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의 소설 <곰 이야기>는 우리가 어떤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와 고통을 견디어 내야 한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삼국유사에서 곰은 백일 간의 인내 끝에 사람으로 변하지만 호랑이는 그렇지 못했음을 안다면 이 소설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며 항상 신웅에게 사람이 되게 하여 빌거늘, 한 번은 신웅이 신령스러운 쑥 한 심지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아니하면 곧 사람이 되리라' 하였다."
변화는 옛 모습을 버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한다. 곰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쑥과 마늘만 먹고 백일을 버틴 것처럼 우리가 예전의 자아에서 탈피하고자 한다면 그만큼의 고통을 버티어 내야 한다.
"그녀한테서 결혼 제의를 받고 돌아오면서 그가 내내 떠올리고 있던 생각은 어려서부터 무수히 많이 들었던 천 년 묵은 지네 이야기였다. 연달아 과거에 낙방하는 통에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버린 한 선비가 마지막 과거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마침내 목을 매 죽기로 결심을 하였다는, 그러나 아리따운 처녀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고 재산도 얻었는데 알고 보니 그 처녀는 사람이 되기 위해 천 년을 기다려온 지네였다는, 세 살 먹은 어린애라도 알고 있는 그 오래된 옛날이야기가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가난한 화가로 그림 그리는 것 외에는 경제적으로 무능력하고 술만 마시며 술에 취하면 폭력을 일삼는 남자였다. 결혼을 세 번을 했지만 세 번의 결혼 모두 실패한다. 그의 아내였던 세 명의 여자 모두 착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모습을 전부 받아줄 수가 없었다. 그는 더 이상 예전의 그의 모습으로 살기 싫었다.
"나는 벌레처럼 살고 싶지 않았으며, 내일을 위한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도 않았으며, 흰 눈처럼 순수하게 누군가를 다시 사랑하고 싶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러므로, 네 번째 결혼이라는 제의를 통과해서 다른 나로 변하고 싶다라는 비명의 내용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주인공은 자신의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의 잘못 걸어온 삶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왜 결혼을 세 번이나 하면서도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는지 뒤늦게서야 깨닫기 시작한다.
"그는 어쨌건 알고 있는 방식대로는 최선을 다했었다. 잘못이 있다면 꼬일 대로 꼬여서 도저히 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게끔 헝클어져버린 운명에 있었을 터이지만 그런 소리는 하나마나한 것이었다. 그는 원래 하나마나한 불평을 늘어놓는 대신 자진해서 최악으로 달려가버리는 스타일이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더 나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도 있었다. 똑같은 세 번의 결혼 실패에서 그는 삼국유사의 곰이 아니라 호랑이였다.
"그는 알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재의 자기를 버리고 새로운 자기를 얻고자 애쓰는지, 얼마나 많은 꿈들이 어지럽게 얽혀 현실에의 탈출에 바쳐지는지"
그리고 세 번의 이혼 끝에 다시는 여자를 만나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네 번째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이제 삼국유사의 곰처럼 예전의 자신의 모습을 다 떨쳐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바랬다. 네 번째로 만난 여자는 대기업의 막내딸이었는데 그녀 역시 새로운 삶의 길을 가기를 원했다.
"그녀도 가끔은 불안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이 삶이 제비뽑기로 얻어진 우연이 아니고 필연이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소설에서 두 사람은 결혼을 하기로 하고 집을 보러 다닌다. 전망이 좋은 집, 수영장이 딸린 집, 수 백 년이 된 문화재 같은 집을 둘러보았지만 결정을 하지 못한다.
"아니, 다른 데는 필요 없어. 집을 새로 짓겠어. 내일 그 동네 다시 가서 집 지을 땅을 알아보는 거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가는 마음먹는다. 다른 사람이 지은 옛날 집을 구입하지 않고, 새집을 짓기로 한다. 예전의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벗어 버리고 새로운 자아로 거듭나 살아가고자 하는 다짐이다.
그는 웅녀처럼 그 고통을 인내하고 새로운 자아로 거듭나는 게 가능했을까? 작가는 거기에 대한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주인공은 더 이상의 우연에 의한 삶이 아니길 바랬을 것이다. 자신을 새로이 바꾸어 필연적인 삶을 살아가고 진정한 사랑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