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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무이네1:판티엣 거리, 친절한 가게 주인 속내?

밤 중의 긴 기다림, 무이네로 돌아갈 로컬버스는 왜 안 오는 거지?

by yo Lee

야간 버스로 밤의 정취를

밤 8시 무이네행 야간 버스는 230km를 달려 자정에 도착 예정이다. 친절한 여행사 직원 덕분에 미리 예약해 둔 두 건의 버스표 티켓팅을 맨 앞자리 ‘royal'석으로 한꺼번에 마쳤다.

어두워지는 거리를 창 너머로 한참이나 지켜본 다음에야, 버스가 복잡한 거리 한 귀퉁이에 간신히 자리를 잡아, 손님을 태우기 시작했다.

출발 전, 남성 차장이 만석인 버스 안을 헤치며 물 한 병, 신발 넣는 비닐봉지, 담요를 승객들에게 나눠준다.

큰 볼륨의 이어폰으로 외국어 공부하던 옆자리 외국인은, 긴 다리를 새우처럼 구부리고 초저녁부터 단잠에 빠져 있다. 동남아 버스 냉방 수준은 나눠준 담요만으론 부족하단 걸 체험한지라, 준비해 온 패딩 점퍼로 온몸을 둘러쌌다. 아열대 여행에 패딩이 등장하는 상황이다.


야간 버스는 나름의 독특한 정취가 있다.

맨 앞자리에 앉으면 정면 차창이 스크린 되어 동영상 모드, 밤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미지의 도시는 어둠 속에서도 여행자의 감각을 깨운다.

깜깜한 저 편에서 버스의 헤드라이트 안으로 빨려 들어오는 나무들,

버스와 함께 달리는 마을 능선 검은 실루엣,

불현듯 나타나 마을 입구임을 신호해 주는 흐릿한 가로등의 점 잇기,

검은 이불자락 덮인 마을 어둠 가운데, 전등불 밝혀 열리는 어느 집의 늦은 잔치마당 등.

배경이 검으니 더 선명하다.


야간 버스


4~5시간 내내 어둠 속으로 빨려들 듯 나아가는 운전사가 졸음과의 일전을 치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살짝 든다.

내 좌석, 맨 앞자리에선 몸만 앞으로 기울이면 운전사에게 껍질 벗겨 껌도 건네고 과자도 건넬 수 있으니,

잠든 승객들 안전을 위한 내 나름의 일조를 침묵 속에서 수행한다.


얼마를 달렸을까?

도열한 야자수가 버스의 전조등에 차례로 자태를 드러내더니,

멀리 보이는 작은 불빛들이 차창에 무늬를 만들며 다가온다.

얼추 목적지에 당도할 시간이다.


고요에 묻힌 무이네 도착이다.

꾸역꾸역 내린 사람들이 버스 옆구리에서 토해내는 가방을 챙기는가 싶더니, 개펄 게들처럼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텅 비어버린 한밤 중 무이네 거리,

다시 바삐 내지르는 버스 뒤꽁무니를 홀로 배웅한다.


자정 도착을 감안하여

예약한 숙소는 정차장에서 일직선으로 도보 13분 거리 게스트하우스로 정했다.

로드뷰로 익힌 거리 풍광은 이 시간, 전혀 쓸모가 없다.

늦은 시간에도 관광객들이 오갈 거란 추측도 틀렸다.

인적 끊긴 거리에서의 13분 이동 이처럼 긴 시간일 줄이야!

다행히 큰 길가에 위치한 숙소는 잘 찾을 수 있었고, 잠에 빠진 주인을 깨워 무사히 입실을 마쳤다.


아침,

뒤척이다가 잠깐 잠들었나 싶었는데, 해도 뜨기 전 시작된 방 옆의 공사소리가 귀를 강타했다.

겨우 한두 시간쯤 잤을까?

냐짱에 이어 이틀 연속으로 잠을 설치고 있다.

어젯밤 영어 안 되는 주인의 제스처가 '옆이 시끄러우니 내일은 위로 방을 옮기라'는 내용임을 이제야 이해한다.


아침부터 방 옮길 준비를 하고 기다려도 영 소식이 없다.

계속 도착하는 손님 맞기에 바빠 거의 정오나 되어서야 어찌어찌해서 2층으로 옮겼다. 같은 구조 같은 크기인데 침대가 한 개 더 있었다. 오전 시간을 방 이사 대기하느라 다 날렸다.

오후로 기운 햇볕이 이미 달궈놓은 무이네 거리를 포기하고, 에어컨 있는 방에서 머뭇거리다가

느지막이 인근 도시 판티엣을 가보고 나선다.


판티엣 시장을 가다.

전통시장 방문은 여행의 메인 코스이다.

금방 와 준 9번 로컬버스에 오르니 해변을 볼 수 있는 창가엔 나이 든 서양 여성이 홀로 앉아있다.

가끔 만나는 이런 분들을 보면서 왜 동양의, 홀로, 여성, 여행자는 드문지 생각하게 된다. 만국 공통어 '영어' 취약 인지, 용기 부족이 더 큰 이유인지 아니면 또 다른?

석양의 해가 빠져 들고 있는 붉디붉은 바다를 향해, 버스는 40여분을 넘기며 달려간다.

옆자리 서양여성이 부스럭대더니, 숙소 바우처를 내밀며 목적지를 지나쳤나 걱정한다. 아직 판티엣 시내로 들어서지 않아 좀 더 가얀다는 내 maps.me 정보는 말하지 않는 게 도와주는 거다. 정확한 것만 도움이 되니까.

내가 건넨 그녀의 바우처를 차장은 영어라 못 읽어내고, 대신 뒷좌석 젊은 현지 여성이 들여다보고 좀 더 가야 한다고 일러준다.

시내에 들어서서 얼마쯤 가다가

출발하려는 버스를 급히 세워, 나는 하차했다.

재래시장 입구임을 뒤늦게 고 부랴부랴 내린 것이다.

그러자 예의 뒷자리 젊은 여성을 비롯, 버스 속의 현지인들이 나를 내다보며 다시 타란 손짓들을 한다.

아까 물었던 옆자리 서양인 호텔 바우처가 내 것인 줄 알고 더 가야 한다는 말인 게다. 내가 손가락으로 시장 가리키는 것을 보고서야 모두들 안도한다.

그새 주춤거리던 버스는 이내 검은 매연가스를 풍풍 내뿜으며 친절한 눈빛을 거두어 시내를 향해 멀어져 간다.


시장은 규모가 컸다. 과일이며 생선 어패류, 각종 농산물 등이 다양하고 풍부하다. 그것만 봐도 눈요기 충분한데, 상상 초월 싼 값이 폭풍 구매욕 일으킨다. 한국과 과일값 만을 비교하자면 여긴 천국이다.

은 안 통해도 젊은 청년의 후한 저울 인심에, 이것저것 주워 담은 과일의 부피와 무게가 내가 짊어질 배낭의 한도를 넘어서버렸다.

사지 못한 해산물들에 미련남아 몇 번 돌아서다가 포기한다.

짐 무게에 고통받을 다리만 좀 고생시키면, 장보기는 대만족이다.


아까 오는 버스 안에서 눈여겨봐 둔 학교 근처의 사람 많은 국숫집을 향해 걷는다. 오늘 저녁 식사는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곳에서 하잔 생각에, 오면서 점찍어 둔 곳이다.

현지인 찾는 잡이 진짜 맛집이란 내 지론은 자주 '옳다'. 국숫집이 있던 동네 좀체 나타나지 않는다. 인근에 학교가 있었기에 쉽게 찾아갈 수 있으리란 예측이 어긋나고 있다. 배낭의 무게가 점차 나를 짓누른다.


버스 같이 기다려 준 친절한 정비소 주인

해는 이미 기울어, 거리는 서서히 불빛 속에 잠겨 든다.

더 걷기에는 무리라 싶어, 판티엣 지역 방송국 건너편의 오토바이 정비소 앞에서 멈춰 섰다.

젊은이들에게 물어야 말이 통할 확률이 높은지라, 정비소 사람들에게 ‘무이네 가는 버스 정류장’이 어디냐고 물으니 서로의 얼굴만 마주 보 반응이 없다.

"무이네! 무이네! "를 한참 외치고서야

주인인 듯한 이가 나서더니

앉아 기다리라며 정비소 앞 길가에 내어놓은 플라스틱 의자를 가리킨다. (현지니까 무이네 아닌 '뮌네'라고 발음도 정정했다. 베트남 아닌 비엣남처럼)

짐 내려놓고 앉아 쉴 수 있으니, 주인의 배려가 크게 고맙다.

힘든 다리가 회복될 정도로 시간이 상당히 흘러갔다. 아까 무이네 출발 전 들렀던 여행사에서는 버스가 자주 다닌다고 했었다. 근데 교통사고와 같은 불상사를 가정하고라도 1시간여를 넘기는 배차시간은 예사롭지 않은 상황이다.

건너편으로 진즉에 지나 간 무이네 發, 내가 타고 온 9번 붉은색 로컬버스가 지나가는 걸 봤는데 되돌아 나오질 않는 거다.

드디어 근처 종업원들이 문을 닫고 오토바이로 퇴근하기 시작한다.

아직 8시경이지만 낯선 타지의 밤거리에서 혼자 버스를 기다리자니 점점 위축된다.

maps. me로 본 숙소까지의 거리는 14km.

택시를 이용할만한 거리지만 이런 밤 시간에 택시는 싫다.

오토바이 택시 또한 마뜩잖은 교통수단이다. 만일의 불상사 대비, 내 여행자 보험으로는 오토바이 택시로 인한 상해 같은 건 포함하고 있지 않을 터였다.

젊은 정비소 주인이 내 옆에 서서 같이 버스를 기다려준다.

그런데 아까부터 빈번히 지나가는 1번 흰색 버스 행선지 표시에 무이네가 있다.

“이 버스도 무이내 가는 거 아니냐?”라고 물으니 주인이 저건 타면 안 된단다.

그사이 1번 버스는 또 지나간다. 내가 본 블로그에서 9번 붉은색 버스만 쓰여있었다.

1번 버스를 탔다가 무이네의 다른 시골마을 외진 곳에 나를 내려놓기라도 하면 밤 시간에 되돌아 나오기는 더 어려울 것이기도 하거니와, 친절한 이 주인 말을 '절대로' 믿기로 한다.

정비소까지 문 닫으면 어두운 곳에서 혼자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데, 혹시 나 때문에 가게 닫는 시간을 지연하는가 싶으니, 주인이 더없이 고맙고도 미안하다.


밤의 세움 드라이브

시간은 자꾸 흐르고 나는 초조하다.

언제부터 내 뒤에 있었는지 모르는 한 오토바이 운전사가 세움(오토바이 택시)을 권한다.

정비소 문 닫도록 버스 기다리기를 그만 멈춰야겠다.

오토바이 운전사와 가격을 협상한다.

아무래도 베트남 교통요금 수준치고는 석연치 않은 액수다. 이 밤에 홀로 여행자란 약점으로 바가지를 쓰고 싶지는 않다. 폰을 번갈아 주고받으며 금액 협상을 끝낸다.

'오토바이를 천천히 운전할 것'과 '나에게도 헬멧을 착용시켜 주는 조건' 추가해서.

주인에게 진심 감사를 표하며 짐을 오토바이에 싣는다.

그리고 건네받은 헬멧를 쓰려다 문득, 베트남은 물론 태국에서도 오토바이 운전사들은 헬멧을 한 개밖에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 한 개를 운전사가 착용하던 게 떠올랐다.

나보다 훨씬 오래 살아야 할 젊은 그의 헬멧을 내가 쓰는 건 극히 비합리적이다.

마음을 바꿔, 당신이 쓰라고 하니 부득부득 나더러 쓰라고 양보한다.

러더니 정비소 안에 들어가서 헬멧을 하나 더 가져와, 자신도 쓴다.

양보할 이유가 사라졌으니 나도 처음 써보는 헬멧을 머리에 둘러맨다.

오토바이 택시는, 밤의 해안가를 약속한 '부드러운 속도'로 나아간다.

휘황한 빛 발하는 무이네 해변가 식당은 관광객들 붐빈다.


밤바람 싱그러운 오토바이 드라이브가, 좀 전의 불안을 금세 털어낸다.


"아름다운 밤이에요."

지금 내게 딱 적합한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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