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마리일까?(1)

글쎄 '엄청 많이'가 대체 얼마큼이냐고!

by MMQ

살다보면 도무지 감당할 길 없는 어마어마한 행운이 들이닥칠 때가 있습니다. 특별한 조짐이 있거나 모 유명 만화에 나오는 도둑처럼 예고장을 보내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한 여름에 우박 맞듯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까 제 이야기는요, 스텔라가 재수 없게 암초에 걸렸구나 하고 낑낑거리며 들어 올린 그물에 평소의 열 배, 아니 스무 배는 넘는 물고기들이 걸려있었단 거죠.


촤라라라락 그물을 끌어올릴 때마다 한 뭉텅이씩 물고기가 쏟아지는데, 탱크를 채우고도 남아 갑판 위까지 그득그득 쌓여서 스텔라의 배는 은빛 아이싱을 올린 거대한 컵케이크처럼 보였습니다. 시큰시큰한 생선 비린내만 아니었다면 지나가던 거인이 이게 웬 떡이냐 하고 한 입에 집어 삼켰을지도 모릅니다. 그럼 이날 스텔라에게 일어난 일은 엄청난 행운이 아니라 끔찍한 불운이 됐겠죠.


하여간 스텔라는 생전 잡아본 적 없는 어마어마한 양의 물고기들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집에 있던 수조들로는 턱도 없어서 집채만 한 욕조를 세 개나 사와야 했다니까요. 욕조를 판 사람이 바다 건너 덩치가 산만한 뭉클리키아족 전용 욕조를 만드는 장인이었으니 망정이지, 평범한 욕조 장인이었음 유리 욕조, 대리석 욕조, 플라스틱 욕조 할 것 없이 스무 개씩은 샀어야 됐을 겁니다.


스텔라는 보이는 사람마다 붙들고 자랑을 했습니다. 그런데 자랑을 할 때마다 자꾸 똑같은 대화가 반복되지 않겠어요?


“나 오늘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를 잡았어!”


“몇 마리나 잡았는데?”


“엄청 엄청 많이 잡았어!”


“그러니까 몇 마리나 잡았냐고.”


“글쎄 엄청 엄청 엄청 많이 잡았대도!”


“아니 그러니까 그 ‘엄청 엄청 엄청’이 대체 몇 마리냐니까!”


아휴 속 터져서 원! 뭉클리키아족이 쓰는 커다란 욕조를 세 개나 가득 채웠다고 말을 해줘도 뭉클리키아족이 어디 사는 누구냐고 따지니, 이래서 어디 자랑이나 하겠습니까. 기분만 망치고 돌아온 스텔라는 자기가 잡은 물고기가 몇 마린지 세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물고기 생김새가 다 거기서 거기니까요. 지느러미와 꼬리 크기만 살짝살짝 다른 놈들을 무슨 수로 구분합니까?


물론 물고기들끼리야 서로 알아보는 데 무리가 없을 겁니다. 쟤는 날쎈돌이고, 쟤는 은빛 아가미네 아흔 둘째고, 쟤는 낚시꾼에게서 세 번이나 도망친 ‘위대한 블루’고. 그러나 우리들 눈엔 다 똑같은 물고기일 뿐이죠. 아마 물고기들 눈엔 우리가 그놈이 그놈처럼 보일 겁니다. 지느러미도 없고 꼬리도 없는 못생긴 물고기들이라 흉볼지도 몰라요.


물고기들이 사람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일렬로 세워 한 마리씩 번호를 외치게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설사 물고기들이 스텔라의 말을 알아듣더라도 그 넓고 자유로운 바다에서 좁고 답답한 욕조로 자기들을 납치해온 사람 말을 뭐가 예쁘다고 들어주겠어요?


주변에 도와 달라 하기도 애매하지요. 이미 몇몇은 '엄청 많은 물고기'가 얼마큼인지 스텔라와 한바탕 입씨름을 했던 터라 부탁하기가 영 껄끄러웠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많은 물고기를 잡는 게 어디 흔한 일인가요? 샘이 나서 일부러 숫자를 틀리게 세주면 어떡해요?


하는 수 없이 스텔라는 혼자서 일일이 물고기를 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놈이 저놈 같고 저놈이 그놈 같고. 판에 찍어낸 듯 비슷비슷한 놈들이 그 커다란 욕조 속을 노련한 스키선수처럼 쭉쭉 미끄러지는데, 세면 셀수록 이건 정말이지 못할 짓이란 확신만 강해졌습니다.


'한번 센 물고기를 알아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 스텔라는 이윽고 한 가지 꾀를 냈습니다. 스텔라는 그 길로 나가 빨간 동그라미 스티커를 잔뜩 사왔습니다. 그리곤 물고기를 셀 때마다 지느러미에 스티커를 붙였지요.


말이야 쉽지 그 많은 놈들을 일일이 잡아 스티커를 붙이려니 고생도 이런 고생이 없었습니다. 어떤 놈은 욕조 바닥에서 통 올라오질 않아 스텔라가 직접 저 밑까지 잠수해야 했다니까요. 잽싸기는 또 얼마나 잽싼지! 하루를 꼬박 써도 지느러미 스무 개에 스티커를 붙이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며칠 뒤, 욕조 속을 본 스텔라는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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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서사 #여성주인공 #동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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