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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나뜨 Sep 17. 2024

내가 살아야 할 곳

난생처음 해보는 집 구하기

  한참을 거쳐 도착한 곳은 어둑어둑해진 저녁의 이스탄불 국체공항이었다. 12시간이라는 장시간의 비행으로 피곤했던 나는 입국 심사 후 공항에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무거운 짐을 끌 힘도 없고, 복잡한 대중교통을 감당하리라는 마음도 없었기에 절차란 절차는 모두 마치고, 어느 한 구석의 의자에 앉아 잠을 했다. 우석부석 내 행색은 거지 같았지만, 지금은 남 눈치 보다 나의 피로를 회복하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학교 기숙사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래야 수업도 듣기 편하고, 서울보다도 더 복잡해 보이는 이스탄불의 대중교통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목표는 여행이 아니었던가? 튀르키예라는 하나의 나라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도 해보고 싶었다. 혹시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지체는 있지 않을까, 정 붙일 곳이 없으니 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멀리서도 수업을 들을 수 있게 온라인 수업으로 변경했고, 퇴메르에서는 신청 기간이 지나면 바꿔주지 않는다고 답하긴 했지만, 어찌어찌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시작된 나의 월세 집 구하기!!


Van Gölü 반굘류 (반 호수가 보이는 İskele 이스켈레 마을에서)


  튀르키예는 Lira (리라)를 사용한다. 여기에 Türkiye Lirası (튀르키예 리라)의 앞 글자를 따 TL (텔레)라고 부르기도 하는 튀르키예의 화폐가치는 당시 1 리라에 한국돈으로 40원이었고, 한국에 돌아올 때 쯤되니 30원가량으로 확 떨어졌다. 3-4년 전 교회 선교팀으로 꾸려졌을 당시에는 더 비쌌던 걸로 기억한다. 1 리라에 88원, 85원 정도였던 것 같은데, 5년도 안 되는 시간 속에 2배 정도 가치가 떨어졌다. 튀르키예의 화폐 가치는 떨어지는 와중 달러 값은 높아졌다. 외국인에겐 살기 좋은 경제 상황이지만, 현지인들에겐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오르락내리락 요동치는 중이긴 하고, 얼마 전 확인해 보니 40원까지 다시 올랐지만, 현지 친구들로부터 들은 소식으로는 더 떨어질 예정이고, 달러 값을 더 올라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 원화보다 튀르키예 리라의 가치가 높다고 말할 수 있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가격이었다. 나는 경제에 대해서 잘 모른다. 하지만 튀르키예 기준으로 자국 내 물가는 높은 편이지만, 한국 기준으로 튀르키예 물가는 굉장히 싼 편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한 끼 식사 뚝딱이라 불리는 Dürüm(듀륨)이 당시 이름 있는 브랜드 제외하고, 일반 식당에서 파는 것은 제일 비싼 음료를 시켜도 아무리 비싸야 100리라를 넘지 않았다. 즉, 한 끼 식사값으로 4천 원에 해당한다. 내가 한국에 돌아올 때만 하더라도 25리라였던 듀륨이 60리라까지 2배 이상의 상승을 보였지만, 아무리 비싸봐야 그마저도 1만 원 안쪽이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 때마다 가격이 오르는 이 미친 상황에서 나는 집값까지 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어차피 수업도 온라인 수업이니까 비교적 사람이 덜하고, 싼 도시로 가자! 해서 이스탄불의 정반대에 위치한 동쪽 끝 도시인 VAN (반)으로 갔다. 


  국제공항에서 수시간 정도의 잠을 자고 난 후 바로 국내선을 타고 Van으로 갔다. 아직 공항 밖을 나간 것도 아니었는데 벌써부터 복잡한 이스탄불과는 달리 Van은 꽤 한적했다. 확실히 이스탄불보다는 물가가 쌌다. 한국은 땅이 좁아서 도시마다 그렇게 가격 차이가 많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은데, 튀르키예는 바로 옆 도시 이동하는 데에만 시외버스 타고 기본 2시간이 걸리니 어마어마한 땅 덩어리에 도시 간 물가 차이도 있었다.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백화점 등의 브랜드가 있는 곳들은 전국 어딜 가나 비슷비슷한 가격이었지만, 그런 것이 아닌 일반 음식점이나 자영업 가게 등은 확실히 쌌다. 당연하게도 집도 쌌다.


  최대한 시내를 벗어나지 않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내가 외국까지 와서 집을 찾아다닐 줄은 몰랐는데, 직접 집을 돌아보며 찾게 되었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아파트나 빌라에 집을 판다는 문구와 함께 뭘 자꾸 더하는 수학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1+1 EV SATARIM
3+1 OFIS/DEPO

  이는 방 개수를 뜻하는 일종의 표현법인데, A+B라 할 때 A는 방개수, B는 손님방인 Salon (살롱)의 개수를 뜻한다. 튀르키예에서 집값은 보통 개수가 값을 좌지우지한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흔히 원룸이라 불리는 하나에 모든 것을 다 때려 넣은 집은 튀르키예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왜냐하면 손님방존재하기 때문이다. 진짜로 하나만 있더라도 손님방이 존재하기 때문에 투룸이 된다. 그래서 '1+0'집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위의 수식의 뜻은 '방 하나, 손님방 하나인 집을 팔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피스 사무용 방 3개와 창고용 살롱 1개짜리 집을 팝니다'이다. 내가 지금껏 봐온 집 중에 제일 큰 집은 5+2 집이었다. 진짜 크고, 럭셔리했다.


거실 (방 1)

  본 사진은 내가 직접 가본 1+1 집이었다. 사진으로만 보면 괜찮아 보이는데, 이곳저곳 하자가 있었다.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남아있는 집 사진이 없어서 첨부해 봤다. 내가 선택한 집은 사진 속의 집이 아니라 똑같이 1+1 집이지만, 더 싼 집이었다. 바로 집 쉐어링.


  퇴메르 수업을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하게 되면, 한국에서도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즉, 내가 굳이 튀르키예를 가지 않아도 한국에서 신청하면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러분들도 가능하다.

살롱 (방 2)

  그냥 한국에 카카오톡이 있듯 외국엔 Whatsapp (왓츠앱)이 있는데, 퇴메르 왓츠앱으로 연락해 등록금을 보내면 등록이 가능하다. 튀르키예어를 직접 현지인에게 배울 수 있다. 여하튼,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 수업에서 몇 한국인을 만났다. 튀르키예가 아니라 한국에서 수업을 들으려고 ZOOM (줌)에 들어온 분들도 있었고, 튀르키예에 와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도 있었다. 신기하게도 Van에 계신 분들이 있어서 같이 살기로 했다.

  시내 한 골목 1층에 위치한 집은 1+1 집으로 월세 3,000 리라였다. 한국에 돌아오기 2달 전에 집값이 5,000 리라가 되면서 비싸지긴 했지만, 5000 리라여도 굉장히 싼 집값이다. 그때 시내에서 1+1 집이라고 하더라도 7,000은 찾아볼 수도 없었고, 대부분 1만 리라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남자 여섯 명이 방 2개에 살려니 좀 힘들었지만, N분의 1을 하게 되면 500리라 밖에 되지 않으니 훨씬 좋았다. 거기에 가스는 가스통을 따로 사서 사용했고, 전기/물값도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았으니 한 달에 700리라 면 집에서 살 수 있었다.


  집을 보여주고 싶은데, 룸메이트의 허락을 받지 못했다. 한국인도 있었지만,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분들이라서 지금은 연락처도 없고, 연락처가 있어도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첨부하지 못했다. 그래도 좋은 시작이었다. 이렇게 집 문제는 끝났는데, 내겐 더 큰 위기가 찾아오고 있었다. 이건 다음 편으로 만나보기로 하자.




  튀르키예는 모든 물에 석회가루가 녹아있다. 깨끗하다고 하는 가공된 물, 즉 생수에도 석회가루가 녹아있다. 이유는 가공되기 전 물에 석회가루가 이미 녹아있기 때문에 최대한으로 잘 걸러진 물이 생수다. 어쨌든, 모든 물에 먹는 물이든, 먹지 못하는 물이든 여하튼 물에 석회가루가 녹아 있어서 반드시 물갈이를 맛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종종 나처럼 물갈이를 하지 않는 경우를 있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먼저 집에 살고 있었던 다른 한국인 분들은 2주 동안 엄청 고생했다고 한다. 

  석회가루가 삶에 미치는 영향은 굉장했는데, 바로 세탁기였다. 세탁기에 돌아가는 물도 석회가루가 녹아있다. 그래서 옷을 빨아서 건조하면 하얗게 가루가 옷에 떠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또 흰색이었던 티가 빨래를 했음에도 회색이 되는 기현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난감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석회가루가 있든 먹었든 상관없어졌다. 석회가루의 문제점은 세탁기 이외에도 빨랫감에 있었다. 세탁기에 빨래를 하는 순간 석회가루로 인해 옷이 얼마가지 못하고 헐어버린다는 거였다. 한국에서 셔츠나 청바지가 세탁기로 빨래로 번 정도 뒤에 헐어버렸다. 그래서 버렸다. 

  룸메이트인 남자 다섯 중 미국에서 오신 건축회사 CEO 분이 계셨는데, 톰브라운 흰색 셔츠를 세탁기에 넣었다가 탈수를 하고, 말렸는데 히리끼리한 회색 셔츠가 된 일이 있었다. 특히 흰 양말은 원래의 색을 잃었고, 속옷은 세탁기에 빠는 순간 찢어져 매주 새로 사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 세탁기는 잠옷이나 스포츠옷 등의 입는 옷이 주류가 되었고, 중요한 옷들은 매주 일요일만 되면 남자 여섯이 다 같이 빨래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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