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인연을 놓쳐버린 그대에게
창가에 앉은 그는 오늘도 두 잔의 커피를 시켰다.
아이스아메리카노는 그의 몫, 따뜻한 카페 라테는 그녀의 몫.
아메리카노는 늘 차가웠고, 라테는 언제나 식어갔다.
카페 주인이 물었다.
“손님은 항상 두 잔을 시키시네요?”
그는 웃는 척하며 짧게 대답했다.
“습관이에요. 원래 둘이 마시던 자리라서요.”
웃음 끝은 늘 허공에서 흩어졌다.
그날도 여름이었다. 창밖에서는 매미가 쉼 없이 울어대고, 유리창 너머 나무 잎사귀는 더위에 지친 듯 늘어져 있었다. 그녀는 한여름에도 뜨거운 라테를 마셨다. 그날도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오래 침묵했다. 말없이 눈길을 창밖에 두고,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가 억지로 웃으며 말을 꺼냈다.
“올여름은 유난히 긴 것 같아. 하루가 잘 안 끝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하지만 길었던 여름도 결국엔 지나가잖아. 늘 그렇듯이.”
그 순간 그는 직감했다. 이건 단순한 계절 얘기가 아니었다.
잠시 후,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붙잡고 있으면… 더 힘들어질 때가 있더라.”
그 말이 끝났을 때, 그의 가슴 안에는 수많은 말이 들끓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필요하다, 다시 시작하자, 사랑한다. 그 말을 그는 끝내 뱉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는 늘 자신을 ‘부족한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직업, 한 달 한 달 빠듯하게 채워가는 통장 잔고, 미래를 약속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현실. 반대로 그녀는 늘 반듯했다. 또박또박 삶을 일구어가며, 자신보다 멀리 앞서 걷는 사람.
그녀가 잠깐 눈길을 돌려 그를 바라봤을 때, 거기엔 분명 기대가 있었다. 제발 붙잡아 달라고. 하지만 그는 그 눈빛마저 감히 맞받을 자신이 없었다.
그의 침묵은 곧 동의가 되었고, 그녀는 천천히 의자를 밀며 일어섰다.
그녀의 진동에 그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잔 속 얼음이 부딪히며 가벼운 소리를 냈다.
“먼저 일어날게.”
평범한 인사처럼 들렸지만, 그 말이 끝이라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문이 닫히고, 뜨거운 바깥공기가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매미 울음은 더 크게 번져왔다. 그는 의자에 그대로 앉아, 아직 그녀의 체온이 남은 자리를 오래 바라보았다.
지금도 그는 그 자리에 앉는다. 아메리카노는 여전히 차갑고, 라테는 천천히 식어간다.
사람들에게는 그저 버릇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그 두 잔이 하나의 약속처럼 남아 있었다.
그는 지금도 곱씹는다.
그녀를 왜 붙잡지 못했을까. 사랑이 부족했던 건 아니다. 다만 그는, 그녀 곁에 설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단정해버렸다.
그 여름 이후 그는 알았다.
사랑은 조건으로 재는 게 아니고, 자격을 따져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하지만 깨달음은 늘 늦게 오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 늦음이 평생의 미련이 되리라는 것도.
지나가버린 여름처럼, 이미 흘러가버린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