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나뜨 Oct 18. 2024

뻬쓰뜨쁘렌뜨

지금까지도 칭한 칭구, [No.2 개고생, 말하지 않아도]

  Kayra 카이라는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연락을 하고 있는 친구다. 내가 한국에 돌아올 때 많이 만나지 못했다. 수업도 있고, 처리해야 할 불법체류와 거주의 문제도 있었고, 바빴기에 친구들을 많이 만나지 못해서 간단하게 한국 연락처라든지, SNS 등의 계정을 알려주지 못했다. 하지만... instagram에 메시지가 온 것 아닌가? 심지어 인스타그램 그 계정은 내가 한국에 돌아오고 난 후에 만든 계정이라는 거다!! 어떻게 그는 나를 찾았을까...? 심히 불안하면서도 다행히 친구와 연락이 닿았다는 것이 좋았다. 

  이건 카이라와 인스타그램으로 주고받은 메시지 중 일부다. 8월 9일 갑자기 밤 10시 2분에 연락이 왔다. 나의 소식이 궁금한 듯 내 안부(내 튀르키예 이름은 EGE 에게다.)를 물었고, 나는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카이라는 새 학년과 새 학기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아마 지금은 12학년 1학기를 잘 보내고 있겠지. (튀르키예에서 학년의 시작은 9월이다. 한국에서는 3월인 것에 반해 튀르키예는 여름부터 학년이 시작된다.) 또 어떤 날은 마치 구글번역기를 돌린 듯한 어색한 한국어 문장이 왔고, 빨리 오라고 응원했다. 또 갑자기 한국에 대한 뉴스를 보고 온 것인지, 아니면 학교 숙제였던 것인지, 꽤 심도 있는 질문을 남겨서 내 의견을 조금이나마 피력해 보았다. 하여튼 카이라와는 아주 잘 지내고 있다.


  튀르키예에 있을 때는 갑자기 카이라가 집에 놀러 왔다. 어느 저녁에 카이라로부터 집에 잘 들어갔냐는 메시지가 와 있었고, 답을 하기 위해 전화를 했을 뿐인데 바로 다음 날일줄은 몰랐지. 원래 하우스메이트들은 각자의 일정이 있어서 그날 집에는 나 밖에 없었기에 카이라가 와도 뭐 그렇게까지 당황스럽지는 않았지만... 현관문 바로 앞에 내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황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집에 와서 뭘 했는가? 실컷 노래를 부르다 갔다. 

  이전 글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카이라는 한류, K-POP, 한국이라면 미치도록 좋아하는 친구였는데, 한국인인 나도 모르는 신인 그룹들의 이름까지 줄줄 외우며 노래를 부르다 갔다고 한다. 제일 좋아하는 그룹은 당연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블랙핑크다. 나는 대표적인 노래 몇 개만 알지 수록곡까지 자세하게 아는 정도는 아닌데, 얘는 다 안다. 뭐 막 인터넷 찾아가지고 이런 게 언제 나왔고,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했고, 뭐 입덕 포인트는 여기고, 자기는 이때 입덕했고, 최애는 누구고, 좋아하는 노래는 이거고, 저렇고 이렇고... 그랬다. 그러다 갑자기 유튜브 알고리즘을 따라 상다리 부러지는 대한민국의 한상차림을 소개하는 영상이 나왔고, 카이라가 라면을 먹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라면을 끓였다.


  한국에서는 컵라면, 봉지라면 등 목적에 다라 면의 크기와 굵기가 다르다. 하지만, 튀르키예는 면음식이 전문 식당이나 스파게티 아니면 집밥으로 보기 힘들 정도니 당연히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우리가 아는 라면발을 보기가 힘들다. 그래서 라면스프는 있지만, 라면의 그 느낌이 날까? 걱정이 되었다. 카이라는 라면을 먹고 보고 싶다고 했다.


  한국의 음식들에는 거의 대부분 돼지가 들어간다. 라면스프에도 당연히 돼지가 들어가는데, 나는 분명히 카이라에게 말했다. 너희 이슬람에서는 돼지가 죄인 것을 알고 있다. 괜찮으냐? 먹어도 괜찮으냐? 그랬더니 괜찮다고 그랬다. 의외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종교지도자로 열심히 하고 계실 텐데, 카이라도 미래엔 그들을 따라서 종교지도자가 될 것 아닌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카이라의 답은 나는 이슬람이 싫어였다. 전혀 닮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졌다. 

  일단 먹고 싶다고 하기도 했고, 돼지 들어가도 괜찮다고 했으니 라면을 끓였다.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스프를 풀어 맛있게, 꼬들꼬들하게 끓였다. 같이 먹을 계란과 음료수를 챙겨서 상을 펴고 먹으면서 물어봤다.


이슬람이 왜 싫어? 

  이런 질문은 당연한 질문이다. 학교에서도 종교를 가르친다면 아마도 좋은 부분만 가르쳤을 것이다. 국교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또 종교청이 국가기관으로 존재한다면 카이라의 부모님도 엄청난 혜택이 있을 테고, 집도 잘 사는 편이니 카이라의 싫다는 그 답은 아주 특이한 케이스였다.


그냥, 할 게 많아서..? 

  나는 이 답이 진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답하고 싶지 않아서 핑계 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좀 시간이 지나고 더 가까워진 후에 그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이전에도 말했듯이 카이라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종교지도자로 정부의 물질적인 지원도 풍족했다. 그 덕에 집이 잘 살았다. 그래서 어렸을 적 카이라도 할아버지 따라서 종교지도자가 된 아버지를 따라 종교지도자로의 길을 걸으려고 했다. 그래서 실제로 종교지도자 İmam 이맘을 양성하는 초등학교도 졸업했다. 언젠가 할아버지를 따라 Cami 자미(이슬람사원)에 갔다고 한다. 이때 아버지가 한 번 Ezan 에잔(기도)을 해보라고 하셨다. (이슬람권 나라에 가면 하루에 다섯 번 크게 울리는 아~~~ 아아아~~~ 아아아아~~~ 소리를 뜻한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종교지도자로 계신 사원에서 마이크를 대고 에잔을 크게 불렀다. 그때 삑사리가 났고, 부끄러워서 뛰쳐나왔다고 한다. 그때의 카이라의 나이는 10살이었다고 한다. 

  이 날 이후 할아버지는 주변으로부터 시선을 받게 되었고, 카이라의 헛기침과 삑사리가 그대로 방송된 덕분에 욕을 먹었다고 한다. 카이라는 할아버지로부터 혼나게 되었고, 상속 족보에서도 카이라의 이름이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상속 족보가 우리나라에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카이라를 통해 들어본 결과 상속 족보는 말 그대로 부모의 재산이 자녀에게 상속되는 족보를 뜻한다. 튀르키예에서는 정부가 운영하는 사이트에 들어가 신분을 인증하면 쉽게 검색할 수 있다고 한다. 그날 이후 할아버지는 카이라의 이름을 상속 족보에서 빼버리셨다. 그러니까 카이라는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면 카이라에게 그 어떤 유산도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카이라는 3형제 중 둘째다. 카이라가 보여준 자신의 상속족보에 카이라의 이름은 없었다. 그의 첫째 형과 막내만 있을 뿐이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카이라는 가족에게 버려진 것과 다름없다. 카이라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카이라의 성이다.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이름의 성이 이슬람에서 종교지도자로 대대에 물려온 성이라고 한다. 카이라 말로 할아버지 딴에는 자기 가문에 이런 애가?라는 수치심이 들지 않았을까라고 말은 했지만, 유독 슬퍼 보이는 카이라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집에 놀러 온 그날에는 답을 듣지 못했지만, 이후에 이런 내막을 듣게 되니 왜 그렇게 나에게 집착했는지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학교에서도 놀림거리였고, 집에서도 놀림거리였고, 친구라고는 Arda 아르다라는 그 애와 나뿐이었을 테니. 


  하지만 진짜로 그가 혼자 남게 된 일은 따로 있었다.

이전 14화 눈물겨운 똥꼬쑈의 결과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