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두 번 맞는 시계

#7. 나이 듦에 대하여

by 박희영

거실 공기는 오래된 나무 냄새로 눅눅했다. 한때 반짝였을 유리장은 안개 낀 듯 뿌옇고, 벽 한쪽에는 키보다 큰 괘종시계가 묵직하게 버티고 있었다. 금빛 물감이 다 빠져나간 글자, “축 개업”. 이미 반 세기쯤은 지나온 것처럼 색이 바래 있었지만, 여전히 자랑스러운 듯 유리에 붙어 있었다.

나는 두 손으로 시계 몸통을 쓸어내렸다. 먼지가 흩날리며 햇살에 춤을 췄다.


“아버지, 이젠 그만 버려요. 하루에 두 번 맞는 시계가 무슨 소용이에요?”


아버지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엽을 감기 시작했다.
드르륵, 드르륵— 쇠줄이 당겨지는 소리가 적막한 집안에 울렸다.

그러나 바늘은 미동조차 없었다.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 그 정도면 된 거지.”


아버지의 목소리는 오래된 기계음처럼 낮고 거칠었다.

나는 집 안을 둘러보았다.
문이 반쯤 열린 뻐꾸기시계가 창고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하얀 뻐꾸기는 날개도 펴지 못한 채,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한 모습으로 멈춰 있었다. 마치 세월에 갇힌 새 같았다. 낡은 라디오는 다이얼이 돌아가지 않았고, 바늘이 빠진 턴테이블은 빙글거리던 음악 대신 먼지만 쌓여 있었다. 우리 집은 마치 시간의 매장지 같았다.



“도대체 이런 건 어디서 얻어오신 거예요? 사업이라도 해보셨던 분처럼.”



내가 툭 내뱉자, 아버지는 잠시 말없이 창문을 열었다.

저녁 햇살이 희미하게 스며들며, 먼지 입자들이 작은 별처럼 흩날렸다.



“버리면 다 사라지잖아. 그래도 이건 내가 살아온 흔적이야.”



그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세월은 빠르게 지나갔다. 아버지는 몇 해 뒤부터 잦은 통증으로 병원을 드나들었다. 하얀 복도 끝 의자에 앉아 대기하던 아버지의 뒷모습은, 집 안의 고물들과 겹쳐 보였다. 낡고, 멈춰 있고, 그러나 아직 버려지지 않은 존재.



어느 날, 괘종시계 앞에서 아버지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니들도 낡고 싶어 낡았겠느냐. 세월이 지나면 제 수명 다하는 거지. 나도 그렇고.”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버리자”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고집은 단순한 집착이 아니라, 시간과 추억을 끝까지 붙잡으려는 몸부림이었다.

이제는 멈춘 시계도 다르게 보인다. 하루에 두 번, 바늘이 정확히 시간을 가리킬 때마다 나는 아버지가 살아온 삶을 떠올린다. 땀에 젖은 작업복, 굳은살 박인 손, 고집스럽게 태엽을 감던 뒷모습.

버리지 못한 물건이 아니라, 놓치지 않은 기억.
아버지가 내게 남겨준 마지막 가르침은 바로 그것이었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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