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개고생, 말하지 않아도
그 비싼 스마트폰을 살 수 없었던 나는 제일 싼 핸드폰을 샀다. 어렸을 적 애니콜 등의 폴더폰을 사용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폴더폰도 비쌌다. 사진을 찍어뒀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파일에는 없다... 보여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스탄불로 거주권을 신청하러 불가리아를 다녀오고 1달 뒤 그 작은 핸드폰으로 결과가 나왔다는 연락이 왔다. 조심스럽게 노트북을 켜서 인터넷을 타고 사이트로 들어가 보니... 기대와는 달리 거주권은 내게 허가되지 않았다. 하우스메이트들 중에서도 거주권이 나온 사람이 있고, 안 나온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모두 같은 교육과정을 밟고 있는 입장에서 허가받은 사람들도 기준에 차이가 있었고, 기간도 다 달랐다. 누구는 1년, 누구는 6개월 말이다. 참으로 눈물겨운 똥꼬쑈의 결과는 안타깝게도... 불법체류였다. 다시 거주권을 신청하려면 6개월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그냥 안 하고 말지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나는 불법체류자의 삶을 살게 되었다.
불법체류자라고 해서 사회에서 뭔가 비판이 있거나 안 좋은 시선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길거리에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내가 나 불법체류자다!! 나 불법체류 한다!! 소리치고 다니는 것 아니면 상관없다. 다만, 튀르키예를 출국할 때 세금과 불법체류의 벌금만 내고 나간다면 정부 입장에서 오히려 이득이다. 또 주의해야 할 것은 경찰이다. 여권은 이미 무비자 기간도 끝났고, 거주권도 불허가가 났으니 경찰이 외국인들에게 여권을 보여달라고 했을 때 여권을 보여주면 불법체류라는 것을 들키게 되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경찰을 피해 다닐 수밖에 없었다.
돈은 돈대로 쓰고(거주권 신청에 들어간 재정은 3천 달러 이상이다. 한 달 생활비가 250달러 정도인데... 그렇다.), 시간은 시간대로 쓰고, 체력을 체력대로 쓰고 아주 기대란 기대는 다 모아서 기다렸건만 결과는 아니었기에 우울함에 저녁 늦게까지 시내를 돌아다녔다. 늦은 저녁 나는 조용히 나무가 울창한 한 공원에 들어가 벤치에 앉았다.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왔다. 앞에 앉아도 되냐는 물음에 괜찮다고 했고, 그들이 내 앞 벤치에 앉았다. 그들의 이름은 Kayra 카이라, Arda 아르다였다. 11학년 17살이었다. 한국으로 따지면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다. 둘 다 한국을 좋아하는, 한류에 과몰입 중인 평범한 남학생들이었다. 카이라의 최애는 BTS 방탄소년단이었고, 아르다는 간단한 한국어 문장을 구사할 수 있었을 정도로 한국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었다. 당연히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었고, 자주 만나는 친구가 되었다.
특히 카이라는 할아버지가 İmam 이맘(이슬람 종교지도자)이셔서 정부에서 꽤 큰 혜택이 있었고, 아버지도 할아버지를 따라 Cami 자미(이슬람 사원)를 물려받을 사람이었기에 잘 사는 편이지만, 카이라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맘이 될 후계자였으나 자신은 종교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며 아버지, 할아버지와의 관계가 어려워졌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나와 함께 보낼 정도로 친한 친구가 되었다.
한 번은 근처 AVM 아붸메 (ALIŞVERİŞ Merkezi 알르싀붸리싀 메르케지, 사고파는 시내/백화점)에 방문했다. 이유는 푸드코트의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서였다.
튀르키예 정부와 쿠르드족 간의 갈등으로 테러 및 시위가 많이 일어나는 지역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백화점이나 정부기관들에서는 출입할 때 무조건적으로 보안검색대를 지나게 돼있다. 그래서 작은 배낭과 모자를 벨트에 올리고 검사하는 동안 나는 경찰의 안내에 따라 삐빅삐빅 소리 나는 기계를 들고 전신검사를 마쳐 다행히 가방을 받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곳에서의 검사는 여권을 검사하지 않는다. 외국인들에게 여권의 유무만 확인하는 정도다. 길거리에서 돌아다니는 무장한 경찰/군인들이 여권을 세세하게 검사한다.)
푸드코드에 들어섰다. 소프트 아이스크림하면 맥도날드의 소프트콘 생각하면 된다. 버거킹이 있었고, 그곳에서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주문해서 같이 먹었다. 얼마였을까? 11 텔레다. (당시 한화 440원 정도) 자리에 앉아 맛있게 먹으면서 다음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중 카이라가 갑자기 푸드코트 옆에 있는 게임센터 가자고 했다. 그래서 어, 그래. 잠깐 구경하고 좋지라고 생각한 순간, 카이라는 볼링장으로 들어갔다. 인당 600 텔레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에 나는 카이라에게 그냥 가자고 말했지만, 그는 이미 계산을 마친 상태였다는 거다. 나, 카이라, 그리고 그의 친구까지 3명, 거기에 더해 200 텔레 하는 볼링화 3개. 총 2,400 텔레를 결제했다는 거다. 후덜덜한 가격에 놀랐지만, 그걸 한 번에 결제했다는 카이라의 재력에 놀랐다. 그래서 즐겁게 볼링을 즐겼다. 한 세트를 마치고, 이제 가자. 더 돈 쓰면 안 된다. 너 집에 갈 돈은 남겨야 한다. 나 괜찮다. 오늘 즐거웠다.라고 말했지만, 카이라는 의류매장에 들어갔다. 나 괜찮다고 했지만, 옷 안 사면 오늘 백화점에서 자고 갈 거다라는 그의 말에 제일 싼 옷을 골랐지만, 이미 그는 옷을 2벌이나 산 상태였다. 선물이라며 그 2벌을 나는 받아버렸고, 집까지 그가 데려다준 후에 카이라는 같이 왔던 그의 친구와 함께 집에 돌아갔다.
파워 E(외향형)였다. 극강의 I(내향형)인 내게 E는 쉽지 않은 친구였다. 또 어느 날은 카이라가 집에 놀러 왔다. 초대는 했다만 바로 내일일지는 몰랐던 나였기에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