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모두가 주인공인 무대에서 여러분을 모십니다
밴드 음악이 좋은 이유는 단순하다.
누가 앞에 서느냐보다, 함께 만들어내는 ‘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타가 선율의 길을 열고, 베이스는 그 길 아래 단단한 뼈대를 세운다.
드럼은 숨을 고르듯 박자를 새기고, 키보드는 그 틈새를 잔잔한 빛으로 메운다.
누구 하나 튀지 않아도, 각자의 연주가 맞물리며 하나의 리듬이 완성된다.
나는 그 순간이 좋았다. 서로의 소리가 엉기고 녹아들어 하나의 파도처럼 밀려올 때,
그 안엔 누가 먼저고, 누가 뒤인지 구분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밴드를 좋아했다.
밴드라는 건 처음부터 “모두가 주인공”인 구조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손끝이 흔들리면 전체가 흔들리고, 누군가 한 박자 늦으면 모두의 숨이 함께 어긋난다.
하지만 각자가 제자리를 지킬 때, 음악은 비로소 온전해진다.
그 조화의 순간, 나는 언제나 마음 깊숙이 울렸다.
그래서 나는 음악방송을 하면 정말로 제대로 만들고 싶었다. 프런트맨만 주목받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프로그램을 말이다.
초기 음악방송-이라 쓰고 시청자 서비스 차원의 오프라인 음악회라고 읽는다-의 녹화날, 마치 운수 좋은 날처럼 그날 무대는 완벽했다. 보컬의 목소리는 단단했고, 기타의 음은 맑은 금속처럼 반짝였다.
방송 녹화보다는 공연이 우선이었던 프로그램이었던지라 녹화 퀄리티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왠지 녹화도 어마무시하게 잘 됐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녹화된 촬영본을 보는 순간, 정말 소설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5인조 밴드 두 팀이 출연했는데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화면엔 보컬과 기타만 있었다.
베이스의 손끝도, 드럼의 스틱이 만드는 리듬도, 키보드 위를 스치는 부드러운 손가락도 화면 속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분명 그 자리에 있었는데, 렌즈의 초점은 끝내 그들을 스치지 못했다.
나는 그게 아쉬웠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조금 억울했다.
‘밴드는 함께 만들어가는 음악인데, 왜 방송에선 늘 프런트맨만 남는 걸까?’
다음 녹화 전, 나는 감독님들을 에게 조심스레 부탁을 드렸다.
“감독님~ 오늘은 베이스랑 키보드, 드럼도 좀 많이 잡아주세요.”
워낙 오랫동안 여러 프로그램에서 합을 맞춰온 감독님들이라 이 정도 부탁은 편히 할 수 있는 사이였기에 가능한 요청이었다. 그런데 감독님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으잉? 늘 그렇게 잡았는데?"
물론, 감독님들은 늘 그렇게 카메라를 잡았다. 화면 속에 베이스와 드럼과 키보드는 있었지만 타이트샷이나 악기 선율이 기타에 집중될 때는 단지 기타만 집중해서 잡았을 뿐이다. 그때 느꼈다. 밴드는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인력이 많아서 음악 프로그램을 전담으로 하는 팀이 따로 있다면 모를까 지역에서는 모든 프로그램을 돌아가며 하다 보니 밴드 멤버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인식이 부족했다.
"맞죠 맞죠? 근데 오늘은 베이스 연주자가 키가 막 180! 몸이 막 운동선수 운동선수!! 많이 많이 보여주자고요"
"드럼은 또 어떻게요! 드럼스틱을 싹 돌리는 기술이 어디서 본 적 없는 전매특허라니까요."
"감독님 저 얼빠 (국어사전 왈 : 특정 운동선수나 연예인 따위를 좋아할 때 그의 능력과는 별개로 외모만을 보고 좋아하는 팬을 이르는 말.)인 거 아시죠? 이번에 키보드 맨이 돈 주고 봐야 하는 얼굴! 그리고 키보드 손이! 조각이에요. 감독님이 하나도 놓치지 말고 잡아주셔요"
감독님들은 작가의 너스레와 얼빠-몸짱을 좋아하는 너스레를 떨며 부탁하자 웃으면서 단박에 "오키오키"를 외쳤다.
그 말에 마음이 놓였다. 이제 화면에도 ‘함께’라는 단어가 비로소 보이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녹화가 끝나고 모니터를 돌려본 순간, 역시나 모든 보컬, 프런트 맨만 향해 있었다.
하루아침에 변화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잠깐잠깐 간주나 보컬이 쉬는 타임에는 성실하게 감독님들이 맡아주신 밴드 멤버를 잡아주고 있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며칠 뒤 점심을 먹으러 가다 카메라 감독님들을 만났다. 약간의 변화에 기분이 좋았지만 감독님들께 타박하듯 말했다.
"아니 감독님~~ 베이스, 키보드, 드럼 찍어주기로 하셨잖아요~ 왜 또 다 보컬만 있어요~~~"
그러자 감독님들은 웃으면서 말했다.
"보컬이 넷 중에 젤 잘생겼더라고~~ 허허"
얼빠 몸빠로 감독님들을 꼬셨지만 감독님들은 나의 전략처럼 맞대응을 했다.
그리고 이어서,
“주선율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카메라가 글로 가대~"라고 웃으며 말하셨다.
그 말에 나도 웃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음악이 이끄는 대로, 카메라는 그 흐름을 따라갔을 뿐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생각했다.
방송이라는 건 어쩌면 늘 ‘주선율’을 따라가려는 본능과의 싸움인지도 모른다.
렌즈는 언제나 가장 눈에 띄는 곳, 가장 화려한 장면을 찾아간다.
하지만 구성작가로 오래 일하다 보니, 그 뒤편에서 얼마나 많은 손길이 움직이는지 이젠 안다.
화면에 비치지 않아도, 그 자리를 묵묵히 채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있기에 무대는 빛났고, 그들의 손끝에서 방송은 흘러갔다.
조명은 무대의 온도를 세밀히 맞추고, 음향은 공기처럼 공연장을 감싼다.
진행 도우미는 게스트의 불안한 눈빛을 챙기고, FD는 무대와 대본 사이를 숨 가쁘게 오간다.
그들 중 누구 하나라도 자리를 놓치면 방송의 리듬은 금세 비틀린다.
하지만 다들 제자리를 지키며, 아무 일도 아닌 듯 웃는다.
나는 그런 현장을 수없이 보며 ‘함께 만든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씩 배워갔다.
돌이켜보면, 밴드의 무대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기타가 선율을 열고, 드럼이 박자를 새기고, 베이스가 흐름을 붙잡고, 키보드가 그 사이를 채운다.
누가 더 눈에 띄느냐보다 중요한 건 모두가 자신만의 리듬을 잃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밴드를 좋아하며 나는 방송의 본질을 다시금 되새겼다.
함께 만든다는 건, 누구 하나가 앞서거나 뒤서지 않는 일이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제 몫의 소리를 내는 일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 에피소드였다.
그리고 카메라 감독님들에게 디렉션을 하는 건 일반적으로 피디의 몫이다.
하지만 그때는 프로그램의 출발이 내가 다 책임지는 것이었고 (책임이라 하니 대단해 보이지만 온갖 잡무에서부터 도전까지를 다 말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자연스럽게 감독님들께 말씀드린 거였다.
그리고 그냥 ‘방송을 잘 만드는 일’도 좋았지만, 그 안에 작은 철학 하나쯤은 담고 싶었다.
“모든 사람이 주인공인 무대.”
그게 내가 만들고 싶었던 음악방송이었다.
이제는 안다. 모든 카메라가 기타를 향했던 그날도 결국은 하나의 조화였다는 걸.
어쩌면 그날의 보컬은, 다른 악기들의 숨결을 대신 품은 ‘대표선수’였을지도 모른다.
“모든 멤버가 주인공이어야 한다.”
그게 나의 ‘작가 철학’ 가운데 하나였다.
방송이라는 건, 결국 누군가의 음악을 누군가의 시선으로 기록하는 일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늘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보이지 않아도, 그 리듬은 있었다.”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 2025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