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만 성인, 아직 어린아이의 막연한 소망
본격적인 준비에 앞서 나는 무엇을 준비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는 맞는 표현일 것 같다. 왜냐하면, 몸만 성인이었지 아직 어린아이였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준비는커녕 놀기만 바쁘고, 인터넷 강국 한국을 떠나 외국에 가려니 정주행 할 것들도 많고, 재밌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재미만을 위해 달렸다. 기필코 가고 말 테야라는 의지는 사라졌고, 짧은 시간에 알뜰살뜰 재미있게 보내기 위해서 살았다.
그러던 중 그래도, 그래도 내가 하겠다고 한 일인데, 큰 마음먹고 엄마한테 허락을 받은 것인데 이렇게 지내다가는 그 무엇도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인으로, 그리스도인으로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자라는 다짐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가장 첫 번째 내가 해야 할 일은 튀르키예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이었다. 단순히 지식적인 부분이 아니라 유학,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입장에서 필요한 것들은 무엇일지, 혹여 준비되어야 할 서류들이 있을지 찾아야 했다.
쏟아지는 정보의 흐름들 속, 가짜뉴스는 없는지 한참을 신경 써야 했던 나는 엄청난 사실을 알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 여권의 파워였다. 대한민국 여권은 여권 지수가 세계 2위라고 한다. 여권 지수가 어떻게 측정되는지는 모르지만, 대한민국 여권이 국가마다 그 기간의 차이는 있으나 189개의 나라에 무비자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튀르키예는 세 달 동안 무비자로 여행이 가능했다. 그렇다면, 내가 유학을 가 있는 동안 최소 1년 중 3개월은 무비자로 있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남은 9개월은 비자를 새로 받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곧바로 주한튀르키예공화국대사관에 비자 신청을 하려고 보니 또 한 번의 난관에 봉착했다. 대사관에 직접 방문해 대면 심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필요한 모든 서류를 보냈음에도 실물 서류가 필요했고, 신청비도 필요했다.
아... 서울?
집돌이에게 외출이란 가장 힘든 일정이다. 하필이면 서울이라니. 내가 사는 곳은 충청도인데, 시외버스로만 2시간이 넘게 걸린다. 왕복 기본 4시간에 대사관이면 터미널 근처도 아니겠지. 다행이라면 집돌이답게 어떤 약속도 없다는 거다. 급한 대로 버스를 예매하고 심사 후에 비자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니 인터넷에 더 찾아보며 필요한 서류들보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만한 서류를 더 준비하기로 했다.
실물 여권, 여권 사본 / 실물 신분증, 신분증 사본
이건 쉬우면서도 굉장히 중요한 준비물이다. 신청자 본인을 나타내주는 서류로 여권과 신분증의 실물과 사본이 필요했다. 집에 복합기가 있어서 스캔으로 바로 복사했다.
(+ 여권사진도 필요하다. 이건 최신 사진이 좋다고 한다.)
최소 1년 이상의 여행자 보험 또는 유학생 보험
보험마다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혜택도 다르고, 뭐가 많고 복잡해서 어떤 것으로 해야 할지 고민이 되던 찰나 아는 지인분께서 보험 일을 하고 계신다고 해 직접 연락드려서 자세하게 설명을 듣고 안내해 주시는 보험으로 기간은 1년, 여행자 보험에 가입했다. 가격은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3만 원 정도?
은행잔고내역서 또는 예금잔액증명서
은행잔고내역서나 예금잔액증명서나 이름만 다르지 똑같은 개념이라고 한다. 은행마다 그냥 이름만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은행에 본인 명의의 서류를 신청하면 보통 뽑아준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아무 잔고 내역서를 준비하면 안 되고, 반드시 비자 신청자 본인의 명의여야 한다는 것과 통장 잔고로 조금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어쨌든 신청자가 다른 나라에서 정착하려는 것이니가 신청자가 그 필요한 재정을 갖고 있느냐 그것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아, 이 사람에게 이 정도의 금전적 상황이 있으니 이 나라에서 살 수 있겠네라고 심사할 때 참고한다고 보면 된다.
지인분들을 통해서 듣는 것들, 인터넷에서 본 정보들을 토대로 종합해 본다면 못해도 500만 원 정도는 있으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아빠가 크게 해라고 하셔서 조금 더 많이 넣었다.
또 중요한 포인트는 거래 내역도 있으면 좋다. 이게 그냥 비자 신청을 허가받기 위해서 일부러 넣었다는 느낌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그 큰돈이 갑자기 쑥 들어온 모양새가 아니라 입금과 출금이 조금씩 있는 정도로 서류를 뽑으면 된다.
출국날짜가 나와 있는 항공편 서류
반드시 출국 날짜가 기입된 항공편 티켓 서류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해당 날짜를 기준으로 비자가 발급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입국 날짜도 있으면 좋다. 그 이유는 불법체류를 막기 위한 일종의 장치인데, 입국 날짜는 비자가 발급되어도 취소할 수 있다. 하지만, 출국 날짜는 반드시 신중하게 고민해서 항공편을 예매해야 한다.
숙박 및 머물 장소 예약표
머물 곳이 나와있는 호텔 등의 예약표가 필요하다. 이것이 여행임을 증명하는 기본적인 서류다. 이건 영문일 필요는 없다.
비자 신청 완료 및 대면심사 서류
비자 신청을 완료함과 동시 대면심사 날짜를 선택할 수 있는데, 시간은 선택하지 못한다. 날짜를 선택하면 가장 마무리 단계로 해당 사이트에서 바로 PDF 파일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데, 이 서류를 뽑아서 실물로 대면 심사 날짜에 가지고 가야 한다. 모든 준비물을 다 준비했어도 이 서류가 없다면 끝이다.
튀르키예는 외국인에게 관광비자를 거의 주지 않는다. 옆국가들이 전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건너오는 난민들의 상황으로 전쟁과 관련이 없더라도 어쩔 수 없지만 튀르키예 정부는 외국인에게 관광비자를 거의 주지 않고 있다. 그래서 나도 처음에는 관광비자로 넣을 생각이었지만, 왔다 갔다 교통비도 있고, 신청비도 있고, 복잡해질 것 같아서
어차피 유학이니까 학생비자로 하지, 뭐...
라는 생각으로 학생비자를 준비했다.
학생비자에 필요한 서류는 위의 서류 말고도 더 있는데, 튀르키예 내 학교에 다닌다는 학생서류가 필요했다. 입학증이라든지, 학생증이라든지, 이런 서류가 없다면 학교에 요청해 필요한 서류를 만들기도 했다. 나는 봐둔 학교가 있어서 바로 문서를 뽑을 수 있었다.
튀르키예 비자 신청 사이트다. 주의해야 할 점은 사이트 자동 번역을 쓰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이유는 간혹 이상하게 번역되는 것들이 있어서 본인은 구글 번역기를 켜고 복사 붙여넣기로 하나하나 번역하면서 신청했다.
언어비자, 학생비자
튀르키예에서 조금 이름이 있거나 큰 대학교에는 퇴메르 TÖMER라는 외국어학당이 존재한다.
Türkçe ve Yabancı Dil Öğretimi Uygulama ve Araştırma Merkezi
의 약자로 뜻은 '튀르키예어와 외국어 응용과 연구 센터'를 뜻한다.
튀르키예어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다른 외국어들도 가르친다고 보면 된다. 보통 외국인들이 학생비자를 받기 위해 이 퇴메르 언어수업에 신청해 언어비자라 불리는 학생비자를 받곤 한다. 조금 쉽게 표현한다면 관광비자이지만, 내가 너네 국가 학생이야. 비자를 받아주겠니?라고 하는 거다. 그러니까 약간 학생비자를 미끼로 관광비자를 따낸다고 생각하면 된다.
바로 이스탄불에 생각해 둔 대학교에 입학 신청을 하기 위해 고등학교 학적증명서와 성적증명서를 영문으로 받았다. 전화해서 물어보니 이건 인터넷으로는 받기가 힘들다고 그래서 직접 찾아갔다. 학적증명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나 고졸이다 증명하는 서류고, 성적증명서는 한국에서 대학을 들어갈 때 내신이나 수능 점수를 확인하듯 나 성적 이 정도다 증명하는 서류다. 성적은 보통 이상만 하면 된다고 한다. 아예 못하는 정도만 아니라면 깎이는 건 없다고...
그리고 당연하게도 입학금과 등록금이 있다. 튀르키예 화폐인 'Lira 리라'로 보내주는 것이 편하지만, 외국인들에겐 달러로 받고 있다. 그래서 외국으로 돈을 보내기 위해서 해외송금을 찾아보니 뭐가 많고 복잡해서 그냥 은행을 찾아갔다. 막 서류들 작성해서 입학금과 등록금을 보냈다.
이후 해당 대학으로부터 입학증명서를 받을 수 있었다.
해외송금 확인서
이것이 필요한 이유는 비자를 발급받으려는 국가의 대학 입학증명서 조작을 막기 위한 서류다. 이 정도의 금액을 입학비, 등록비로 학교에서 신청자 본인으로부터 그 금액을 받았다를 증명해 주는데, 해당 대학으로부터 받을 수 있다. 이것도 해당 대학에서 입학증명서와 함께 보내달라고 요청하면 보내준다. 입학증명서만 보내주는 학교들도 있기 때문에 이건 꼭 요청하는 것이 좋다.
해외송금을 했다는 거래내역이 아니라 해당 대학으로부터 받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주의해야 할 것은 튀르키예의 영어 실력이다. 입학증명서에 신청자의 영문 이름이 기입되는데, 여권의 영문 이름과 같아야 한다. 대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영어 실력이 그리 좋지 않다. 나는 한번 영문 이름이 잘못 기재되어 있었다. 그래서 다시 요청했다. 그래서 해외송금 확인서도 주의하자.
'친구'의 뜻을 가진 Friends 프렌즈를 튀르키예 사람들은 프리엔즈라고 읽는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사실 이건 튀르키예어 발음 때문이기도 한데, 어쨌든 콩글리쉬처럼 튝클리쉬가 있다. 조심해야 한다.
비자 신청비
마지막으로 신청비다. 나는 교통비 제외 신청비로만 10만 원 정도를 들고 갔다. 환율에 따라서 차이는 있지만, 10만 원 안쪽으로 기억한다. 카드결제가 되지 않으니 꼭 현금으로 가져가야 했다.
이외에도 나는 조금 더 준비해 갔다. 왜냐하면 떨어지면 안 되니까. 그래서 공유하면 좋은데, 어차피 대면심사에서 필요 없는 서류는 심사하시는 분이 필요 없다고 놓고 가셔서 딱히 공유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혹여 이것을 보고 준비하시는 분들은 꼼꼼하게 더 알아보시고 준비하시면 좋겠다.
진짜 바빴다.
집돌이에게 외출이란 하기 싫은 것들 중 하나다. 신경 쓸 건 진짜 많지, 비자 신청 불허되면 다시 준비해야 되지, 뭐 해외송금이고 나발이고 보험이며 항공권 예약 등 대단했다.
한 2주 정도 지났을까? 허가가 되었으니 다시 대사관으로 와 여권을 챙겨가라는 연락이 왔다. 대면심사할 때 여권을 제출하도록 시스템이 되어 있어서 대사관에 여권을 두고 왔기 때문이다. 기쁜 마음으로 다시 한번 서울로의 외출을 준비했고, 나는 무사히 튀르키예 비자 그리고 여권과 함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몸도 뇌도 성인이었지만, 자란 건 육적인 것뿐이었지 생각은 절대 아니었다. 어린아이처럼 놀고먹다가 직접 내가 여행을 준비하며 서류들을 차곡차곡, 마치 스펙을 쌓듯 신경을 쓰다 보니 힘듦보다는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출국날짜에 기대감이 쑥쑥 오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친구들이며, 가족들이며, 교회 사람들이며, 주위 지인들까지 시간이 날 때마다 인사를 드리고, 기도도 부탁드렸다. 홀로 외국에 나가 여행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결심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주위 사람들도 가지 말라고, 왜 가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개고생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반응은 제각각 달랐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마음을 더 뛰게 만들었던 건,
대단하다
였다. 단순히 여행이었을 뿐인데, 그저 그곳이 궁금했을 뿐인데 내가 뭐라도 된 것 같다. 하지만 이때, 내가 청년의 때에 가지 않으면 더 이상 가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다. 어린아이의 막연한 소망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그때는 가서 어떻게 살까 보다는 나 간다!!라는 마음이었다.
두근 되는 마음으로 출국날이 다가왔고, 나는 인천국제공항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