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나
친할 수밖에 없는 외로움, [No.2 개고생, 말하지 않아도]
Kayra 카이라에겐 죽고 못 사는 친구가 한 명 있다. Arda 아르다라는 친구다. 카이라는 가족으로부터 사랑도 없고,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멀어졌다. 이전 글에서 말한 것처럼 가문의 수치로 여겨졌던 것일까. 아르다와 친해진 계기 또한 공식적인 종교가 정해진 이슬람국가에서 종교에 대한 압박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서로 또래이고, 같은 공감대로 친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아르다가 카이라에게 접근한 이유는 다른 것에 있었다. 카이라는 몇 번을 말하지만 잘 살았다. 아르다는 그것에 관심이 있었다.
어느 날 카이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르다를 조심해. 전화번호 차단해."
둘이 너무 가까웠기에 자주 싸움도 있었다. 친구들끼리의 단순한 싸움이라고 생각했기에 카이라에게 연락해서 몇 마디 대화하면서 서로 잘 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카이라는 아르다를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르다가 카이라의 돈을 훔쳐간 것이었다.
카이라와 아르다가 둘이 시내를 돌아다닐 목적으로 카이라가 큰돈을 들고 갔다고 한다. 듣기로는 몇백 달러라고. 어느 의류매장에 들어가서 카이라가 즐겁게 옷을 고르던 중에 아르다가 카이라의 지갑을 들고 튄 것이다. 카이라도 아르다가 다른 곳을 돌아다니고 있거나 화장실이라도 갔겠거니 생각했지만 돌아오지 않는 아르다에게 전화를 했을 때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아르다를 생각하며 옷을 결제하려고 보니 지갑이 없어진 것을 봤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니겠지. 내가 어디 떨어트렸나 보다는 생각이었지만,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없고, 메시지도 안되고, SNS도 안되고, 마지막으로 정점을 찍은 날이 전화를 걸었지만 없는 전화번호라고 뜬 것이다. 그때 바로 나한테 연락해서 아르다를 조심해라고 메시지를 했다는 거다.
일단 내가 먼저 만나자고 했다. 나도 일이 있어서 시내를 떠나서 마을에 다른 친구를 보러 갔었는데, 우울해할 카이라의 모습이 자꾸 생각나서 먼저 만나자고 했다. 그래서 집으로 초대했다.
다른 날과 달리 축 처진채로 집으로 들어온 카이라는 조용히 앉아 있기만 했다. 이 날 모든 일을 들을 수 있었다. 카이라의 가족사와 이전부터 자신을 향한 시선과 어려움들을 말이다.
Kayra 카이라라는 이름부터 잘못 시작되었던 것 같다. 뜻은 '우아하다, 우아함'이다. 대대에 걸출한 종교지도자를 배출해 내면서 남자아이만 낳던 가문에서 부모님은 여자아이를 원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도 여성스러운 이름답게 '우아하다, 우아함'의 Kayra로 정하셨고, 기대하셨다. 하지만 낳아보니 남자아이였고, 어렸을 때부터 가족으로부터의 시선이 달갑지 않은 것이 느껴졌다고 한다.
그래도 어쨌든 남자아이니까 İmam 이맘(종교지도자)을 양성하는 초등학교를 보내서 종교지도자가 되면 부자 될 수 있으니까 좋겠다는 생각으로 부모님이 이맘 초등학교를 보내셨고, 항상 해오던 대로 할아버지가 계신 Cami 자미(이슬람사원)에 가서 Ezan 에잔(이슬람 기도)을 시켜보았더니 그 꼴이 났고, 할아버지는 수치심(?), 주변으로부터의 시선과 비난에 상속족보에서 카이라의 이름을 빼버리면서 가족으로부터 사랑 없고 애정 없는 버려짐 당하게 되었다.
아르다는 어땠을까? 아르다는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다. 이름부터, 전화번호, 가족, SNS, 학교, 모든 것이 다 거짓말이었다. 애초에 카이라에게 접근한 이유도 카이라의 돈 때문이었다고 한다. 아르다의 주변 친구들이 몇 있었다고 한다. 마을에 유명한 양아치 패거리들이었는데, 카이라와 친해지면서 카이라 말로는 아르다가 그 친구들과 멀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아니었던 모양인지 아르다는 카이라로부터 계속 돈을 빌리기 시작했고, 갚겠다 갚겠다 한지가 몇 년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또 싸워서 멀어졌다가 다시 잘 화해해서 잘 지냈다. 이후에는 이름이 문제였는데, 서로의 SNS를 돌아다니다가 아르다가 가짜 이름이었다는 것을 알아버린 카이라가 아르다에게 물었을 때 고작 이름이 뭐라고 또 싸웠다고. 또 멀어져서 다시 잘 화해해서 잘 지냈다. 또 이후에는 SNS가 문제였는데, 카이라 자신을 가리키는 것 같은 내용이 담긴 포스트를 보다가 이 계정이 아르다의 뒷계정이라는 것을 알아버렸고, 아르다의 예전 양아치 친구들이 단 댓글들에 아르다가 맞장구 쳐주는 게 마음이 상해서 이것 때문에 또 싸우고. 여튼 이런 일이 꽤 자주 있었는데, 이번에도 잘 화해하는가 싶어서 둘이 시내를 돌아다니고 싶다길래 그럼 나는 오늘 다른 곳을 돌아보자 해서 마을에 갔던 건데, 카이라에게 이런 연락이 와버렸으니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또 카이라는 항상 늦게까지 우리 집에 있곤 했다. 저녁이 되면 하우스메이트들이 집에 돌아오니까 저녁 이후에는 안된다고 말했지만, 카이라는 괜찮다. 밤 11시까지만 있다가 갈 수 없겠냐고 할 정도로 자기 집에 들어가기 싫어했다. 그 이유가 이 날 들어보니 집에 들어가면 외로워서였다고 한다. 아르다도 어차피 본인의 집이 있고, 아르다가 한 번도 자신의 집을 소개해준 적이 없고, 이것 때문에 싸운 적도 있어서 걔네 집을 가기엔 어렵고, 그나마 친구라고는 나 밖에 없으니 잘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안된다면 밤늦게까지 우리 집에 있고 싶다는 거다. 집에 안 들어가면 혼날 테니 하루가 다 지나지 않는 선에서 밤 11시까지 우리 집에 있겠다는 거였다.
또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열심히 하지만 스트레스는 없는 이유가 집을 떠나겠다. 집을 반드시 떠나겠다. 이스탄불에 있는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살아야지라는 생각이라서 공부가 재밌다고.
또 종교 집안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슬람에 대한 거부감이 극에 달했는데, 심지어는 일요일에 교회를 찾아다닐 정도라고. 나는 집에서 하우스메이트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 카이라가 이 사실을 알고 나도 초대해 달라고. 나도 그 예배 같이 드리고 싶다고 그래서 한번 하우스메이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는 조금 늦은 시간에 카이라를 불러서 따로 예배를 드렸다. 한국에 돌아오는 그 주까지도 그렇게 카이라와 함께 일요일에 예배를 드렸을 정도로 상처가 큰 친구였다.
이것 말고도 더 많은데, 차마 말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카이라에게 내가 돈을 줄 수도 없고, 가장 가까운 가족의 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해서 카이라와 만나는 날이면 즐겁게 돌아다녔다. 그것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일요일에 예배드릴 때는 더 기쁘게 예배 준비하고, 찬양 불렀고, 가끔 힘들 때마다 연락 오면 너를 위해서 기도할게. 기도 부탁하고 싶은 어려운 일이 있으면 꼭 말해달라고 하고. 카이라가 하고 싶은 대로 많이 돌아다녔다.
또 결국에 나는 그리스도인 아닌가.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하나님의 사랑뿐이라.
하나님은 너를 이전부터, 부모님이 결혼하시기 이전부터, 세상 태초부터 너를 사랑하셨어. 이름이 이상하고, 벌어지는 일들이 괴롭고 힘들어도, 내가 결국엔 한국에 돌아가도 너는 혼자가 아니야. 인스타그램으로 연락하면 되지, 이 개념이 아니고, 항상 네 곁에는 하나님이 계셔. 그걸 꼭 잊지 마. 네 가족이, 네 친구가, 네 모든 것이 너를 잊어버리더라도 하나님만큼은 너를 잊지 않고 보살피실 거야. 나도 너를 잊지 않도록 돌아가서도 기도할게. 그리고 힘들면 꼭 말하고. 금방 다시 돌아올게.
라고 한국에 돌아가는 그날 Van 반 공항 로비에서 전화했다.
인스타그램으로 연락할 때는 아무 문제없다. 자기는 즐겁게 살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속에는 힘듦이 있다고 생각한다. 응원이 되어야 할 가족으로부터 폭력은 아닐지라도 버림받았다고 느낄 테니까. 상처받은 영혼과 마음이 다시 새롭게 살아날 수 있도록 나는 계속 카이라를 생각하며, 기도하고 있다. 주일에는 카이라와 함께 예배했던 그날을 기억하며 응원의 메시지도 보내고 있다. 하루의 일상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으면 웃겼다며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카이라... 반드시 만나러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