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구두

#4. 누군가의 뒷모습에 눈물이 핑 도는 어떤 날을 위하여

by 박희영


학교 공사로 여름방학이 좀 당겨졌다며 손주가 집에 왔다.

맞벌이하는 아들네가 수박 한 덩이를 들고 멋쩍게 웃는다.

반가운 눈과 마냥 활짝 웃지 못하는 입 꼬리에 마음이 무겁다.


‘아들 눈가에도 이제 주름이 있네. 언제 저렇게 세월을 품었지?’



아들이 정자세로 옆에 앉으니 며느리는 서둘러 부엌으로 간다.

아들 며느리 왔다고 과일을 꺼내는 어미의 손을 얼른 낚아챈다.


“제가 할게요.”


“괜찮아 직장 다니느라 힘든데 앉아있어. ”


고부간의 대화가 정겹다.

그렇지만 지금 두 사람 속은 말이 아닐 거다.

우리 부부는 노년을 제대로 즐길 예정이니, 손주는 맡길 생각도 말라며 아들 결혼식 날 호탕하게 엄포를 놨다.

대신, 우리가 아파도 신경 쓰지 말고 어디서 주워들은, 효도도 셀프! 각자의 안부도 셀프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제 막 살림 꾸린 아들 며느리가 왜 안 보고 싶었으랴.

손주도 태어나면 다 키워주고 싶었지만.

고작 작은 도움을 받고 나면 우리의 노후를 챙겨야 할 아들네의 몫이 더 클 것 같아

애초부터 선을 긋자고 아내와 약속을 했던 터다.

우리가 짐이 되면 안 되니까.



“죄송합니다. 정말 이젠 믿고 맡길 데가 없어서...”


아들이 어색한 웃음으로 말을 흐린다.

내가 아들의 저 웃음을 본 지가 얼마만이더라?

아마 대학교 때 머쓱하게

‘장학금을 못 받았어요’ 하면서

등록금 고지서를 내밀 때였나?



그 후로 일절 속 썩일 일이 없었던 아들.

언제나 자랑이었지만 한편으론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꼬.

마음이 쓰리다.


“딱 한 달 만이야.”


마음과 달리 무뚝뚝한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런 아버지 때문에 너희가 고생이구나.



며느리가 손주에게 다정하게 말한다.

“저녁에 만나자.”



손주를 떼놓고 가는 아들내외의 걸음이 한결 가볍다.

배웅하고 오는 길.

아들 며느리의 닳은 구두 뒤축이 오늘따라 고단해 보인다.

제 구두 하나 살 여유 없이 사는구나....

그저 먼 하늘만 한참을 바라본다.



우리가 무심코 스쳐 버리는 일상의 한 장면을 사진 찍듯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글입니다.

어쩌면 초단편, 또 어쩌면 에세이 이른지도 모를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통해 작은 응원과 위로를 받으시면 좋겠습니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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