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객 성공의 비밀

부제 : 팬은 최고의 제작진이다

by 박희영

고대하던 아티스트를 섭외해 놓고, 공개녹화 현장이 텅텅 비어 있다면?
이건 방송 제작자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다. 무대 위에는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가수는 목청을 다해 노래를 부르는데… 객석은 파도 소리도, 박수 소리도 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상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하다. 그런데 우리 프로그램은 신생이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름만 대면 다 아는 톱가수를 부르기란 불가능했고, 지역이라는 태생적 한계까지 짊어지고 있었다.


공개녹화에 "관객을 어떻게 모을 것인가"는 늘 우리의 숙제이자 두통거리였다. 당시 정규프로그램 제작 전,행사 인듯 행사 아닌 음방 상태였던지라 모객은 더더구나 힘들었다. 고민하는 나에게 선배 PD는 "그 고민은 작가인 너의 것이 아니다."는 정말로 대문자 T스러운 답변을 내놨지만, 한 땀 한 땀 섭외한 가수들에게도 면이 있지. 지방까지 내려왔는데 객석이 텅텅 비어있으면 그들이 노래할 맛이 나겠냐는 말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내가 짠 묘수는 간단했다.



‘팬덤이 있는 가수부터 섭외하자.’



대부분의 인디밴드가 그렇듯,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아도 팬덤은 탄탄한 경우가 많다. 중요한 건 ‘팬의 수’가 아니라 ‘팬의 움직임’이었다. 팬이 아무리 많아도 집 밖을 잘 안 나오는 가수가 있는가 하면, 단 100명이라도 전국을 따라다니는 열성 팬덤을 가진 가수가 있다.

그런데 팬덤이 있다는 건 곧 실력이 있다는 말이다. 인디밴드 팬들은 단순한 ‘팬심’이 아니라, 음악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충성은 실력에서 비롯된다.

사실 이 시도 자체도 상상으로 그려낸 시뮬레이션이지 정말로 그 팬들이 이곳까지 오리라는 확신은 없었다. 그래도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라는 마음으로 진행해 보기로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 지상파, 케이블을 막론하고 인디밴드가 메인으로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팬들에게는 우리 같은 지역방송도 귀한 기회였다. "내 가수가 드디어 TV에 나온다"는 사실만으로도 팬들의 발걸음을 붙잡을 수 있었다.



더 재미있는 건 그다음이다.
나는 녹화 일정을 홍보하며 팬들에게 직접 요청하기 시작했다.
“팬들이 자랑하는 내 가수의 장점과 음악성을 보내주세요.”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팬들이 보내온 원고는 열정과 사랑으로 가득했다. 제작진이 아무리 고민해도 찾기 힘든 디테일이 줄줄이 쏟아졌다. 가수의 음악적 색깔, 무대에서의 특징, 팬들과의 추억까지. 그것은 그냥 자료가 아니라, 팬의 눈으로 기록된 살아있는 음악사전이었다.




그때부터 인터뷰의 밀도가 달라졌다. 단순히 “신곡 소개해주세요”가 아니라, 팬이 묻고 싶어 한 질문을 가수에게 대신 물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수는 “어떻게 이런 걸 아세요?”라며 놀라고, 팬들은 “내 질문이 방송에 나왔다”며 뿌듯해했다. 결국, 그 과정을 통해 우리 프로그램은 조금 특별한 색깔을 가지게 되었다.

관객이 없는 음악방송이 아니라, 관객과 함께 만드는 음악방송.
지역이라는 한계를 ‘관계’라는 힘으로 극복한 순간이었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 2025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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