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디님은 어디 계세요?

부제 : 번지수 잘못 찾은 매니저

by 박희영


언젠가의 뮤직페스티벌 무대에서, 우연히 흘러나온 라디오 속에서, 혹은 콘서트장 한편에서—
마음을 울리는 음악을 만나면,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건 위로였고, 응원이었고, 아무 말 없이 내 마음을 다독이는 행복이었다.


예전엔 그냥 “이야, 노래 참 좋다”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음악프로그램을 만들면서부터 나도 모르게 달라졌다.



“이 사람, 언젠가 꼭 섭외하고 싶다.”

어느새 그게 내 작은 꿈이 됐다. 섭외 리스트에 오른 가수들은 이젠 내 일상의 일부다.

출근길 차 안에서, 자기 전 침대 위 유튜브 속에서, SNS에 게시물을 올릴 때 BGM에서도 그들의 노래가 흐른다. 가수 본인은 모르겠지만, 나는 매일 ‘내적 친밀감’을 쌓으며 그들의 실물을 영접할 날을 손꼽았다.




섭외는 늘 ‘가능할 것 같은데 잘 안 되는 희망고문 같은 일’이다.
“일정이 겹쳐서요”라는 말로 몇 번 거절을 당하고, ‘이제 그만해야 하나’ 싶을 때도, 나는 또 한 번 문을 두드렸다. 그 사이 소속사가 바뀌기도 하고, 담당자가 전화를 받지 않던 날도 있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떠올랐다. 내가 위로받았던 그 노래를, 이제는 시청자들이 느꼈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렇게 몇 달 동안 공을 들였다. 수십 통의 전화를 하고, 메일을 보내고, 때로는 가난한 인맥을 총동원하며,
“예산은 적지만 마음만큼은 크다”는 포부로 출연을 설득했다.

그리고 마침내, ‘섭외 확정’ 도장이 딱— 찍히는 순간, 진짜로 울 뻔했다.


그날, 나는 속으로 외쳤다.


“이건 내 작품이다.

내 노력의 결과다.”라고!


방송국 게시판에 출연자 명단이 붙고, 홍보 영상이 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말했다.


“와, 진짜 XX 섭외했어요?”

“대박, 어떻게 데려왔어요?”


그때마다 어깨가 저절로 으쓱했다. 이게 바로 작가의 성취감이지, 싶었다.

녹화 날. 대기실 세팅부터 무대 리허설까지 공개홀 안에서만 하루 2만 보는 찍은 것 같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 모든 리허설이 끝나고 본방까지 무사히 마쳤을 때, 비로소 숨을 돌렸다.

그때, 가수 매니저가 쇼핑백을 들고 내 앞에 다가왔다.
표정이 밝아서, ‘아, 오늘 진짜 잘 됐구나’ 싶어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잘했다, 나 자신. 진짜 잘했어.'


그런데 매니저의 첫마디가 이거였다.


“피디님은 어디 계세요?”


순간, 웃음 띄고 마중 나간 내 마음이 부끄러워서 조금은 어색한 목소리로

“왜요?” 하고 되물으니
매니저가 웃으며 말했다.



“아, 피디님께 인사드리려고요.
저희 섭외해 주셔서 감사하다고요.
사인 CD 챙겨 왔어요.”


그 순간, 내 머릿속이 하얘졌다.


섭외? 내가 했지.

셋 리스트? 내가 짰지
리허설? 내가 맞췄지.
대본? 내가 썼지.


그런데… 왜! 작가님, 피디님이 아니라 피디님만 찾는 거지?!



물론 안다. 방송 현장에서 ‘피디님’은 방송의 총책임자이자 중심이다.

하지만 그날따라 서운함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나도 여기 있었는데, 나도 이 무대를 만들었는데, 왜 난 보이지 않는 걸까.’



내 속도 모르고 매니저는 여전히 환하게 웃으며 나를 재촉했다.



“작가님? 피디님은...??”


나는 그저 웃으며 대화를 했지만 속으론 중얼거렸다.

'싸인 시디 나도 줘도 되잖아요… 나도 스태픈데, 내가 작간데…'


결국 퉁명스러운 마음이 말로 나와버렸다.


“피디님은… 공개홀에 안 계신대요.”


내 목소리가 스스로 들어도 싸늘하고 매서웠다. 아마 얼굴도 서운함과 기분 나쁨이 담긴 채였을 거다.



방송이라는 게 참 묘하다. 화면에 나오는 건 진행자와 가수뿐이지만, 그 한 장면을 위해 조명, 음향, 무대, 작가, 카메라, FD, 분장, 코디, 경호원까지— 수십 명이 동시에 움직인다.

누군가의 마이크 볼륨이 조금만 틀어져도, 무대 조명이 반 박자 늦어도, 그 순간 방송은 ‘삐걱’ 소리를 낸다.

결국 방송은


“누가 제일 돋보이느냐”가 아니라
“누가 자기 자리를 지키느냐”로 굴러간다.


하지만 세상은 늘 보이는 사람에게만 박수를 친다.
힘이 있어 보이는 사람, 앞에 나서는 사람에게만 잘 보이려 한다.

그 순간, 문득 다른 스태프들이 눈에 들어왔다.

음향팀, 조명팀, FD, 진행 도우미, 촬영 감독님들.
다들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 그들도 ‘오늘도 피디님만 찾는 세상’에 조금은 서운했을 거다.



그 생각이 들자 가슴이 이상하게 먹먹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참 어렸다.
경험도 부족했고, 마음도 여렸다.

모든 공을 내 몫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것도, 아마 그만큼 ‘내가 한 일’을 누가 알아봐 주길 바랐기 때문일 거다.



이젠 안다.
누가 알아주건 아니건 간에 모두가 묵묵히 제 일을 해야만 방송이 잘 굴러간다는 것을. 때로는 서운함도 숨기며 웃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 같으면 웃으며 말했을 거다.



“피디님은 공개홀에 안 계신대요.” 대신
“제가 전달드릴게요.”라고.


그리고 그때의 나를 다시 만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야, 너 진짜 잘했어. 그날 너 덕분에 방송 잘 나갔잖아.”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 2025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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