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서 불가리아로 건너가는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스탄불은 튀르키예의 문화 수도라 불릴 만큼 서울의 두 배 인구(약 2천만 명)가 살고 있다. 서울처럼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을 끼고 있는 형태로 2개의 큰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또 거대한 면적답게 여객선, 전철 또한 이용률이 높은 대중교통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으며 한국보다도 더 복잡한 교통 환경을 볼 수 있다. 또한 이스탄불 시내에서 시내 밖으로 나가는 데에만 무려 2시간 이상이 소요되기에 복잡한 시가지를 구성하고 있다. 이렇기에 지방 토박이, 뚜벅이로 과연 내가 이스탄불을 횡단하고, 다른 도시로 넘어가 불가리아를 다녀올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불법체류를 피하려면해야만 했다.
출처: 구글지도
튀르키예 서쪽 끝, 국경이 맞닿은 국가로는 불가리아와 그리스가 있다. 또 불가리아 국경과 이어지는 도시는 Edirne 에디르네와 Kırklareli 큵크라렐리가 있다. 이 중에서 나는 에디르네로 가기로 했다. 저 위의 사진에서 에디른이라고 적힌 곳이 바로 에디르네의 영문 발음이다. 하지만 도시에 갔다고 해서 끝난 것도 아니다. 국경까지 가려면 시골에서도 시골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에디르네의 Kapıkule Sınır Kapısı 카프쿨레 스느르 카프쓰로 향했다.
이 일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완벽한 계획을 짰다. 이대로 진행이 되면 좋겠지만, 혹시 모를 가능성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국경을 넘기 위해 당시에 핸드폰 노트에 적은 시나리오 사진을 첨부해 본다.
출처: 작가 본인의 핸드폰에 저장된 삼성 노트 캡처
천천히 하나씩 설명해 보면, 이스탄불 Esenler Otogarı (에센렐 오토가르) 에센렐 시외터미널로 이동하는 것이 첫 단계였다. 불가리아가 바로 이스탄불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경이 있는 도시로 대형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메트로(전철, 경전철, 지하철 등)를 이용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경찰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벌금을 처리하지 못한 튀르키예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이다. 경찰에게 걸린다면 잡힐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불법체류자의 위치는 내가 알기로는 외국인노동자로 인해 인식이 많이 좋지 못한 것으로 느낀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불법체류자가 굳이 외국인노동자가 아니더라도 전쟁 난민, 가난 등의 이유로 해당 국가로부터 출국할 때 벌금/세금만 낸다면 그렇게 중대하게 여기는 범죄는 아니라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튀르키예에서도 불법체류의 인식은 좋다고 볼 순 없으나 엄청 나쁘다고 볼 수도 없다. 하지만 경찰에게 걸릴 시 곧바로 경찰서로 호송되기 때문에 10일 이내로 모든 것을 처리해야 하는 나에게는 경찰이란 존재는 장애물이었기에 반드시 시내버스로만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저찌 시내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에센렐 시외터미널에 도착했다. 하지만 여기서 표를 예매할 때 중요한 점이 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에디르네라는 도시이기 때문에 에디르네라는 곳을 목적지로 두고 표를 구매하면 안 된다. 반드시 불가리아의 어느 한 도시를 목적지로 두는 표를 구매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에디르네를 목적지로 두면 에디르네 터미널까지만 갈 수 있다. 하지만 불가리아의 어느 한 도시가 목적지일 경우 최대한 국경에 가깝게 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굳이 에디르네 터미널에서 교통을 갈아타는 번거로움과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가리아의 수도인 소피아를 목적지로 표를 구매했다.
버스기사에게 반드시 말해야 하는 것이 있다.
"나 외국인이고, 불가리아 소피아로 갈 건데, 벌금 내야 해. 그러니까 국경에서 내려줘."
말을 해야 한다. 그래야 버스기사가 국경에 내려준다. 말을 하지 않으면 버스기사는 그냥 국경을 넘어 불가리아 소피아로 건너간다. 그렇게 되면 나는 진짜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출입국 할 때 반드시 여권에 도장을 찍는다. 그렇기에 국경을 그냥 지나간다는 건 내가 불가리아 입국 도장을 찍지 않았으니 문제가 된다.
하지만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내려준다. 그러나 벌금이 있을 때와는 경우가 다르다. 벌금은 국경검문소에서 특수한 절차를 밟고 벌금을 내야 한다. 그 과정이 너무 길고 복잡하기 때문에 대형버스가 국경을 넘을 때 탑승자를 확인하는 절차의 시간에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국경검문소에서 국경을 넘으려는 모든 차량들을 검문한다. 이때 출입국도장도 여권에 찍어주는데, 이때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이때도 똑같이 호송된다. 그렇기에 반드시 국경 근처에서 내려서 검문소에 두 발로 걸어서 들어가야 한다.
나는 버스를 타고 Edirne Kapıkule Sınır Kapısı (에디르네 카프쿨레 스느르 카프스) 에디르네 카프쿨레 국경 관문에 도착했다. 하지만 국경이 거리적으로 멀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검문소까지 더 들어가야 한다. 30분 택시를 탔음에도 대형버스 값과 비슷했다. 외국인이라고 덤터기 씌운 것 같은데, 내겐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빨리 벌금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1차적으로 흥정만 하고 200 텔레 깎은 1천 텔레로 30분을 달려 제대로 국경검문소에 도착했다.
그곳이 바로 불가리아와 튀르키예를 잇는 국경이다. 마치 한국의 톨게이트처럼 생겼다. 낮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필 한겨울 1월의 어두운 밤이었다. 진짜 추웠다. 엄청 추웠다.
국경을 넘으려 출국 도장을 받는 차량들이 일렬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한쪽 끝에는 대형버스가 모든 탑승자와 실린 짐칸을 다 열어 출국심사를 진행 중이었다.
나는 서둘러 관문소에 들어갔고, 출입국 심사장 앞에 섰다. 안은 군사지역이라서 사진은 찍을 수 없었다. 하지만 국제공항의 출입국심사장과 똑같이 생겼다. 짐은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검사 되고, 사람은 여권을 들고 심사원의 안내에 따라 심사를 받는다. 나도 사람들 사이에 껴서 조용히 심사를 받고, 벌금을 내야 한다는 서류를 받아 벌금을 내러 안내되는 건물로 갔다.
거기서 벌금을 내기 위해 또 다른 서류를 받았고, 그 서류를 저 어둔 불가리아와 튀르키예 국경 사진에서 보이는 작은 사무실로 갔다. 가서 돈을 내면 이 사진의 영수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벌금은 국적과 체류일에 따라 달라진다. 옆에 있던 분은 미국인 분이셨는데, 나처럼 3개월 정도 불법체류 하셨는데 5,500 텔레 정도 나오셨다. 미국 국적이라서 더 비싼 것 같다.
이전 글에서도 여러 번 말했던 것 같은데, 튝클리쉬는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저기 제출자 성명이 본인 여권의 영문 이름과 같아야 한다. 나는 무슨 이상한 이름이 적혀 있어서 직원 분과 대판 싸웠다. 그분은 이름은 상관없다. 어차피 여권번호가 제대로 정확하게 나왔으니 이런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라고 하셨지만, 나에겐 모든 것이 정확하게 잘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비자 문제고, 불법체류고 범죄자고 뭐고 상황이 위험한데 중요한 문제였다. 그래서 그분은 나를 이해 못 하시고, 나는 그분을 이해하지 못해서 20분 정도를 싸워서 정확한 내 영문 이름으로 다시 영수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다음은 뭘 해야 되냐면, 국경을 넘어 출입국 도장을 받아야 했다. 가져온 짐이라고는 내 벌금이 담겨있었던 재정봉투와 조금의 먹을 것뿐이었기에 따로 검문을 받을 짐은 없어서 몸만 다녀오면 되었다. 출입국심사장에서 여권에 국경관문을 통과했다는 도장을 받고, 불가리아로 국경을 넘었다.
이게 또 낭만이 있었다. 나는 차를 타고 왔다지만, 어차피 다시 튀르키예로 돌아갈 거라서 걸어서 국경을 넘었는데, 그곳이 도로였다는 것이다. 저 어둔 불가리아 국경검문소의 도로 위를 걸었다. 튀르키예와 불가리아 국경의 거리는 40미터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40미터를 걸어서 불가리아 군인을 만났다. 다행히 튀르키예어를 할 수 있는 분이셨고, 간단하게 안내를 받고, 튀르키예에서 출국 도장을 받으며 출국했다.
그렇게 나는 벌금과 출국 일정을 마무리했다.
아주 재미있는 글이 될 다음 글에서 불가리아 입국의 진실과 거주권 결과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