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마리일까?(2)

글쎄 '엄청 많이'가 대체 얼마큼이냐고!

by MMQ

아니 글쎄 욕조 속의 물고기들 중에 '제대로'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놈이 한 마리도 없지 뭐에요?


적게는 2개, 많게는 5개까지 온몸에 덕지덕지 스티커를 붙이고 태연작약하게 욕조 속을 누비는데, 어떤 놈들은 커플룩마냥 스티커를 반으로 찢어 하나씩 머리에 붙이고 다니기까지 했습니다. 특별히 공을 들여 모양을 낸 스티커로 꼬리를 빼곡하게 장식한 한 놈은 눈꼴 시릴 정도로 잘난 척을 해댔지요. 다른 물고기들이 그 물고기를 어찌나 부러워하던지!


이래서는 열심히 스티커를 붙여봤자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유행들이 그렇듯 스티커가 일으킨 패션 센세이션도 시간이 지나면 봄 맞은 눈처럼 사그라질 테죠. 헌데 어느 세월에 그걸 기다립니까? 만에 하나 유행을 타지 않는 스테디룩으로 자리 잡으면 기다린 보람마저 없잖아요?


'아하, 그렇구나. 스티커처럼 뜯고 찢을 수 있는 걸 쓴 게 문제였어.'


스텔라는 시장으로 가 질긴 노끈을 수십 타래 사왔습니다. 그리곤 물고기를 한 마리씩 셀 때마다 꼬리에 단단히 매듭을 묶었지요. 그러나 매듭을 묶는 건 스티커를 붙이는 것보다 곱절은 번거로워서 스텔라는 하루에 고작 열 개의 매듭을 묶는 게 다였습니다.


그런데 한 일주일 쯤 지났을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놈의 물고기들이 꼬리에 묶어둔 매듭을 전부 풀어버렸지 뭡니까!


그뿐이게요? 물고기들은 푼 노끈을 얼기설기 엮어 욕조 위에 걸쳐놓고는 한 마리씩 튀어 올라 구멍을 통과하는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보아하니 통과하는 구멍이 작을수록 점수가 높은 눈치였지요. 스텔라가 목도했을 땐 마침 유독 날랜 물고기 한 마리가 손가락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 한 구멍을 막 통과한 참이었는데, 다른 물고기들이 어찌나 법석을 떨어대던지 스텔라도 슬금슬금 박수를 치고 말았다니까요.


스텔라는 이제 뭘 해야 될지 감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물감을 사다 한 마리씩 칠해볼까? 아니야, 온종일 헤엄치는 게 일인 놈들이니 반나절도 안지나 다 씻겨나갈 거야. 그럼 골무를 한 아름 사다 한 마리씩 모자를 씌워 볼까? 아서라, 저 놈들이라면 골무로 정글짐을 만들어 술래잡기를 하고도 남아.


뾰족한 수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고, 그렇게 하릴없이 시간만 흘려보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망연히 욕조 속을 들여다보던 스텔라는 불현 듯 뭔가를 깨닫고 펄쩍 뛰었습니다.


바다의 신을 걸고 맹세컨대 물고기의 수가 늘어있었습니다!


몇 마리인지 다 세보기도 전에 병들거나 죽으면 큰일이니, 먹이도 잘 주고 수초도 넣어주며 살뜰히 보살핀 게 물고기들은 꽤 살만하게 여겨졌던 모양입니다. 한 번 알을 깔 때마다 수백 개의 투명한 쌀알이 비처럼 쏟아지는데, 보고 있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새끼 물고기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쑥쑥 크고, 어른 물고기들의 사랑놀음은 멈출 줄을 모르고. 하는 수 없이 스텔라는 욕조를 몇 개 더 주문했습니다. 헌데 보통 욕조도 아니고 뭉클리키아족 전용 욕조는 한두 푼 하는 게 아니어서, 스텔라는 팔자에 없던 외상까지 달아야했지요.


외상을 갚으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데 나 이것 참. 밤낮으로 물고기들 뒤치다꺼리 하느라 숨고를 틈도 없는데 무슨 수로 돈을 버나요? 때맞춰 밥 줘야지, 산소통과 배수관에 문제는 없나 수시로 들여다봐야지, 똥 치워줘야지, 틈틈이 욕조 속도 닦아줘야지!


뱃일은커녕 장볼 짬도 안 나서 이러다간 물고기 밥으로 끼니를 때우게 생겼지 뭐에요?


마침내 스텔라는 결심했습니다. 그는 물고기를 딱 백 마리만 추려 팔고 몽땅 처분해버렸습니다. 왜냐면 스텔라가 헷갈리지 않고 셀 수 있는 물고기가 딱 백 마리까지였거든요.


스텔라는 정확히 물고기 백 마리 어치만큼 풍족하고 행복해졌습니다. 정말 다행이지요. 그 이상을 팔아봤자 스텔라는 얼마큼 행복해야 될지 몰라서 혼란스럽기만 했을 테니까요.


나머지 물고기들은 어쨌냐고요? 욕조 장인에게 밀린 외상값 대신 줘버렸지요. 욕조 장인은 이 많은 물고기로 뭘 할까 고민하다 깜짝 사은품인척 단골 고객인 뭉클리키아족에게 보내버렸습니다.


문제는 이 뭉클리키아족이 평생 물고기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자들이었단 겁니다. 뭔가 작고 반짝이는 것들이 욕조 가득 담겨 오긴 했는데, 달랑 ‘사은품’ 세 글자 쓰여 있는 설명서로는 이게 먹는 건지 바르는 건지 알 수가 없었지요.


그러다 한 호기심 많은 뭉클리키아족이 물고기가 든 욕조에 슬쩍 발을 넣어봤고, 발을 다시 뺐을 땐 다들 옳거니 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꼬질꼬질하게 때타있던 발이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해져 있었거든요!


물고기들은 뭉클리키아족의 목욕 문화에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발가락 사이, 손톱 틈, 배꼽 같이 씻기 힘든 부위들이 몸만 담가도 저절로 말끔해지니, 혁명이란 이름이 아까울 정도였지요. 신기한 점은 또 있었습니다. 이 희한한 입욕제는 쓰면 쓸수록 양이 불음 불었지 결코 줄어드는 법이 없었거든요.


신나기는 물고기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변에 늘 먹을 것이 넘쳐나는데다 맛까지 아주 좋았으니까요. 특히 뭉클리키아족 어린이의 비듬은 별미중의 별미였는데, 어린아이 머리만 보였다 하면 물고기들이 떼로 몰려들어 반짝반짝 빛나는 은빛 가르마를 만들어냈답니다.


덕분에 물에 닿기도 싫어하던 뭉클리키아족 어린이들도 목욕을 좋아하게 됐다니, 참 잘 됐지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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