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장판의 추억

#5. 응답하라 1988-1994 세대라면 누구나

by 박희영

시골집 공사를 시작했다.

사람의 온기가 식은 지 오래된 집.

낡은 것들을 뜯어내고, 새롭게 고칠 요량이다.

마지막으로 집 안을 둘러보는데 구석구석 추억 아닌 곳이 없다.

걸을 때마다 장판과 바닥 사이에 공간이 느껴지는 누런 종이장판이 반갑다.




“이 바닥에 니스칠을 얼마나 했는지 몰라.

니스칠을 하지 않으면 장판이 더러워지거든.

니스는 얇게 한 번 바르고,

다 마르면 그 위에 또, 얇게 발라야해.

그 과정을 몇 번 반복할수록 고급이란다.”




무슨 대단한 자랑거리라도 되는 양 속삭이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모래알을 콕콕 박아놓은 것처럼 온통 오돌토돌해진 종이장판을 손으로 쓰다듬어본다.

손발이 많이 닿아 찢어진 데는 장판과 비슷한 색의 누런 테이프가 몇 겹이나 발려져있다.

종이장판은 장판 아래 무엇이 있는지를 숨기지 않는다.

방의 온도가 높은 곳은 검붉게 익고, 겹쳐진 모서리마다 투명하게 흔적을 남겼다.



세월만큼이나 묵은 때깔의 종이장판 위에도 급이 있다는 걸 아는가?

유독 진한 갈색으로 동그랗게 물든 아랫목은 상석上席이다.

이른 아침,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기보다 이불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게 하는 마법의 자리, 아랫목.

일어나란 소리에 요를 들춰 뜨끈한 맨 바닥에 몸을 밀어 넣는다.



“으-시원해”



벌떡 일어나기 전에 맨바닥에 몸을 지지는 건 우리만의 아침의식이었달까?

그렇게 몸을 한 번 더 말랑하게 녹이고는 일터로 향했다.



밤이 되면 아랫목에는 사람대신, 밥그릇이 눕는다.

뚜껑이 겨우 덮일 만큼 꽉 찬 고봉밥이 이불을 둘둘 감고 가장의 퇴근길을 기다린다.

그 온기로, 우리는 세월을 견뎠고, 살아왔나보다.



종이 장판이 뜯겨나간다.

먼지 나니까 나가있으라는 작업자의 목소리에 화들짝 추억을 접는다.




우리가 무심코 스쳐 버리는 일상의 한 장면을 사진 찍듯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글입니다.

어쩌면 초단편, 또 어쩌면 에세이 이른지도 모를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통해 작은 응원과 위로를 받으시면 좋겠습니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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