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나뜨 Sep 24. 2024

나 혼자로는 안 돼

친구 만들기, 대화의 방법

  DLPDaily Life Plan으로 일주일 시간표를 뜻한다. 집에서 먼저 살고 있었던 미국인 분들이 추천해 주셨고, 나도 일주일을 알차고 더 뜻깊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DLP를 만들게 되었다. 어차피 매주 월화수목금, 평일 오전 9시부터 12시 10분까지 퇴메르의 언어 수업이 있기 때문에 시간표가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던 참이기도 했다.

첫 번째 DLP

  무조건적으로 저렇게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쉬는 시간도 있고 융통성 있게 빡빡하지 않게 짠 본인의 첫 DLP다.

  아침QT 항목은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하는 말씀통독 시간이다. 읽는 것뿐 아니라 묵상까지 포함되며 대략 20분에서 최대 1시간 정도로 이어진다. 사람이 많을수록 더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시간의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다. 그냥 자신의 묵상에 집중하면 된다.

  특이한 항목이 존재하는데, '사무실 출근'이다. 수업을 하려면 어쨌든 온라인이니 인터넷이 필요했는데, 튀르키예는 한국이 아니었다. 외국인들은 여권으로 튀르키예 유심칩을 살 수 있지만, 본인 국가에서 사용하던 핸드폰은 외국에서 3개월 이용하다가 자동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국제적으로 그런 시스템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튀르키예에서 최소 1년 동안 사용할 핸드폰을 새로 사야 했기 때문에 없는 당장에 인터넷 사용이 가능한 오피스를 먼저 집에 살고 계셨던 분들이 대여했고, 나도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가게 되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난다는 것이 나에겐 굉장한 고통이었다. 미국분들은 직장생활을 오래 하신지라 어려움이 없었지만(이분들은 오전 5시에 일어나서 아침운동을 하셨다...ㄷㄷ) 나는 대학 수강신청도 전부 오후수업으로 신청할 정도로 잠이 많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했다. 지금도 알람은 7시 30분으로 맞춰 놓지만, 실제 기상 시간은 10시 넘어서다... 여하튼, 첫 수업인 만큼 잘해보자라고 해서 첫날은 정확히 6시에 일어났다.




  첫 1교시 수업은 어땠을까? 아주 다행히도(?) 자기소개만 했다. 선생님은 튀르키예인이신 İpek Hoca (이펙 호자) 이펙 선생님이셨다. 선생님께서 본인을 소개하실 때에 실크로드라고 하셨는데, 그렇다. 튀르키예어 ipek의 뜻은 실크, 비단을 뜻한다. 그래서 자신의 찰랑찰랑한 머릿결을 만지시며 자신을 이렇게 기억해 달라고 단어를 설명하시며 본인 자기소개를 하는 것을 보며 단연 이 분은 언어선생님이시다고 생각했다.

  자기소개를 하면서 느낀 점은 늦게 들어온 나 말고 모두 튀르키예어 이름이 있었다. 우리가 영어수업할 때 자신의 영어이름이 있듯 여기서도 튀르키예어 이름이 있었다. 그래서 좀 탐이 났고, 튀르키예어 이름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사전에서 좋은 뜻을 찾아보기도 하고, 같이 듣는 분들이나 선생님께 물어보았을 때 자신이 직접 선택하는 것보다는 튀르키예에서 현지 친구들을 사귀면서 그들에게 부탁해 보는 것이 좋을 거라는 답을 똑같이 들었다. 수업 같이 듣는 분들도 언어 수업을 통해 배운 문법과 문장들을 이용해 직접 길거리에서 친구들을 사귀며 그들이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도 빨리 언어를 배워서 친구를 사귀고 이름을 얻고 싶었다. 


  언어 선생님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수업에는 튀르키예어 1000 단어와 퇴메르에서 만든 문법교재를 사용했다. 천 단어는 퇴메르에서 제공하는 수업자료는 아니고, 본인이 직접 만드신 거라고 한다. 그래서 다양한 언어로 된 뜻풀이는 없고, 본인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들의 언어로만 본인이 직접 만드셨다고 한다. 그래서 영어와 한국어 뜻풀이 밖에 없다. 중국인이 한 분 계셨지만, 글로벌답게 영어를 하실 수 있다고 하니 선생님도 한시름 놓으신 듯했다.


  첫날 첫 수업으로는 자기소개와 간단한 인사말, 생존언어, 기초 알파벳, 그리고 알파벳의 발음과 자모음, 단복수형, 대명사, 그리고 모음변형문법을 배웠다. 문법교재를 보아하니 시제도 있고, 불규칙 문법도 있고 다양했지만, 첫날이라서 쉬운 것들만 배웠다. 단기 선교팀으로 교회에서 튀르키예를 많이 방문했기 때문에 간단한 인사말과 발음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그게 많이 도움이 된 것 같다.

  튀르키예어는 한국어와 많이 비슷했다. 문장의 형성 방식도 똑같았다. 우리 국어는 주어-목적어-서술어로 구성되는데, 튀르키예어도 주어-목적어-서술어로 구성된다. 동시에 한국어에서 체언 뒤에 붙는 조사들도 튀르키예어에서도 존재했다. 주어에는 조사가 붙지 않았지만, 목적어나 수식어에 조사가 붙었다. 단복수형에도 조사 비슷하게 붙는 문법이 존재했다. 그래서 쉬웠던 것 같다. 영어는 막 바뀌고 변형되고, 발음도 한 글자에 여러 개씩이니 발음하는 것도 어렵고 그랬지만, 튀르키예어는 하나의 알파벳에 대응하는 발음도 단 한 가지뿐이라서 발음도 쉽고, 뜻을 구별하기도 쉬웠다. 언어와의 첫 만남을 그랬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과제 친구 만들기였다.




친구 만들기, 대화의 방법




  친구 없는 내가, 대화란 걸 해본 적이 있는 내가 과연 첫 대화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여긴 눈치 볼 일도 없고, 한국도 아니니 말 좀 못한다고 까일 일도 없으니 어찌 보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무실이 시내 중앙에 있어서 인프라는 좀 괜찮은 편이었다. 주위에 큰 백화점도 있고, 영화관도 있고, 공원들도 몇 있고 해서 돌아다닐 곳은 많았다. 그중에 첫 친구, 첫 대화를 만들기 위해서 근처 고등학교 옆 독서실에 가기로 했다.

  튀르키예는 독서실이 좀 특이한 형태로 되어 있었는데, (나도 한국에서 독서실을 가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온전히 공부만 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도서관이란 뜻을 가진 Kütüphane 큐튭하네는 말 그대로 책을 대여할 수 있는 도서관이지만, 거대한 건물 안에 도서관이 있고, 학생들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많은 교실이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한 교실 당 못해도 30명은 들어가고, 시간제가 아닌 선착순이다. 그리고 조용한 분위기를 위해 중간중간 경비원 아저씨(Güvenlik 규벤릭)분들이 돌아다니며 시끄럽다 싶으면 조용히 밖에서 대화하라고 다그치신다.

  직역으로 교육멘션이란 뜻을 가진 Eğitim Köşkü 에이팀 쿄싀큐는 도서관처럼 대여할 수 있는 서비스는 없으나 온전히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곳이다. 시간제는 아니지만, 한 번 들어가면 정해진 쉬는 시간이 되기 이전에 나올 수 없다.

  마지막으로 Gençlik Merkezi 겐츨릭 메르케지는 청소년 문화센터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예체능을 비롯해 큐튭하네도 있고, 규모에 따라 'Konser 콘셀'이라는 콘서트장이 존재해 악기도 배울 수 있다. 이곳에 있는 큐튭하네는 일반 큐튭하네와 같지만, 나머지 예체능의 교육 프로그램은 전부 돈을 내야 하는 학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정해진 시간이 있고, 정해진 선생님이 있는 학원. 하지만 시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라서 싸다.

  그러니까 큐튭하네는 자율학습이 잘 된다면 추천하고, 에이팀 쿄싀큐는 자율학습이 잘 되지만 엉덩이가 무겁지 않을 때 추천한다. 또 아침 일찍 올 경우 큐튭하네에서는 아침을 무료로 나눠주기도 한다. 동시에 대학을 준비 중인 입시생들을 위한 자리가 따로 마련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개인 컴퓨터까지 대여할 수 있다.'


  여튼, 사무실 근처 고등학교 바로 옆에 공원과 붙어 있는 큐튭하네로 향했다. 자율학습으로 진행되는 독서실답게 공원 벤치에 많은 학생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어찌 보면 수다를 떨기 위해 독서실에 온 학생들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엄청 많았다. 우리나라는 물기 있는 잔디밭에 그냥 앉는 경우를 많이 못 봤는데, 여기는 역시 달랐다. 밑에 깔개도 없이 그냥 잔디밭에 앉아 과자를 까먹고, 수다를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이 보였다. 어쨌든 배운 것을 써먹기 위해, 친구를 사귀어, 튀르키예어 이름을 찾기 위해 사람이 적은 벤치에 일단 앉았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봤다. 혼자 떨어져 앉은 학생은 없을까. 친구가 될 만한 학생은 없을까...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나 혼자 한국인이라는 것이었다. 튀르키예 한복판에, 그것도 관광지도 아닌 동쪽 끝 도시에 누구도 방문하지 않을 것 같은 도시에 내가 한국인이라는 거다. 나 말고도 클래스메이트인 한국인 분들도 있지만, 도시에 와서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도시가 꽤 넓었다. 

  모두가 나를 보지 않는 척 나를 보고 있었다는 거다. 흘끔흘끔, 나도 흘끔흘끔 눈이 마주칠 때면, 간단하게 고개를 끄덕였는데, 자매들은 난생처음 보는 외국인이 한국인이니까 놀라기도 했고, 인터넷에서만 보던 한국인이 여기에 있으니까 좋아하기도 했다고... 형제들은 마주치면 무심하게 노려보거나 신기하게 쳐다보기도 했다.


  그중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치면 피하고, 또 보고, 피하고 하는 형제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을 목표로 잡았다. 조용히 자유시간을 만끽하다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이전 06화 처음 만난 친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