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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나뜨 Sep 13. 2024

헤어질 용기

1년 뒤에 봐, 갔다 올게.

  온 가족이 차에 탔다. 


  차에서는 가족들의 고정석이 있다. 운전하시는 아빠가 운전석, 동생이 조수석, 엄마랑 내가 뒷자리에 보통 탄다. 하지만 중요한 일이 있거나 누군가 같이 끼어서 타는 일이 있다면 그분을 조수석에 태우고, 다 뒷자리에 탄다. 하지만 이 날은 엄마가 조수석에 탔던 것 같다. 집을 떠난다는 것이 큰 가족행사라고 여겼던 것일까.




  짐은 1년 치 짐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아니라 여름, 가을, 겨울, 봄, 여름옷이다. 튀르키예의 교육 과정은 시작부터 우리나라와 달랐다. 9월이 학년 초였다는 것. 우리나라는 모든 교육과정이 3월 초 학년을 시작으로 한다. 상반기를 1학기, 여름방학을 지나고 하반기인 2학기를 지나 겨울방학, 봄방학을 거쳐 다시 3월이 되면 새로운 학년이 시작된다. 하지만, 튀르키예는 하반기가 1학기였기 때문에 수업은 9월부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여름 출국으로 준비했고, 비자도 그렇게 받았다. 그래서 옷도 여름, 가을, 겨울, 봄 순서로 짐을 꾸렸다. 

  한 가지 튀르키예의 특별한 점이 있다면, 분명히 사계절이 있음에도 겨울만 6달이나 된다는 거다. 10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 장장 6개월 동안이나 겨울이다. 10월부터 추워지기 시작해서 11월이면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튀르키예의 동부 지역으로 갈수록 강원도보다 더 많은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가 2월까지 이어지다 날씨가 점점 풀려 본격 봄을 느낄 수 있는 시기는 5월 중순쯤이다. 바로 6월부터 뜨거운 햇볕을 느끼는 짱짱한 여름이 시작되니 사계절이 존재하기는 한다. 그래서 겨울의 두꺼운 패딩을 2벌이나 챙겼다.

  그렇게 완성된 이민가방의 모든 지퍼를 열었다. 3단 콤보!


  트렁크에 짐을 넣고도 백팩도 있었다. 참... 1년 치 짐을 싸려니 굉장했다.

인천국제공항과 인천대교 고속도로 [출처: 카카오맵]

  내가 기억하는 인천공항으로의 길은 길고 긴 인천대교였다. 다리가 너무 길었다. 가슴은 이래 막 두근두근 뛰는데, 마치 게임의 로딩창을 기다리는 듯한 인천대교 위 자동차의 속도는 내 마음을 더 뛰게 만들었다. 두근거리는 마음과 달리 차에서 잠은 아주 잘 잤다.

  2주의 짧은 선교 일정이든, 여행이든, 뭐든 집을 떠난다는 기분이 사뭇 달랐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막 시작하려 했다.





인천국제공항 출입구

  빠르게 짐을 내리고 공항으로 들어갔다. 몇 번의 선교로 많이 드나들었던 공항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떠난다라는 감정이 더 크게 와닿는 것 같았다.

  심사장으로 들어가기 전,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도 기억에 잊히지 않는다. 가족들의 상봉이 아닌 헤어짐을 고하는 그 짧은 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빨리 들어가. 잘 가~


  내게 빨리 들어가라는 부모님과 곁에서 응원하는 친척식구들, 친구들 모두가 내가 심사장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추기까지 자리를 지켰다. 내겐 이제 1년 치 짐덩어리와 백팩, 그리고 여권과 항공권만 남았다. 여름, 여행 성수기답게 북적북적 사람들이 많았고, 줄도 길었다. 짐을 끌어 모든 절차를 밟고, 드디어 게이트 앞에 선다.

  바로 앞에 비행기가 서있다. 아직 게이트가 열리지 않아 기다리고는 있지만 벌써 튀르키예에 도착한 기분이다. 설렘과 떨림 사이 나도 모르는 기분이 내 마음을 마구마구 뛰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차 안의 엄마를 보며 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긴장되는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 것 같다.


1년 뒤에 봐, 갔다 올게.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비행기에 오른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이스탄불국제공항까지는 12시간이라는 어마어마한 비행시간을 거쳐야 했다. 심지어 튀르키예와 한국의 시차는 한국이 6시간 더 빠르다. 그러니까 튀르키예 이스탄불국제공항에 도착하더라도 아직 같은 날이라는 거다. 그날은 남들보다 6시간 더 많은 하루를 보내게 된다는 거다. 


  학교에서는 어떤 일이 펼쳐지게 될지, 머나먼 타국에서 내 삶은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 어떤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인연이 있을지. 집돌이에게 집은 이제 없다. 새롭게 나아가야 할 밖만 있을 뿐이다.




  작가로 활동하며 작품을 쓰고 얻은 돈을 조금 보탠 건 사실이다. 맨 처음 작품으로 번 것은 감사의 의미로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드렸다. 하지만, 부모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애초 시작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또한 걱정되기에 선뜻 처음부터 허락하기도 힘드셨을 것 같다. 그리고 나 또한 편안하고 안락한 집에서 벗어나 나 홀로 감당해내야 하는 타국 생활을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헤어질 용기는 나의 삶을 향한 나의 용기였다. 그저 어린아이의 막연한 소망이었지만, 이 용기로 삶을 정리하고, 정리하며 준비했다. 편안한 한국에서의 삶과 헤어질 용기, 언제나 곁에서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는 가족들과 헤어질 용기, 즐거운 친구들과 헤어질 용기들. 이제는 새롭게 시작할 용기가 되어주었다. 


  어떤 일이 시작되고, 실수가 이어지고, 사고를 터트리며 아마도 혼란스러운 첫 시작이겠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추진력은 좋으나 매번 애매하게 남기기만 했던 내가 그냥 저지르고 처음으로 수습해 보는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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