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사람을 남기는 방송만들기
그러던 어느 날, 정말로 예산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보수할 곳은 산더미였고, 제작비 부족으로 미뤄두었던 빚도 많았지만, 우리는 뜻밖에도 쇼핑을 했다.
바로 모공존 객석용 방석 100개였다.
물론 방석 하나가 구름 같은 안락함을 보장해주지는 못하겠지만, 딱딱한 객석용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고통을 조금은 덜어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겉으로 보기엔 하찮은 지출이었고, “한 번 오고 가면 끝인 관객에게 왜 그렇게 돈을 쓰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오래가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
오래간다는 건 곧 사람을 지킨다는 뜻이었고, 신생프로이자 지역프로그램인 우리에게 재산은 결국 사람이었기에 선택한 결과였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안을 한다고 한 들 실행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인 법, 이러한 일이 가능하게끔 결정을 내린 건 담당 피디였다. 피디는 말 그대로 프로그램의 총책임자다. 나이가 많건 적건 연차가 높든 낮든, 이 프로그램의 최종 결정권자는 피디이고 예산을 운용할 수 있는 사람 역시나 피디이기에 피디의 결정과 철학이 제작에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때문에 피디의 자리는 친목이나 감정에 흔들려 돈을 쓰지 않는 위치이다. 나와 뜻이 잘 맞았던 피디는 “관객을 지켜야 프로그램이 산다”는 말을 인정해 줬고, 공감했고, 단호히 실행에 옮겼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알았다. 이 작은 방석들이야말로 우리 프로그램의 철학을 증명하는 도구가 될 것임을.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에는 후기가 줄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 관객을 진짜 ‘사람’으로 대우하네요.”
“다른 방송에서는 관객은 늘 소모품 같았는데, 여긴 다르네요. 오래 앉아 있어도 덜 힘들었어요.”
“이 방석 덕분에 네 시간 내내 집중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출연자를 사랑해서 오던 관객들이 우리 프로그램 자체를 사랑해 주기 시작했다.
그 문장들은 짧았지만 묘하게 오래 남았다. 그리고 우리를 응원했고 우리 프로그램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등을 떠밀어 줬다. ‘사람을 아껴주는 곳’이라는 경험이 사람들을 움직였던 것이다. 우리는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프로그램이란 결국 사람 하나하나의 편안함 위에 세워지는 것임을 말이다.
우리가 산 방석은 가수 아이유 씨가 콘서트장에서 제공한 폭신폭신한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아이유 씨는 팬들의 숨결 하나까지 세심히 살피는 섬세함으로 방석을 준비했고, 우리는 그 진심에 감탄했다. 다만 우리에게 중요한 건 크기나 질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챙긴다’는 마음이 진짜 자산이라는 사실이었다.
만약 우리 피디가 더 화려하고 눈길을 끄는 장치를 택했다면, 겉보기에는 반짝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관객을 배려하는 선택이 있었기에, 우리는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그것이 우리의 자부심이었고, 우리가 끝내 지키고 싶었던 원칙이었다.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건 결국 무대를 세우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는 일이다.
객석에 앉은 관객이 불편하지 않도록 살피고, 작은 배려를 당연히 여길 줄 아는 것. 그 마음들이 쌓여, 우리는 다른 방송과 달리 ‘사람을 소모하지 않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다.
돌아보면, 우리가 가진 가장 값진 원칙은 단순했다. “재산은 결국 사람이다.”
무대는 사라지고 기록은 잊히더라도, 우리가 챙겼던 그 사람들의 온기는 오래 남아 있었다.
무명의 프로그램에 먼 걸음을 달려와준 아티스트들, 고작 한 번 맺은 인연으로 다음 녹화 때 흔쾌히 또 출연해 주는 수많은 아티스트를 기억한다. 우리 프로그램 종영 당시, "출연료는 상관없어요"라고 말해준 분들이었다. 그 사람들 덕분에 이러한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었음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 2025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