라, 망설이다가 혼자 내려가기로 한다.

오다가 매표소 직원에게 물으니 길은 이쪽 하나라고.


웃고 떠들며 걸었던 길은 혼자 걸으니 훨씬 지루했다. 택시를 타고 거쳐 왔던지라 이렇게 먼 길인지 몰랐다. 무엇보다 동네는 온통 개들 천지였다.

동네를 통과하는 동안 몇 차례나 여기저기서 개가 떼거지로 나타나 내 주위를 빙빙 돌았다.

짖는 개는 다른 동료 개들을 끌어 모으니 두렵고, 둘레만 빙빙 돌며 짖지 않는 개는 더 공격적일까 봐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선글라스도 벗고 모자도 벗어보지만 소용이 없다. 불교 국가답게 놓아기르는 개들은 외지인을 잘도 알아보는 것이었다.

개와 신경전을 벌이는 통에 마을 끝 갈림길에서 아까 들어오던 길과 다른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바로 알아차렸는데도, 되돌아 설 수 없는 것은 직전에 개떼와 전면전을 치른 지점을 되짚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더 길게 우회하는 길을 늦은 오후의 땡볕이 달궈놓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이쪽에는 정류장이 있어서 앉아 기다리니, 오래지 않아 버스가 왔다.


버스 안 현지인들의 시선이 온통 내게 꽂힌다.


한국서부터 계획했던 '보트투어' 일정은 뜻하지 않게 무너지고,

정보 없이 운빨로 채운 하루가,

유난히 붉은 석양 속에 기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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