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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나뜨 Oct 01. 2024

내겐 조금 불쾌한..

짧디 짧은 언어로, 대화의 방법

  3명의 형제가 있던 작은 벤치였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선선한 날씨에 잠깐 쉼을 청하러 나온 것 같았다. 내가 그들에게 다가가서 인사했을 때, 


나         Merhaba. (메르하바) 안녕.

형제들  Merhaba. 안녕.


  서로 인사했다. 편안하게 수업 때 배운 것들, 기초 문장들을 천천히 질문했다. 간단한 이름 묻기부터!!


         Sizin adınız ne? (씨진 아드느즈 네?) 너희들은 이름이 뭐니?

Murat  Benim adım Murat. Onların adı Sinan ve İnan. (베님 아듬 무랏. 온라른 아드 씨난 붸 이난.) 내 이름은 무랏이고, 여기는 씨난이난이야.


  내가 튀르키예에서 제일 처음 말을 걸어본 친구였다. 그 이후로는 나이부터 시작해서 간단하게 가족들, 친구들, 학교, 장래희망, 좋아하는 음식, 연예인, 가고 싶은 나라, 보고 싶은 영화, 가고 싶은 대학교, 한국에 대해서 아는지 등 할 수 있는 단어들은 모두 총동원해서 질문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질문하고 그들은 대답했지만 나는 질문만 했고, 그들의 대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나의 첫 대화였다. 단순히 질문만 해야지라고 생각했던 내게 그들의 현지인 발음과 문장 구조, 그들 만의 줄임말 등 알아듣지 못한 나의 첫 대화였다.

  당연하게도 질문이 끝나고 나니 내겐 더 이상 질문 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뭘 질문해야 할까, 뭘 물어야 조금 가까워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조용히 혼자 그들 앞에 앉아 생각하던 중 그들이 먼저 내게 질문했다.


Murat  Neden burasına geldin? (네덴 부라쓰나 겔딘?) 왜 여기에 왔어?

              İstanbul yada Ankara gibi birçokları var. (이스탄불 야다 앙카라 기비 비르촉라르 봘.) 이스탄불이나 앙카라 등 많은데..


  무랏의 말은 굳이 왜 반이었냐는 질문이다. 그러니까 이스탄불이나 앙카라 같이 관광지는 더 많은데, 왜 굳이 튀르키예 동쪽 끝 지방에 왔냐는 거다. 다소 불편하게 들릴 수 있으나 많은 관광객들이나 외국인들이 관광 목적으로 서쪽을 찾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기에 이들에겐 외국인을 보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고, 신기한 경험이기에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무랏뿐 아니라 다른 대화했었던 현지인들에게서도 자주 들었다.

  나는 언어를 배우며 튀르키예를 여행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더 좋은 도시도 많으니 다른 곳도 가보라고 조언해 줬다. 그리고 다른 글에서 말했다시피 종교에 대한 질문들도 있었다. 국교가 이슬람이다 보니 외국인에게 종교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 뭔가 전도를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순히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게 무랏의 설명이었다.(<-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가 구글번역기를 켜서 보여줬다.)


  아쉽게도, 이들과의 첫 만남은 굉장히 짧았다. 무랏이 질문한 것은 그것뿐이었고, 바로 공부하러 들어가야 한다며 씨난, 이난과 함께 독서실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또다시 벤치에 나 홀로 남겨졌고, 새로운 대화를 이어가려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랬더니 또 다른 무리가 나를 보고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서 무랏에게 질문했던 것들을 똑같이 질문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대답을 들었다. 그들도 내게 종교가 뭐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했더니 그들의 머리에서 아는 한 모든 지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튀르키예는 국교가 이슬람이고, 종교청이 국가기관으로 따로 존재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종교를 가르친다. 과목의 이름은 따로 있지만, 어쨌든 중심이 되는 종교는 이슬람이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이슬람이 아닌 다른 모든 종교에 대해서는 편협한 시선으로 가르친다는 거다. 온전히 이슬람이 맞다는 식으로 가르친다. 그래서 내가 들었던 말들 중 심했다고 생각하는 말은...

Neden o bizim için öldü? (네덴 오 비짐 이친 올듀?) 왜 그가 우릴 위해 죽었어?

다. 개신교에서 예수님의 존재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모든 것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분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임을 믿는 것이다. 하지만 이슬람에서 예수님은 인간이자 선지자일 뿐, 하나님의 아들도, 신적인 존재도 아니다. 단순한 수많은 선지자들 중 많고 많은 사람일 뿐이다라고 가르치기에 조금 내겐 불쾌하지만, 어쩔 수 없고, 그들의 시선엔 당연한 질문이다.


  그래서 설명했다. 내가 신학적 지식은 부족하지만, 할 수 있는 말은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죄'라는 것을 해결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하셨다. 그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모든 죄가 해결되었고, 우리는 구원받았다고 말했다. 당연히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슬람에서 신은 신이다. 개신교에서 말하는 삼위일체(성부:하나님/성자:예수님/성령:성령님)의 개념도 없고, 마리아는 요셉을 통해 예수를 임신했고, 예수는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인간, 예수를 신적으로 묘사하나 신은 아니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성령님을 무함마드라고 칭하기도 하는 한편, 심지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지만, 이슬람의 신인 '알라'는 개입하지 않는 그저 방관자로 여겨진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반드시 천국에 갈 수 있다(예수님을 믿는다는 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그의 피를 믿기에 그를 구원자로 인정한다는 것.)는 확신이 있는 반면, 이슬람의 무슬림들은 그저 방관자인 알라의 개입이 없어 그저 착한 일을 많이 하면 천국 갈 수 있겠지, 가난한 자들을 도우면 천국 갈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확신 없이 매일매일 어둠 속에 살아간다. 그래서 너희 천국 갈 수 있어?라고 물어보면, 100% 

İnşallah (인샬라.) 신의 뜻대로.

라고 말한다. 자기도 모른다는 거다. 신만 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슬람 교리대로면 알라신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슬람에서 말하는 천사는 사람의 양쪽 어깨에 착한 일을 했을 때 착한 일을 적는 천사, 나쁜 일을 했을 때 나쁜 일을 적는 천사가 있는데, 이때 그 사람이 죽으면 착한 일과 나쁜 일을 저울해 착한 일을 많이 하면 천국으로, 나쁜 일을 많이 했다면 지옥으로 보내기 때문에 알라신도 그 사람이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는 그 사람이 일단 죽어야 안다는 거다. 그래서 이들을 봤을 때 이런 질문들 불쾌하고, 그렇지만 조금 안타까웠다. 그래서 내가 경험했던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짧게 말했다. 그리고 헤어졌다.

  왜냐하면 튀르키예에서는 만 18세 이상의 사람에게 타 종교를 전하는 것이 불법이기 때문이다. 국교가 정해져 있으니 당연할 수밖에. 그래서 그 친구들이 나를 신고하면 나는 경찰서 가야 되는 거고, 누군가 나와 이들의 대화를 촬영해서 신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게 말할 것도 없고, 처음 만났으니까 종교적인 주제로 깊게 나눌 수 있는 언어도 안되고,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라고 말하고 헤어졌다.


  그랬다. 그렇게 나의 첫 대화는 서로의 주거니 받거니가 없는 나의 일방적인 대화로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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