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 Lee Nov 11. 2020

크로#22.오미스 험한 바위산, 외계인 듯한 해적요새터

부실한 나 이끌어 험한 돌산 완주케한 3인4각 찐동반자 쉽

해적의 요새 마을 오미스로 (Omiš )

오미스는 스플리트에서 남동쪽으로 25km 떨어진 곳으로, 남쪽 두브로브니크행 버스의 경유지이다.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지질과 세티나강의 침식으로 인한 기괴한 형상의 바위산과

바닷가 모래사장으로 유명한 이곳은 13~15세기에 해적의 근거지였다고 한다.

시내로 접어들자, 버스 전면 유리창 가득 들어오는 돌산은 가히 압도적이다.

< 차창에 비친 오미스의 산 >

버스 창에 비친 산의 위용


진한 회색 암석 덩어리 틈새로 듬성듬성 키 낮은 관목이 얼굴을 내밀고,

큰 돌산 사이로 흘러나오는 세티나(Cetina )강이 아드리아해로 나아가는 어귀에 마을이 자리한다.

세티나 강이 흘러나오는 강 어귀

우리를 내려 준 버스는 깎아지른 바위산 중턱 길 위로 올라서,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도로로 진입하는 듯하다. 크로아티아 남부로 가는 길은 이렇게 산중턱 길 따라 바다를 보며 내쳐 달리게 된다.


오미스 마을 풍경들

해안공원을 지나 마을로 접어드는 중간에 각종 스포츠 관광 홍보 사진 게시판이 서있다.

기묘하게 생긴 암벽 투성이 지형으로 인해 록 클라이밍, 거칠고 굴곡이 심한 세티나강 래프팅, 바다에서 보트 타기 등으로 나름 유럽에서도 알려진 액티비티 지역이라고 한다. 마을 앞 바다, 아드리아해에 흐바르 섬이나 브라치 섬이 떠있다. 물론 오가는 선박은 스플리트에서 출발하지만.


동행자 두 사람이 요새를 오른다고 한다.

마을 뒤편, 회색 벽돌로 지어진 요새의 모양이 보인다. 벌써 오른 사람들  머리 보인다.

그다지 높아 뵈지는 않지만 나는 오르기를 포기하고 그늘이나 공원에서 두 사람을 기다릴 작정으로 장소를 물색한다.

몇 년 전에 무릎인대가 찢어진 이후 관절염 진단을 받은 터라 건강상태가 여의치 않다. 

연골이 찢어질 당시,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의 강도도 대단했지만 이후 두달 정도 보행을 하지 못했었다.

마음으로야 당연히 오르고 싶지만 문제가 생기면 2인 3각 경주마냥, 공동 운명체인 여행길 동행들에게 치게 될 민폐가정조차 하고 싶지 않다.

러니  패키지 여행이던 자유여행에서,  코스가 긴 계단 오르기나 가파른 산길 오르기를  오늘처럼 자진 반납하곤 한다.

일행을 밑에서 기다리자면 때론 서글퍼지지만 내 건강의 현주소를 애써 받아들이는 중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자꾸 强勸한다. 같이 요새에 안 올라가면 자기들도 갈 수 없다고 한다. 한번 찢어진 연골은 이미 약해져 있기 때문에 또 파열되기 쉽다는 의사의 진단을 전해도 막무가내다. 천천히 오르도록 자기네가 속도를 맞출 테니까 시도해 보자고 조른다.

마냥 졸라대니 점차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결국 조금 오르는 체하다가 중간에서 내려 올 요량으로 일단 합류한다.

설상가상, 한참 오르다 알게 된 것은 아까 올려다본 요새는 13세기에 지어진 미라벨라 요새이고 우리가 목적하는 곳은 포르티차 요새(Tvrđava Starigrad-Fortica)라고 하는데 훨씬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이다. 휘날리는 국기만 보일뿐 꼭대기는 잘 뵈지도 않는다.

큰일이다.


산자락 아래 오미스 거리
깃발이 있는 곳이 미라벨라 요새
오미스 거리
오미스 해변 공원
오미스 항
오미스 앞바다 아드리아해

요새 오길의 풍광

순전히 돌덩어리 사이를 골라 딛고 올라가는 길인데 중간에 돌아서 내려온대도 문제다.

무릎 관절은 몸의 하중을 더 집중적으로 받게 되는 하산길이 더 나쁘다는 데 걱정이 구르는 눈덩이가 되어간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얼마나 올랐을까, 내려다 뵈는 해안선 풍광이 불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탄성을 자아낸다.

좁다란 산길 따라 붉은 지붕 집들이 줄지어 늘어서 바다를 면해있는 풍경이 멋지다.

그러니 버스 안에서 바라본 앞면의 짙은 회색 바위산에 일차 놀라고,

산 중턱에 자리한 마을들과 해안 풍경에 재차 놀란다.

다음은 요새로 오르며 본 풍경들이다.


돌산 틈바구니에 피어난 꽃들
산 중턱에 나있는 두브로브니크 가는 도로
요새 오르는 길에서 내려다 본 마을

세상은 실로 다양한 풍경이 있다는 것을 거듭 실감한다.

다시 얼마나 올랐을까, 마을 쪽에서 산책 차림으로 올라오는 한 현지 주민 여성이 다가온다.

성큼성큼 걷는 폼이 아마 매일의 산책 코스인가 보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가벼운 산책에 불과한 것을 지금 나는 중도 포기하느냐 마느냐의 일대 결단을 고려중인 상황에 풀이 죽는다.

마저 끝까지 올라가 보기로 마음을 다잡아본다.

그로부터 무려 40분은 더 갔을 성싶다.      


드디어 요새!

가파른 돌길이 점차 완만해지면서 저만치 성 모양의 요새가 나타난다.

드디어 비오코보 정상에 오른 것이다.

해적들의 요새라고도 하고 혹은 오스만 터키 침공에 대비 요새라고도 한다.

해안선을 따라 휘어지며 돌산과 마을이 이루는 아름다운 풍경을 가쁜 쉼을 몰아쉬며 내려다본다.

아까 오르던 그 여성은 한가롭게 바위에 기대어있다. 말이 안 통해서 서로 웃음만 교환하며 사진을 남긴다.

그녀가 오던 길을 되돌아 떠나고 나니 이 요새에는 우리 세 사람만이 남았다.

관광 철에는 매점으로 활용된 듯 한 작은 건물, 바다 쪽으로 나있는 사각 포문, 계단 타고 오른 맨 꼭대기엔 감옥 혹은 경비초소 같은 음습한 공간 등이 있다.

오래된 돌 틈 사이를 뚫고 피어난 야생화는 거친 회색 돌 벽과 대비되어 황홀한 보라 색감으로 청초함을 한껏 뿜어내고 있다.

꼭대기에서 만난 요새
요새
올려다 본 요새 외벽
요새의 꼭대기로 오르는 계단
매점
절벽 위의 문
세티나 강과 아드리아해와 만나는 곳
요새 아래 절벽


한바퀴 둘러보자니 경탄을 금치 못한 서남쪽 해안가 풍경과는 완전히 다른 풍광이 반대편에 전개된다.

외계가 이런 모습 아닐지 싶은 황량한 회색 돌덩이 산이 버티고 있다. 사진으로도 본  없 큰 바위 덩어리가 통째로 산이 된 듯한 형상이다.

직벽으로 마주한 돌덩이 산 그 사이로 흐르는 세티나 강변 따라 이어진 마을 풍경이 얼핏 보인다.

바위 위에 기어올라보니 그제야 간신히 돌산 틈새의 집 몇 채와 강을 쪼끔 볼 수 있을 정도로 협곡을 이루고 있다. 마치 지구가 아닌 다른 세계로 온 것 같은 착각을 주는 이 크로아티아 산악 풍경은 한국인 우리에겐 생경하기만 하다.

아까 파랗던 하늘이 온통 회색 구름이 덮이고 바람까지 부니 나무 없어 황량하고 기괴한 큰 덩어리 돌산 마주하고 있음에 중압감이 든다.

요새 앞에서 본 건너편 산
산에서 내려다 본 강줄기

몰려오는 회색 구름이 점차 짙어지니 내려갈 차비를 한다. 아까 오던 방향과 반대로 내려가자는데 길이 연결될까 싶을 정도로 바위 위를 아슬아슬하게 내려가는 경로다.

결국은 아예 앉아 주저앉아서 미끄럼 타듯 엉덩이로 내려와얄 만큼 급한 경사에다, 부서진 바위 조각들이 베어링이 되어 미끌거리니 여러번 고꾸라질 위험을 넘긴다.

오르기보다 내려가는 시간이 빠른 법인데 그런 아량을 전혀 베풀지 않는 코스다.

마을에 도달할 길과 과연 연결될지를 의심하면서 아래쪽을 살펴보려 해도 계곡 중간부터는 키 큰 나무가 자라 있어 길이 가늠되지 않는다.


드디어 내려가는 길에 들어섰다 싶은데도 여전히 경사가 져서 주르륵 미끄러지며 엉덩방아를 세명이 번갈아가며 고 있다. 바지 엉덩이는 흙투성이가 되었고 다리는 계속 힘을 준 탓에 후들후들 떨리기까지 한다.

거의 다 내려왔나 싶을 때쯤 아래쪽에서 배낭족 젊은 서양인 커플이 올라오다가 꼭대기를 가리키며 이 길이 맞는지 묻는다.

‘맞다’고 확신을 준다. 비록 우리는 앉은뱅이로 내려온 길일지라도 저들은 당연히 올라갈 수 있을 것이므로.

더하여 멋진 곳이라며 격려사도 잊지 않고 얹는다.      


무사히 내려오니 인근에 커다란 주차장이 있고 마을 곁을 흐르는 세티나 강가에는 아름다운 모양의 보트들이 매어있다.

바위산에 뚫린 터널로부터 자동차들이 달려 나온다.      

후들거리는 걸음으로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린다.

스플리트로 가는 버스가 자주 온다는 주민의 안내를 믿기로 한다.

한숨 돌리고 다시 바라보니 포트리차 요새가 까마득한 높이로 보인다. 저 돌산을 정복?했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다리에 문제가 생긴 3년래 산이라고는 오를 엄두도 못 냈다.

기대하지 못한 큰 성취감은 옆에서 귀찮게 권유한 두 사람 덕분이다.

그러나 내 등산은 용기가 아닌 만용이었음을 두 사람은 모를게다.


회색 하늘 아래 아드리아해는 음산한 색깔로 변했고 커다란 회색 기암괴석 돌덩어리를 병풍 삼아 누워있는 마을도 밤의 침묵을 준비한다. 두껍게 드리워진 구름으로 일몰은 볼 수 없지만 오래도록 애정을 가지고 기억될 이곳의 날 저무는 풍경을 파노라마로 눈과 마음에 담는다.   


오른쪽 도로 맨 끝에 우리가 산에서 내려온 길이 닿아있다.


밤의 페리스틸 광장 카페의 한국음악 연주  

숙소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우리는 디오클레티안 궁전으로 밤나들이를 갔다. 도착 첫날 구시가지 좁은 골목의 숙소 찾기는 수고스러웠지만, 이처럼 마실 가듯 늦은 시간 관광이 용이하기 때문에 선호 지역이 아니겠는가.

밤에도 여전히 관광객들이 붐빈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대성당 앞 안뜰 페리스틸 광장의 룩소르 카페 ‘방석 차지’를 선택한다. 주문을 받는 종업원도 어느새 한국인임을 눈치챘는지 한국말로 물어본다.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가수는 한국 노래도 불러줘서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우리 국민이 요즘 한 마음으로 단합되는 경우는 국제경기와 외국에서 듣는 한국 노래에 손뼉 칠 때나 아닐지.

다양한 가치는 바람직하나 극단적, 편향주장으로 반목하는 것은 사회적 가치 합일의 의의를 간과한 이기심의 소산에 불과하단게 내 생각이다.      


영화에서나 보던 수많은 순교자들의 극단적인 생의 종말과,

가족에게 몰아닥친 참사를 막아내지 못하고 말년을 보냈을 황제의 마음과,

이후 오랜 세월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의 흥망사를 고스란히 지켜보았을

이 궁정 건물 곳곳에 스며있을 질곡의 세월을 유추하자니,

어두운 밤 불빛을 등지고 노래하는 가수의 음성에도 깊은 울림이 느껴진다.

 

여행자에게 진한 감상을 우러나게 하는 1700년 된 고성 터에서 4월의 봄밤이 익어가고 있다.


페리스틸 광장 공연 장면( 크로아티아아 관광청 자료 )

페리스탈 굉장의 야경



매거진의 이전글 크로#21. 스플4: 메슈트로비치 갤러리에서 만난 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