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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나뜨 Sep 06. 2024

필연적 기회

원한다면 반드시 찾아오는 기회

  누구나 세계여행의 꿈이 있었을 것이다. 성인이 되며 상황도 금전적 문제, 직장 등의 문제로 대부분 맞닥뜨린 현실에 인정하고 포기했을 것이다. 나도 그래왔다.


나중에, 나중에 가자. 재정적으로도 힘들고,
부모님께도 허락받아야 하는 거며 챙겨야 할 것들도 많잖아.
복잡하고 어려운 건 싫어.


라며 후일로 미루기 일쑤였고, 내가 일을 한다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없었기 때문에 100 퍼센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부모님의 손을 빌려야 했기에 부모님의 허락이 절실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부모님께 여쭤보았을 때도 "안돼. 너 군대 다녀오면 그때 생각해 보자."라며 단호하게 거절하셨던 만큼 내게 세계 여행이란 것은 당장에 이루어지기 힘든 작은 소망에 불과했다. 


  여느 때처럼 학교와 집, 교회를 돌아다니며 일상을 보내던 중 내게 필연적인 세계여행의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교회에서 선교를 간다는 것이었다. 여행의 목적은 아니지만, 그래도 2주 정도 외국을 탐험한다는 것은 내게 아주 좋은 기회였다. 매일 똑같은 일상에서 잠시나마 도피를 허락해 줄 나의 짧은 꿈이 이루어지려는 순간이었다. 내가 하도 조르는 바람에 부모님께서는 방학 때만 가라는 한시적 허락을 받았다. 그래서 바로 겨울방학 가기 위해 신청을 접수하고, 준비했다.


  아무래도 교회에서 하는 짧은 선교팀이다 보니 기도 부탁도 많이 하고, 집사님, 권사님들께 말도 드리며 준비했다. 시간은 빨리 지나갔고, 나는 난생처음 인천국제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탔다.


  맞다. 여행이 아닌 다른 목적의 팀이었기 때문에 힘들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되지도 않는 현지 언어를 하며 번역기와 보디렝기지를 통한 대화로 쪽팔리고, 힘든 일도 있었다. 그러나 나의 세계 여행에 대한 경험으로는 아주 좋은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


  한국에 돌아오니 힘들었던 날들이 더 많았음에도 그건 기억나지 않고,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혹여 대학교에서 지원하는 교환학생이나 결연이 맺어진 외국 대학들은 없나 찾아보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높은 성적과 기타 다양한 것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내 소망을 말끔하게 짓밟아 버렸다. 그렇게 나는 선교팀으로 여행 아닌 여행을 하며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팀으로 함께한 친구들과 연락하며 묻어둔 소망을 달랬다.


보지도 않던 외국 뉴스를 찾아보기도 했고, 내가 다녀갔던 지역에 혹시 나쁜 소식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기도 했고, 외국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연락처를 교환했었으니 혹시 SNS는 하지 않을까 검색해보기도 하면서 기회가 찾아오길 기다렸다.


  또다시 개강이 다가오고, 나는 또다시 학교와 집 그리고 교회를 드나들며 시간이 지나갔다. 한 달, 두 달, 1년.. 끝없이 이어지던 나날들에 전공과 단톡방에 참가된 사람들의 프로필을 보던 중 갑자기 무언가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유학...?


  같은 과에 외국에서 온 학생이 있었다.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유학일지 교환학생일지 모를 그 학생에 대해 생각하던 중 나도 유학을 가면 되겠네~ 해서 나의 작은 소망이었던 세계여행에 대한 꿈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부모님께 바로 말씀드렸고, 당연하게도 "안돼, 군대 다녀오고 나서 생각해 보자고 말했잖아." 단호히 반대하셨다. 하지만 이번에는 멈출 수 없었다. 


|  왜 안되는데? 나 가고 싶다고!!

  항상 조용히 부모님의 말을 따르던 나는 그 순간만큼은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  군대 다녀오고 나서 가도 되잖아. 뭐가 문제야? 그때 되면 생각해 보자고. 조용히. 엄마 지금 이거하고 있잖아. 나중에 얘기해.

  엄마는 하던 빨래를 다시 하며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듯했다.


|  나 갈 거야. 갈 거라고.

  그냥 안된다는 이유가 단순히 군대였던 것이 짜증 났던 것일까. 그냥 준비된 것도 없이 소리만 질러버렸다.


  그럼 가, 가! 너 혼자 준비해서 가. 엄마는 안 도와줄 거야.
네가 알아서 돈 해서 가. 엄마는 모른 척할 테니까 알아서 준비해.


  그때는 내 마음을 몰라주는 엄마가 미웠다. 엄마는 고민도 있었겠고, 걱정도 되는 마음에 그랬지 않았을까 지금에야 되돌아보지만 저때는 몰랐다. 처음으로 마음이 두근거리는 일이었기 때문에 엄마 생각은 안중에도 없이 나만 상처받았다고 생각하며 끝났다.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가지 못했다. 왜냐면 언제나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주었던 엄마와 껄끄러운 관계로 가고 싶지 않기도 했고, 유학은 어느 정도 부모님의 도움이 없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필요한 서류들도 적지 않고, 외국에 있으려면 비자 등의 거주 문제들도 있고, 특히 남도 아닌 자신의 자녀가 타국에 홀로 간다는 것이 걱정되었던 엄마는 나를 잘 타일러 가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또다시 나는 세계여행, 유학을 마음속 깊이 묻어둔 채로 학업에 열중했다. 또 이전처럼 친구들과 연락하고, 외국어도 알아보면서 지냈다. 그러다 성적이 계속 떨어지며 교수님과의 상담을 받고, 휴학을 결정하게 되었다. 

  홀로 집에 남게 된 순간이었다. 아빠는 일가시고, 동생은 열심히 고등학교 다니고, 엄마도 열심히 신앙생활 하시며 나는 거의 대부분 집에 혼자 남는 시간이 많았다. 이때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세계를 알고 싶다는 갈망이 내 상상력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상상은 엄청 큰데 다 담아내지 못하는 내 필력을 보며 좌절도 하고, 유명한 책들을 보며 내 세계를 완성해가던 때에 인터넷에 습작처럼 올렸던 글을 본 누군가가 내게 메시지를 남겼고, 정식 작가로 활동하게 되었다.

  어디서 글을 쓰게 되었는지는 말은 할 수 없지만, 내 글을 누군가 보고 있다라는 설렘이 다시 한 번 내 심장을 강하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세계여행은 못하지만, 내가 만든 세계에 다른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새로웠다. 비록 첫 작품이라 많은 값을 받은 것은 아니엇지만, 최대한 모아서 혼자라도 가야지 하며 열심히 임했다. 




  그렇게 두세 개의 작품을 끝낼 때쯤 내게 또다시 그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에도 다름 아닌 교회 선교팀이었다.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때는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고, 신청할 수 있었다. 이 선교도 2주 정도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좋았다. 너무 좋았다. 그렇게 좋은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와 이제는 진짜로 마음을 접으려 할 때쯤, '이번에도 안된다고 하시면 안 되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다시 한번 여쭤보았다. 


|  엄마, 나 가고 싶어. 맞아. 군대 다녀와서도 갈 수 있지. 근데, 그때 가면 나는 너무 늦을 것 같아.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학교를 졸업한 후 군대까지 다녀오면 못해도 4년의 시간은 더 필요하고 설사 이 모든 것을 끝냈다고 해서 내가 그때 지금의 뜨거운 마음으로 다시 준비를 할 수 있을까의 마음이 컸다. 


폭풍눈물과 롬곡옾높 [출처: 구글번역기]

|  나는 네가 이번 선교팀 다녀온다고 했을 때 느낌이 왔어. 이번에도 또 유학이나 여행 가고 싶다고 말할 것 같다고. 엄마도 기도 많이 해봤어. 너도 기도 많이 했겠지. 우리 둘 다 이렇다 할 답을 얻은 게 아니잖아. 준비해 보자. 아니라고 하시면 아닌 거고, 맞다고 하시면 보내주시겠지.



  우리는 처음으로 돌아갔다. 각자의 말이 맞다며 싸우던 날들을 돌아보며 지친 시간을 모두 보내버리고, 다시 누구의 말도 아닌 처음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도 말이 무조건 맞는 게 아니라 기도하면서, 엄마도 무조건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면서 신앙인으로 차근차근 준비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주변에서도 도움을 받았다. 지인분들 중에서도 꽤 있었다. 교환학생이나 국제여행 등 말이다. 특히 유학이니까 찾아야 할 것도, 준비되야 할 서류들도 산더미였다. 학적증명을 위한 영어번역도 했으며, 고등학교도 찾아가 졸업증명서 등 증명서란 증명서는 다 뗐고, 여행자 보험, 유학생 보험 등 가입해야 할 것들, 비자문제, 거주문제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다음으로 묻어두자.


  시간이 지나고 비자 심사를 위해 서울에 위치한 주한튀르키예공화국대사관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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