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거야! 아무도 못 줘!
목소리는 버려진 종이컵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다이엔 씨는 설마하며 종이컵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자 깃이 달린 모자에 녹색 줄무늬 바지를 입은 털짐승 비슷한 것이 손을 흔들고 있지 않겠어요?
“여기에도 있어요!”
“여기도요!”
과자 봉지에서, 구겨진 휴지들 사이에서 작은 머리들이 쏙쏙 올라왔습니다. 그중 유난히 두 눈이 석류 알처럼 붉은 놈 하나가 다이엔 씨의 손바닥 위로 쪼르르 올라오더니 허리를 숙여 인사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희는 아주 먼 나라에서 온 티람밤치족이란 자들로, 전 이들의 왕인 디깃디히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영광이에요. 그런데 제겐 무슨 용무시죠?”
“저희 왕조에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왕관이 있습니다. 최근 어떤 악덕한 무리가 이를 훔쳐 달아나는 만행을 저질렀는데 선생님께서 그 행방을 아신다고 들었습니다.”
“왕관이요? 전 평생 왕관 비슷한 것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는데요?”
“여느 왕관이 아닙니다. 티람밤치족의 왕관은 알이 굵은 밤톨보단 크지만 말라붙은 땡감보단 작고, 철쭉보다 붉고 새벽녘보다 푸르며….”
“여기 있었구나, 디깃디히!”
돌연 웬 낯선 티람밤치족이 다이엔 씨의 손바닥 위로 난입했습니다. 낯선 티람밤치족과 디깃디히는 엎치락뒤치락 하다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지요. 둘은 서로를 향해 이쑤시개만한 작은 창을 겨눈 채 씩씩거렸습니다.
“다갈라탄! 여긴 어떻게 알고!”
“네 놈이 왕관을 가로챌 거란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달려왔지!”
“허튼 소리! 원래 왕관은 내 것이었어!”
“아직도 그딴 말을 입에 올리다니, 여봐라! 당장 저 반동분자들을 처단하라!”
때마침 지하철 환풍구에서 바람이 솟더니 낙하산을 탄 티람밤치족 수십이 그들 쪽으로 날아들었습니다. 티람밤치족은 한데 뒤엉켜 맹렬히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틈을 타 다이엔 씨는 재빨리 자리를 떴습니다. 사정을 모르는 다이엔 씨로선 디깃디히의 편을 들 수도, 다갈라탄의 편을 들 수도 없었으니까요. 물론 둘 중 누구에게도 다이엔 씨가 ‘그것’을 넘기는 일은 없었을 테지만요.
걸음을 서두르느라 바짓단이 추켜 올라가 차가운 겨울바람이 정강이를 스쳤습니다. 다이엔 씨는 얼른 바짓단을 도로 내렸습니다.
그런데 암만 바짓단을 내려도 정강이께가 으슬으슬 춥지 뭐에요? 이상하게 여긴 다이엔 씨는 슬쩍 아래를 내려다봤지요.
“안녕하십니까. 오늘 날씨가 참 쌀쌀하죠?”
“으악!”
다이엔 씨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돌아봤지만 금세 다들 제 갈 길을 갔습니다. 왜냐하면 다이엔 씨의 바짓단에 붙어 서늘한 기운을 뿜어대는 그것은 오직 다이엔 씨 눈에만 보였거든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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