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크눌프

by 지나온 시간들

헤르만 헤세의 소설 <크눌프>에서 주인공인 크눌프는 방랑벽이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직업을 갖거나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그런 삶을 살지는 않는다. 그냥 여기저기 다니면서 친구들 집을 전전하며 생활을 하는데 어찌 보면 낙오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는 선하며 예의 바르고 밝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는 친구의 집에서 아무런 목적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낸다. 친구와 친구 아내와도 즐거운 시간을 가진다. 이웃집 하녀와 아름다운 감정을 나누기도 하지만 좋은 추억을 남긴 채 다시 방랑의 길을 떠난다.

또한, 크눌프는 어떤 한 사람과 함께 숲과 들판을 함께 돌아다닌다. 그들은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다니며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하면서 새로운 경험들을 같이한다.


크눌프는 그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모든 사람은 각자 영혼을 지니고 있고, 자신의 영혼을 다른 영혼과 뒤섞을 수는 없어. 두 사람은 서로 만나기도 하고, 함께 이야기할 수도 있고 또 서로 가까이 지낼 수도 있지. 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각자 자기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꽃과 같아서, 어떤 영혼도 다른 영혼에게로 갈 수가 없어.”

크눌프는 고독 속에서 그의 삶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 고독을 스스로 받아들였다.


크눌프는 왜 방랑의 길을 갔던 것일까? 그 이유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받은 아픔 때문이었다.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상처를 입었지만, 크눌프는 여전히 밝게 살아간다. 크눌프는 그러한 아픔 속에서도 어떻게 그렇게 밝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는 인생의 덧없음을 그의 경험으로부터 깨달았다.


크눌프는 인생이란 결국 혼자서 자신의 짐을 지고 가야만 하는 쓸쓸하고 고독한 것을 알았다. 하지만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한 인생에도 기쁜 날들이 있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방랑의 끝에서 폐결핵으로 쇠약해진 크눌프는 친구 의사로부터 도시의 병원으로 가서 치료받을 것을 권유받는다. 하지만 그는 자기 병이 불치병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후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옛날 추억의 장소와 어릴 적 친구를 만나며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중 친구 한 명이 크눌프에게 왜 인생을 방랑만 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크눌프에게 주어진 재능을 사용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질책을 한다. 이에 크눌프는 숲속으로 들어가 진정한 삶의 길이 무엇인지 고민을 한다. 그리고 크눌프는 신에게 자신의 존재 의의에 대해 물어본다.


그리고 신은 크눌프에게 말한다.

“나는 오직 너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필요로 했다. 너는 나의 이름으로 방랑을 했던 것이고, 정착하려는 성향을 지닌 사람들에게 늘 자유에 대한 향수를 조금씩은 일깨워주어야 했다. 너는 나의 이름으로 어리석은 일을 했던 것이고 조롱을 받기도 했다. 네 안에서 내가 조롱을 받은 것이고, 내가 사랑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자녀요, 나의 형제요, 나의 일부다. 네가 무엇을 누리든, 무엇으로 고통을 받든지, 나는 항상 너와 함께 했었다.”


즉, 크눌프는 신으로부터 사람들에게 ‘자유에 대한 동경’을 일깨워주기 위한 것이라는 답을 얻는다. 그리고 그는 어쩌면 젊은 나이라 할 수 있는 40대에 평화롭게 눈을 감는다.

어찌 보면 크눌프는 대부분 사람들의 삶의 기준에서 볼 때 아무런 목표 없이 방랑만 하며 시간만 낭비하는 가치 없는 삶을 살았는지 모른다.


헤세는 말한다.

“나는 크눌프와 같은 인물들이 아주 마음에 끌립니다. 그들은 유용하지는 않지만, 많은 유용한 사람들보다 해를 끼치지는 않습니다. 크눌프와 같이 재능 있고 생기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주변 세계에서 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그 주변 세계는 크눌프와 마찬가지로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자유를 사랑했던 크눌프는 어쩌면 헤세 자신이었는지 모른다.


우리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삶의 길에서 어떤 길을 가야 할까? 그리고 그 길이 옳은 길일까? 그 기준은 무엇일까? 어렸을 때나 나이가 들었어도 아직 가야 할 길은 남아 있다.

크눌프처럼 자유가 있는 그 길을 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가 요구하는,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그 길이 이제는 나의 가슴에 와 닿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에게 왔던 것은 어차피 나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하나씩 나로부터 떠나갔고 지금 있는 것도 다 떠날 것이다. 나는 원래 방랑자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어느새 헤세의 크눌프는 내 친구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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