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없는 땅, 대화의 방법
걱정되면서도 짧지만 다른 나라에 가본다는 기대감으로 국경을 넘었다. 튀르키예에서 출국한 것이다!! 하지만 굉장히 웃긴 일이 일어났다. 바로 불가리아 입국 도장은 찍지 않았다는 거다. 처음에는 막 뉴스나 인터넷 등지에서 다른 나라가 한 걸음으로 붙어있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튀르키예와 불가리아는 달랐다. 지도상으로는 국경선으로 검은 줄 그어 있는 것뿐이지만, 내가 직접 겪어본 결과 튀르키예 국경과 불가리아 국경 사이의 거리는 꽤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튀르키예에서 출국을 한 상태이지만, 불가리아로 입국하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즉, 나는 지금 어느 국가에도 입국하지 않은 상태라는 겁니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왼쪽 체크표시는 불가리아 쪽 국경검문소이고, 오른쪽 체크표시는 튀르키예 쪽 국경검문소이고, 도로 위로 파란색의 선이 덧씌워진 것 볼 수 있는데, 도로로는 불라가리아와 튀르키예가 연결되어 있지만, 파란색 선은 끊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검문소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달랑 검은선으로 나라가 나뉘지만, 실제로 출국도장을 찍고 국경검문소를 지나면 어느 누구의 나라도 아닌 땅이라는 겁니다.
그 증거로 여권 도장을 보면 알 수 있다. 튀르키예 출국도장만 있고, 불가리아 입국 도장은 없다는 사실!
좀 상황이 웃겼다. 나는 지구상에 존재하는데, 시스템 상으로는 지구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래는 바로 다시 튀르키예로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심사 보시는 분이 설명하시길 시스템 적으로 처리되는 시간이 2시간 정도라고 해서 2시간 동안 뭐 하지 고민하다가 근처에 쇼핑몰이 있어서 거기에 푸드코트나 로비 의자에 앉아있기로 했다.
또 지도를 보면 빨간색 표시는 내가 지나온 Kapıkule Sınır Kapısı 튀르키예 국경검문소이고, 파란색 체크표시는 2시간 동안 기다리기 위해 방문한 쇼핑몰이다. 면세점이다. 그런데, 시간대가 밤늦은 시간이라서 문을 닫았지만, 가끔 국경을 걸어서 넘어오는 사람들을 위해 뒤쪽 쪽문을 열어둔다고 해서 경비원을 따라 들어갔다.
하지만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5천 텔레 정도로 벌금을 낸 그 미국인 분들이 먼저 말을 걸어주셔서 함께 드림웍스의 '이집트 왕자' 영화를 봤다. 그런데 인터넷이 통하지 않아 아마 제대로 스토리를 이해한 건 20여 분 정도밖에 안된다. 그래도 처음 보는 외국인들과 시스템 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이상한 곳에서 아주 새로운 경험이었다.
2시간이 지나고 튀르키예 입국 도장을 받고 다시 입국했다. 여권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카프쿨레 국경 확인도장이 따로 있고, 출입국 도장이 따로 있다. 그리고 나는 해외여행하면 거의 항공편을 통해서 다른 나라에 들어가기 때문에 출입국도장에 비행기 표시가 있지만, 걸어서 다녀온 만큼 자동차 모양이 찍혀 있었다. 이것도 나름 신기했다. 그리고 직원분이 출입국 도장을 헷갈리셔서 2024년 1월 1일 출국 도장을 찍어주셨는데, 펜으로 도장 찍힌 곳 위로 'iptal (입탈) 취소'라고 적으시고 다시 찍으셨다.
여하튼 이런 일이 있었다. 나는 길고 긴 버스를 타고 다시 에센렐 시외터미널로 돌아와 다시 교츠 이다레시로 향했고, 다행히 모든 일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어려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Van 반에 돌아와서 저는 또다시 수업을 열심히 다니며 언어 실력을 키웠고,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저번에는 Murat 무랏을 소개했으니 새로 만난 친구를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이름은 Yunus 유누스이고, 한국어로는 '돌고래', '요나(성경인물)'로 해석됩니다. 이슬람 국가에서 대게 선지자의 이름을 많이 사용하니 아마도 '요나'를 생각해서 지은 이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친구 본인도 '요나'라는 선지자를 좋아한다고 했으니까요.
이 Yunus라는 친구는 원래 만날 생각이 없었어요. 애초에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었고. 그런데, 원래 사귀었던 친구가 자신의 친구가 생일이라서 생일파티 자기 집에서 하니까 놀러 오라고 초대받아서 갔을 때 만난 생일파티의 주인공입니다. 또 Van 반에 있는 대학교에서 건축학과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또 웃긴 것이 참 세상 좁다고 유누스의 여자친구의 외국인 친구가 제가 듣고 있던 언어 수업에 참석하고 있었고, 심지어 한국인이었다는 겁니다. 어떻게 우연도 이런 우연이...!! 그래서 유누스는 꽤 빠르게 친해진 친구입니다.
또 유누스와 함께 건축학과 수업을 도강(?)한 적도 있고, 교수님도 그렇게 반대하시지 않으셔서 함께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고, 한국 거리는 어떠냐, 한국은 내진설계 좋냐, 지진 훈련 같은 거 있냐, 질문에 어정쩡하지만 간단하게 답도 하고 그랬습니다. 건축학과라고 거의 모든 질문이 지진과 내진설계에 관련된 질문이었는데, 아마도 2023년 2월 6일이 발생한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으로 튀르키예, 특히 동남부 지역 사람들에게 상처가 많았기 때문일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인스타그램으로 친구들과 종종 연락하는데, 아직도 가족의 죽음에 대한 아픔, 상처로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있고, 튀르키예는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이 죽으면 그 사람이 행복해 보이는 사진을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남기는 문화가 있어서 더 죽음에 대한 공포, 더 죽음에 대한 아픔이 깊게 자리하는 것 같기도 해요. 심지어는 1년이 넘었음에도 아직도 상담센터를 다니는 친구들도 있고.
한 가지 놀랐던 것은 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대지진이 났을 때 뉴스 보고 저는 속으로 기도한 것 말고는 없는데, 저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유누스였습니다. 대지진 당시에 한국인들이 구호대로 튀르키예에 와서 도와줘서 고맙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튀르키예인들이 한국인을 만나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백이면 백, 이 말을 꼭 하는데. 그것은 바로 'Kardeş (카르데싀)'와 'Kanka (캉카)'입니다. 카르데싀는 '형제'라는 뜻으로 한국전쟁(6.25 전쟁) 당시 튀르키예에서도 병력을 지원해 줬기 때문입니다. 또 캉카는 '친구'라는 뜻이지만, 어원이 '피'라는 뜻의 'kan (칸)'에서 왔기 때문에 사용되는 의미는 '피를 나눈 형제'로 해석됩니다. 튀르키예와 한국의 관계는 '형제의 나라', 또 '피를 나눈 형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 튀르키예의 이미지는 '터키'로 인해 칠면조에 묻혀가는 듯 보이지만, 아직도 튀르키예인들은 한국인들을 향해 '형제의 나라', '피를 나눈 형제'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정'은 튀르키예에서 더 많이 느껴집니다. 난생처음 보는 사람에게 집에 들어오라며 문을 열어주는 문화가 어찌 보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튀르키예에서는 이웃을 초대하는 문화는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서쪽으로 갈수록 냉대해지는 사회 분위기는 어쩔 수 없습니다만... Van 반에서는 친구들 대부분의 집에 초대받아서 놀라갔습니다.
또 시내를 벗어나 마을에 조금만 들어가도 자신의 할아버지가 한국 전쟁에 참전하셨다고 말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 손을 어루만지시면서 헛되지 않았구나. 아버지/할아버지/조상의 값진 죽음으로 네가 여기에 있구나.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마치 자신의 손주를 대하시듯 더 먹어, 여기 더 있어하시면서 밥도 주시고, 간식도 주시고, 챙겨가라고 한 박스 더 주시기도 합니다.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갑니다. 당시에는 긴박하고 긴장되지만, 지나면 잊어버리고, 또 반복하게 되는.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건, 모두 과거의 실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또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오늘도 살아갈 수 있을까 심각하지만, 내일의 걱정은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1분 1초의 앞도 모르는 힘없는 인간에게 걱정은 필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인도자가 있습니다. 각자의 인도자가 어떤 분 일지는 모르지만, 저겐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집 나가서 개고생도 해보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들도 경험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두렵기도 했지만, 직접 몸으로 부딪혀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각각의 삶의 의미를 다르겠지만, 첫 번째 주제인 '대화의 방법'에 제가 내린 결론은 '삶'입니다.
요즘 시대의 청년들을 보면 실수와 두려움을 무서워하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잘 되기 위해서, 성공을 위해서 살아가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마치 실패하면 죽을 것처럼, 마치 돈을 못 벌면 지옥에라도 떨어질 것처럼, 마치 계획한 대로 되지 않으면 죽어버릴 것처럼. 하지만 청년의 시기는 실수하고 실패하는 시간 아닙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누구도 완벽할 수 없고, 누구도 완전할 수 없으니까요. 어른들로부터 자신의 청년의 때를 회상할 때 '아쉽다, 더 어릴 때 해볼 걸'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튀르키예로 떠난다고 하셨을 때 '대단하다'라는 말을 듣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실수해도, 조금 못해도, 한 번 도전해 보세요. 제가 튀르키예로 간 것처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여호수아 1:9]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믿음 있는 자로 여러분들께 소개드리고 싶습니다. 각자의 삶에서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가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