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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14. 자다르 2 :도나트성당, 아나스타샤성당

프란치스코 수도원과 나로드니 광장,태양에 인사 육지문을 돌아보며

by yo Lee

왼쪽 하단 하늘색 원이 '태양에 인사' 그 옆으로 바다오르간 계단에 사람들이 앉아있다.(ZADAR)
우리의 이동 코스(goole)

방문지들이 쉬로카 거리를 중심으로 거의 다 붙어있고 구시가지 규모 작아 모두 도보 이동 가능하다.

1. 성 마리 교회(성모의 교회): 세인트 베네딕토 메리 수도원

2. 로마시대 포럼 인근 수치 기둥(Pillar of shame, Stup seama)

3. 도나트 대성당

4. 성 아나스타샤 성당과 종루

5. 건강 성모 성당

6. 프란치스코 수도원

7. 성 엘리야 정교회

8. 나로드니 광장

9. 바다의 문과 성벽

10. 성 크로소 고노 성당 (St. Chrysogonus Church/ Crkva sv. Krševana)과 성 베드로 성당

★ 바다 오르간과 '태양에 인사'

11. 자다르 대학교

12. 스피리돈 브르시나 동상 (Spiridon Brusina:1845-1909):대학교 앞

13. 육지 문

14. 5개의 우물 광장과 주변 유적들

15. 엘레나 마디옙카 여왕 공원 (Perivoj kraljice Jelene Madijevke/ Queen Jelena Madijevka Park)


3. 도나트(도나투스: Crkva sv. Donata) 대성당


100년 전까지만 해도 땅속에 묻혀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로마광장을 중심으로 역사유적이 산재한 이 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원통형 건축물이 도나트 성당이다. 로마광장의 폐허 위에 9세기에 세워졌으며 자다르에서 가장 오래 된 로마네스크 건축물로 유럽 최대의 성당 가운데 하나였다고 한다.

매표 직원만 휑뎅그렁하게 자리를 지키는 출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내부는 건물 가장자리를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석벽으로 구분되어 있고 안쪽의 원통형 공간은 맨 위층만 제외하고 텅 비어있다. 흔히 성당이란 명칭으로 상상되는 모습과 거리가 멀고 계단과 원통형 내부의 이중 구조가 처음 접하는 모습이다.

이 원통형의 독특한 구조는 당시 자다르가 샤를마뉴대제 시대(747년 ~ 814년: 카롤링거 왕조 프랑크 왕국의 2대 국왕)의 영역이어서 독일 트리에 대성당과 똑같이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란다.


처음에는 성 삼위일체 성당이라고 불렸으나 9세기에 주교 Donat가 성당을 세웠기 때문에 16세기에 이 도나트의 업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현재의 이름인 성 도나트 (St. Donat) 성당으로 바뀌었다. 성당 옆에는 11세기부터 있었던 주교 궁전이 있다.

로마시대부터 르네상스까지 이 건물은 여러 번 다시 지어졌다.

현재의 모습이 되기 전 마지막으로 다시 만든 것은 15세기 이다. 지금의 외관은 1830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로마광장이 무너진 후 남은 그 유물들을 재료삼아 성당을 건축하였는데 내부구조물도 부서진 석재를 이용하여 만들어졌다. 맨 위층은 여성 전용공간으로 사용했었다고 한다.


도나투스 성당과 로마 포럼의 석주들
로마 포럼 발굴장소(Zadar)
성 도나투스 성당 내부
건물 중앙이 뚫려있다.
성당의 맨 위층 지붕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는 기념 음악회가 열렸고 1798년 이후로는 성당으로 사용하지는 않으나, 이중구조의 건물내부의 공명효과로 음향 효과가 뛰어나 요즘에도 연주회가 개최된다고.

이 곳에서 음악회가 열리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아무 장식 없는 내부의 건축구조가 오랜 세월 간직된 기운과 예술적 에너지와 만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성 싶다.

시기가 맞아 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중간 높이에 철창살로 만들어진 개구부 너머로 로마 포럼이 내다보인다. 여러 나라의 관광객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광장의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있다. 동남아 지역의 사찰관광지를 돌아보는 관광객들의 모습과 갑자기 대비된다.


4. 성 아나스타샤(스토시야: Katedrala sv. Stosˇije) 성당


성 아나스타샤는 현 세르비아 지역에서 순교한 여성으로 동방에서 역병 치료약을 가져와 사람들을 치료해주었다고 한다.

이 성녀는 두 교황에 의해 존경이 표해졌다고 하는데 1177년 그녀의 무덤을 방문한 알랙산더 3세와

2003년 이 성당 앞에서 절을 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이다.


성당은 두 차례에 걸쳐 지어졌다.

건축의 시작은 4 세기와 5 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기독교 성당 부지에 세워진 오래된 건물은, 12 세기와 13 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달마티아 지역에서 가장 큰 성당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사도 성 베드로에게 헌정되었었다.

그러다가 9 세기 초에 스토시야라고 불리는 순교자의 유물을 받게 되자, 주교 도나트는 그 이름을 따서 현재의 이름으로 명명하였다.

지하에는 도나타 주교가 헌정한 성 아나스타샤의 대리석 석관을 비롯한 그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꼭 보라던 것은 정면에서 한 눈에 들어오는 2개의 동그란 장미창과 3개의 회랑이다.

장미창은 주로 고딕양식의 성당에서 서쪽, 북쪽, 남쪽 등에 뚫으며, 구약성경의 예언자 에제키엘이 본 구세주를 상징하는 창이라고 한다.


성당 바로 앞에 야외카페 테이블들이 자리 잡고 있다.

크로아티아의 유적은 현지인들의 생활 속에서 공존해나감을 다시 확인한다.

15세기에 지어진 옆 종탑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 자다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고.


성당의 종루
성당 내부((Goole))
성당 정문 윗부분((Goole))

5. 성모 건강 성당 (Church of Our Lady of Health/Crkva Gospe od zdravlja)

아나스타샤 성당을 지나 조금 더 걸으면 작은 성당이 보인다.

18세기에 건설된 아주 작은 성당으로, 15세기 크로아티아 화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성당 가는 길의 예전 모습. 쉬로카 골목은 같으나 건물들은 파괴되어 변했다
건강 성모 성당의 종탑
성모 건강 성당 내부 (Zadar)

6. 프란치스코 수도원과 성당

구시가지의 북쪽 끝을 왼쪽으로 돌아들면 수도원이 나타난다. 성 프란치스코 수도원과 성당이다. 공사 중이라 가름막이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을 뿐 아무도 없다.

적막한 수도원에 들어서니 몇 백 년의 세월에 오갔을 많은 성직자, 수도자들 그리고 그들의그레고리안 성가가 그윽하게 울려 퍼질 것 같은 상상이 왕성해진다.

1283년부터 있어온 성 프란치스코 수도원과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가장 오래된 달마티안 교회이다.

1358년에 베네치아 공화국과 안주의 헝가리-크로아티아 왕 루도 비치1세 (혹은 러요시 1세 :1342-1381년 나폴리 왕국을 다스리던 앙주왕가의 카로이 아들. AD 천년 이래 헝가리를 통치해온 아르파드 왕가의 대가 끊기자 헝가리 왕위를 앙주 왕가가 이어받음) 사이의 자다르 평화 조약이 이곳 성물안치소에서 조인되었다.

헝가리 최전성기를 이룬 루도 비치 1세는 오늘날의 헝가리 전역, 폴란드 대부분, 루마니아의 절반, 세르비아 북부(베오그라드 포함),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전역, 심지어 오스트리아의 일부까지 지배하고 있었다. 크로아티아는 1409년 달마티아와 함께 자다르가 10 만 ducats의 가격으로 베니스 공화국에 판매 될 때까지 헝가리의 지배하에 있었다.

이 수도원은 또한 14세기 설립된 최초의 크로아티아 대학인 자다르 대학의 전신, 프란치스코 학파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성 프란치스코 교회는 고딕 양식의 수도원 교회의 한 유형으로, 여러 예술품이 있으며, 그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은 12 세기의 채색한 나무 십자가이다.

교회 남쪽, 1556년에 도서관과 함께 건축 된 르네상스 법원이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수도원 내부
성물안치소((Goole))
12세기 십자가((Goole))
12세기 채색 십자가 안내판
프란치스코 성당 내부(goole)

7. 동방 정교회 엘리야 성당(crkva sv. Illije/ St. Elias's Chun)

예언자 세인트 엘리야의 세르비아 정교회라고도 한다. 자다르의 선지자 세인트 엘리야 교회는 16세기에 세워진 같은 이름의 중세 교회 자리에 서있다.

16세기 자다르 귀족이 망명한 정교도 그리스인들을 위해 여기 원래 있던 가톨릭 성당을 정교회 성당으로 사용하도록 했던 게 시초라고 한다. 이후 세르비아인들이 자다르에 점점 더 많아지면서 정교회 성당으로 자리 잡았다.

18세기에 무너진 그 정교회 성당을 다시 지으면서, 당시 달마티아를 지배했던 후기 바로크 양식으로 짓게 되어서, 정교회의 전형적 모형이 아닌 가톨릭 성당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성당은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의 풍부한 아이콘을 비롯, 전례 물, 십자가, 교회 서적, 원고 등 많은 종교적 예술 소장품을 전시한다고.

동방 졍교회 내부(Goole)
(goole)

자다르의 바다

교회 앞에서 잠깐 쉬어가기로 한다.

바로 앞에서 넘실거리는 바다색이 무척 푸르다.

도시 행사가 예정되어 있는지 여기저기 장식 설치물과 화분 배치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인다.

자다르는 앞바다의 풍광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40여개의 섬이 산재한 코르나티제도가 많은 문학작품에 등장할 정도로 아름답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12야'의 무대도 코르나티제도라고 한다. 잠시 후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저무는 석양과 태양에 인사를 볼 것이므로 다시 동쪽의 나로드니 광장으로 향한다.


<자다르 바닷가 호텔의 옛모습과 오늘날 >

Zadar 홈피
Zadar 홈피
Zadar 홈피



구시가지 중심 도로 쉬로카

자다르는 스플리트보다 먼저 세워진 고대도시로 긴 로마시대 직선도로 쉬로카가 있다.

이 길을 따라 유적지를 다 둘러 볼 수 있는 일자로 뻗은 중심도로이다. 이태리어로는 칼레라가 (Kalelarga) 라고 하는데 둘 다 ‘넓은 길’이란 뜻이란다.

예전 사진을 보니 그 말이 그대로 실감이 난다. 고풍스런 유럽형 건물들이 늘어선 길은 로마시대부터 깔려있었다는 대리석으로 이 도시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켜주는 멋들어진 거리였었다고. 그러나 2차 대전과 근세의 독립전쟁으로 인해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사진에 있는 아름다운 건물들은 보이지 않고 밋밋한 건물 벽만이 쉬로카를 연결하고 있음이 무척 안타깝다.


(Zadar)
( Zadar)
(Zadar)

8. 나로드니 광장 (Narodni Trg)

쉬로카를 걸어 공연 포스터가 붙어있는 극장을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로드니 광장이 나타난다. 중세 때 생긴 이 광장은 대광장(Platea Magna)으로 불리다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민중" 혹은 “군인"이라는 의미의 '나로드니 광장으로 불리운다.

도시마다 같은 이름의 광장이 있는 것은 바로 이 ‘시민광장’이란 뜻에 연유한 듯.

로마시대 포럼이었던 이 곳은 중세부터 현재까지 도시 행정의 중심지로 기능하는 곳이다.

‘바다의 문’을 제작한 작가 Michele Sanmicheli에 의해 1562년에 세워진 르네상스 양식의 경비병이 주둔했던 망루인 도시초소(Gradska straža)가 있었다.

19세기에 이 초소 돌담과 대포구멍이 있는 난간을 둘러서 시계탑을 세웠다고 한다. 현재는 국립박물관의 Ethnographic Section소장으로 민족의상, 직물, 보석류 등의 다양한 문화재를 전시하는 민속학 박물관으로 사용된다.

광장 남쪽에는 도시의 로지아(Gradska loža. Loggia:한 면 혹은 그 이상의 벽이 없는 건축물의 방이나 복도)가 있다. 13세기에 완공되어 1565년 역시 Michele Sanmicheli에 의해 재건되었지만 2차 대전 때 완전히 파괴된 것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정치적인 목적의 도시집회소, 법원 도서관 등으로 사용되던 이 건물은 이제 각종 전시관으로 사용된다.

자다르 시청 건물은 원래 Pedrini 궁전이 자리잡고 있던 곳인데 이탈리아 통치기간 중 파시즘 정권에 의해 파괴되어 1935년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광장 주변으로 관광안내소, 카페, 레스토랑 등이 위치해 있어서 넓지 않은 광장은 역사를 간직한 건축물, 다양한 건축 양식으로 둘러싸여 있다.

도시 최초의 카페가 생겼단 유래에 맞게 다국적 관광객들이 공사 중 광장의 부산함에도 불구하고 카페에 앉아있기도 하고 주변을 카메라에 담으며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비록 현재의 시각으로는 광장이 넓어 뵈지 않지만 주변의 건물들이 고풍스럽고 유서 깊은 분위기를 풍기며 서로 조회를 이루고 있다.


자다르 관광청 홈페이지에 있는 옛 사진이나 그림 속의 자다르 구시가지 풍경들이 흥미를 끈다.

Zara로 표기로 보아 이탈리아 지배시절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시계탑


예전 나로드니 광장(ZADAR)
위에서 본 나로드니 광장 (Goole)
나로드니 광장 (Goole) 오른쪽 시청사
도시 로지아(goole)

(ZADAR):자다르 관광청 홈페이지 발췌 사진, (Goole): 구글지도 스트리트 뷰를 게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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